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1.불날. 맑음

조회 수 1071 추천 수 0 2008.11.24 01:12:00

2008.11.11.불날. 맑음


가을볕이 좋았습니다,
잎 다 떨군 은행나무가 고고하게 섰습니다.
가을날에 숲에 사는 존재들은 더욱 부산하지요.
긴긴 겨울을 날 준비들 탓일 겝니다,
하기야 어느 철이라고 그렇지 않을까요만.
새들이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요.
소란하지 않을 리가 없었구요.
산골 가을 소식과 함께
큰 시인 두 분께 안부도 넣었습니다.
덕분에 두 분의 시를 읊조려보기도 하였네요.

竹篇 2
- 工法


하늘은 텅 빈 노다지로구나
노다지를 조심해야지
조심하기 전에도
한 마디 비워 놓고
조심하고 나서도
한 마디 비워 놓고
잣대 눈금으로
竹節 바로 세워
허허실실 올라가 봐
노다지도 문제 없어
빈 칸 딛고
빈 칸 오르는
푸른
아파트 工法


서정춘샘의 시 앞에선 늘 서늘해집니다.
날카롭기가 푸른 날 같지요.
심호택샘의 ‘하늘밥도둑’도 오랜만입니다.

망나니가 아닐 수야 없지
날개까지 돋친 놈이
멀쩡한 놈이
공연히 남의 집 곡식줄기나 분지르고 다니니
이름도 어디서 순 건달 이름이다만
괜찮다 요샛날은
밥도둑쯤 별것도 아니란다
우리들 한 뜨락의 작은 벗이었으니
땅강아지, 만나면 예처럼 불러주련만
너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살아보자고, 우리들 타고난 대로
살아갈 희망은 있다고
그 막막한 아침 모래밭 네가 헤쳐 갔듯이
나 또한 긴 한세월을 건너왔다만
너는 왜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 거냐?
하늘밥도둑아 얼굴 좀 보자
세상에 벼라별 도적놈 각종으로 생겨나서
너는 이제 이름도 꺼내지 못하리
나와 보면 안단다
부끄러워 말고 나오너라

서울의 한 기업에서 아이에게 노트북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글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 아이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되었지요.
산골 살아도 세상과 아주 맞닿아있다 싶습니다.
마음뿐 아니라 이렇게 요긴한 것들을 챙겨주시는 어르신들이
퍽 고맙습니다.
아이가 자기 삶으로 갚아나갈 테지요.

열 시가 넘어가는데 아이 방 불이 켜져 있습니다.
들여다보니 공부를 하고 있네요.
훤한 대낮 놔두고 뭐하는 거냐 야단칩니다.
아이가 중얼거렸지요.
“낮에는 엄마가 일시키잖아.”
“뭐? 시간을 쪼개서 해야지.”
“남들은 공부하라는데 우리집은 엄마랑 애가 바뀌었어...”
툴툴거리며 불 끄는 아이를 보며
씨익 웃는 밤이랍니다.
이 아이랑 요새 나누는 얘기 한 구절은 이런 거지요,
우리는 산골에 사나 우주를 안고 산다 뭐 그런.
비교하면(세상과, 혹은 다른 이들과), 계속 괴로울 것이니까 안 하려지요.
“맞아, 정말 그래. 문제는 실력을 쌓는 거야,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땀내를 내는 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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