밥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조회 수 2609 추천 수 0 2013.03.04 00:31:29


* 나는 하고도 잊은 말을, 내가 쓰고도 잊은 글을

  뜻밖의 경로로 다시 듣거나 다시 읽을 때가 있지요.

  오늘 어디서 왜 썼는지도 잊은 글 한 편이 제 손에 다시 왔습니다, 잘 읽었다는 감사 편지와 함께.

  다시 읽으며 밥 씹어 삼키듯 자분자분 밥에 대해 곱씹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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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관한 몇 가지 단상 

 

 

밥 한 그릇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면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것과 같다.

 

 

1.

“요새 뭐해 먹어요?”

주로 여자들을 만나면 제가 잘 건네는 질문입니다.

“사람들 찾아오면 뭐해줘요?”

관심사이지요.

한날 또래인 읍내의 한 제도학교 선생을 만나서도 같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뭘 해줘. 식당 가서 사멕이지.”

아하, 식당 없는 산골은 별 수 없이 해서 멕여야 하지만

읍내에선 그게 되었던 게지요.

 

2.

먹는 건 중요합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요.

세상 끝날까지 숨 쉬고 먹지요.

냉장고도 세탁기도 10년이면 바꾸지만

몸은 크게 별일이 있지 않는 한 평생을 씁니다.

요새 평균 수명이 80이 넘는다던가요.

그 긴 시간을 가동하자니,

그래서 먹는 게 중요할 밖에요.

아이들에게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할 때 하는 얘기들입니다.

잘 먹어야지요.

행복이란 것도 저마다 그러하듯 결국 어떻게 잘 먹느냐이겠지요.

 

3.

산골에서 아이들의 학교 어른들의 학교를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뭐 아주 작은 산골작은배움터에서

유기농으로 농사 짓고 산나물 캐고 그리고 수행하고 살지요.

가난한 우리가 나누는 것은 잠자리와 밥,

그리고 하늘과 산과 들과 계곡을 담은 풍광입니다.

우리가 하는 순기능 하나는

영동 가면 물꼬가 있고 물꼬 가면 할미가 있다는 거지요.

특히 서울과 광주에 사는 집 없고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물꼬가 하는 외가의 역할은 결코 소홀할 일이 아닙니다.

다른 것 다 놓아도 그거는 지켜야지 싶은 역할이지요.

가끔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만만찮습니다.

후배고 혹은 학부모고 그리고 아이들이 전화를 합니다.

“샘, 물꼬 밥 먹고 싶어요.”

그러면 저이가 오늘 힘들었나 보나, 외롭구나, 아프기라도 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지요.

박완서님의 글 한 구절처럼 말입니다,

가까이 사는 손주가 할머니 밥 먹고 싶어요 하면

요새 뭐가 잘 안되나 싶고, 밥을 해줄 수 있어 그리 기쁠 수가 없더라던.

그렇게 밥해 줄 수 있어 기쁩니다.

울 어머니가 그러셨을 테고, 울 할머니가 그러셨을 겝니다.

 

4.

뭘 하건 생각이 문제이지요.

밥에 대한 ‘사유’가 필요합니다.

영적인 양식 못잖은 몸의 양식이잖아요.

그런데 당장 눈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참 쉬 먹습니다.

사람들이 산골에 오면 며칠새 살들이 찝니다,

수행과 노동량이 결코 적지 않은데도.

그리고 많이, 잘 먹습니다.

“다들 못 먹고 사나봐.”

그리 농을 던지고는 하지요.

아침 먹은 지가, 세 끼를 다 챙겨 먹어본지가 오래라 합니다.

뭐하느라 밥도 못 챙겨먹고 사는지요.

우리 그리 바쁜 일 하고 사는 게 맞나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자주 던져야할 물음입니다.

 

5.

물꼬에 오면 큰 행사가 아닌 한 주부들에게 밥 짓기 하지 말라 합니다.

앉아서 받아먹으라 하지요.

그동안의 부엌 삶에 대한 노고의 치하이고 선물입니다.

세상에서 앉아 받아먹는 밥이 젤로 맛있다고들 하니까요.

(사실, 제 손으로 해먹는 밥이 가장 맘 편하기는 합디다.)

한번 오시지요...

맛 그거 세치 혀끝이라는데,

음식을 꼭 맛으로 먹는 것만 아니지요.

동짓달 초하루면 봄가을로 하는 가을 7일 단식입니다.

단식의 큰 의미 하나는 음식 귀한 줄 안다는 것이라지요.

그예 한번 오시지요...

 

 

(2011.10.30.야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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