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9.불날. 맑음

조회 수 203 추천 수 0 2024.04.23 23:54:55


며칠 전 굵은 나무를 잘라준 이웃마을 형님네를

오늘 낮밥에 초대하였다.

잔치국수 어떠셔요?’

오마 답이 왔더니, 곧 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염치없지만 점심 추가 1명 가능할까요?’

아구, 염치라니요! 국수 한 그릇에 무슨...

더 오셔도 됨요. 밥도 조금 할랑께요.’

최종 인원만 11시까지 알려 달라 전하였네.

국수를 삶으며 염치라는 말이 내내 감겼다.

아름다운 말이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나는 염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해왔다.

염치라는 낱말을 골아내 써준 그가 고마웠다.

쪽파를 얼른 뽑아와 부침개도 같이 부쳐냈다.

의대 2천 명 증원은 멧골 밥상에서조차 화제가 되었다.

거기 우리 집 아이도 사직 전공의란 말은 끝끝내 않았다가

그가 돌아간 뒤 대한민국의료정책 실패의 역사를 담은 한 영상물을 보내주었네.

 

삼거리 밭에서 돌을 주웠다.

주워도 주워도 앞에 했던 일이 있었냐 싶게 처음처럼 또 그만큼의 돌이 있는 밭이다.

내일은 남도의 한 산에 간다.

청소도 했다. 다녀와 새로 시작하기 좋게.

이 집을 나서서 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으리, 늘 그런 마음으로다가.

남은 학교 식구들이 밥을 먹기 좋게 찌개를 넉넉히 끓여놓고.

 

좋은 언니가 되어보려 한다. 요새 한동안 한 생각이다.

좋은 어른은 어려우나 좋은 선생도 어려우나

좋은 언니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스웨덴 영화 <Thank you, I'm sorry>(리사 아스칸 감독)를 보았더랬다.

동생을 끝내 지키는 언니 린다가 나온다. 따스한 성품이다.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나오던 떡집 언니도 좋은 모델이다.

속 깊게 이웃 동생을 챙기고 이웃 엄마를 챙기는.

, ‘속 깊게는 좀 어렵겠다만

따뜻한 언니는 가능하겠다.

무리해서 속상하고 가라앉기보다

도달해서 원기충천하는 쪽으로.

 

그 영화 말인데,

부부가 있다. 임신한 바람에 예정에 없이 결혼했고, 다시 만삭인 사라.

이미 파탄이었던 부부 관계에서 남편 다니엘이 심장질환으로 돌연 죽는다.

상실에 상실을 더했지만 아직 곁에 사랑스런 어린 딸 엘리엇이 있고, 태어날(태어난) 아이가 있다.

시어머니가 있다. 헬렌은 아들의 죽음이 기막히지만 며느리 사라를 아낀다.

자매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언니 린다는 아버지를, 동생 사라는 엄마를 따라 헤어졌다.

린다는 버림받은 난봉꾼 아버지의 편이 되느라 아버지를 따라 집을 떠났던.

동생의 남편, 제부가 죽고 장례식에 린다는 참석한다.

하지만 자기를 두고 떠난 언니가 사라는 아직 밉고, 아버지도 여전히 꼴도보기 싫다.

그 아버지. 이제 치매를 앓고 있다.

상실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린다의 사랑스런 딸은 사라와 린다를 연결하고.

린다의 개는 조카와 린다를 연결하고, ...

상실이 사랑의 그물 속에 어떻게 치유되고 화해하는가를 배우도 서사도 잘 풀어낸다.

좋은 영화였다.

 

, 한 도시의 천변 둑방을 걸었다.

바람이 일었으나 따갑지는 않았다.

목을 감싸자 바람이 달게 닿았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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