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8.불날. 맑음

조회 수 638 추천 수 0 2014.11.01 07:26:35


닭이 알을 내놓지 않은 지가 여러 날.

아, 날이 추워졌다는 말이겠군요.

봄까지 그리 쉬어가겠습니다.

올해는 그네가 우리들의 겨울 들머리를 일깨워주네요.


소국 몇 송이 뜻하지 않은 곳에 피었습디다.

달골 들머리 지하수 펌프 상자 뒤.

아마도 버린 화분 뭉치에서이거나

쓰레기더미에서 뿌리의 기억을 가지고 일어섰을 테지요.

뿌리의 기억, 그 깊은 기억,

잊지 않으면 그리 살아날 수 있는!


걱정이란 것도 어느 지점이 지나면 걱정이 아닙니다.

낼모레 네팔로 나서야 하는데

네, 팔, 그 두 자도 못 챙겨 본.

제게 안나푸르나로 가는 길은 그저 일상을 정리하는 것.

못한 것 투성이더니 시간이 너무 몰리자 그렇겠거니 되는.


가마솥방 화초에 물주기.

화분에 물주는 일은 이거 하면 해야 할 일들 다 한 것만 같은.

시간이 그리 걸리는 것도 아닌데 일인.

조심조심 떨어져나가는 줄기가 없도록.


저녁엔 이장님댁을 들립니다, 마을 반장일로.

반장일을 보던 아이가 이제 제도학교로 가버렸으니

어미가 이어 맡을 밖에요.

우리 이장님, 바쁜 반장 두신 덕에 매번 당신 일거리가 많은.

반장 셋 다 불러놓으셨는데,

말 많으신 어른들만 몇 추려 그네는 찾아가 직접 처리하라셨습니다.

나중에 일을 했느니 안 했느니 하실까 봐 그러신다나요.

어른의 자리, 어른의 처신을 그리 또 배우지요.

“내팔인지 외팔인지 넘들은 한 번도 못나가 보고 사는데...”

“이장님, 이장님은 마을을 안 벗어나고 먹고 사시잖아.

나 불쌍한 거여, 외국에까지 나가 일해서 먹고 살아가잖여. 헤헤헤..”

평생을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살면서도

천지의 도를 깨치고 우주를 유영하는 이들도 있지 않던가요.

크레타섬에서 나그네란 나그네는 다 불러들여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던 조르바의 외조부,

밤이면 그는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장죽을 문 채 귀를 기울이며

나그네를 따라 여행길로 나섰더라던가요.

그는 마을을 떠난 적이 없었다 했습니다.

“왜 그 먼 곳까지 가?

이곳을 지나가는 칸디아나 카네아 사람들이 있어서 칸디아와 카네아가 내게 오는 셈인데, 내 뭣 하러 거기까지 가?”

그런데 저는 아직도 비행기에 오르고 있군요...


소사아저씨는

금룡샘이 치다 두고 간 본관 뒤란 비닐을 이어 치셨습니다.

어찌어찌 일은 다 되어가지요.

사람의 일들이 그렇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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