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17.해날. 맑음

조회 수 82 추천 수 0 2024.04.09 23:51:01


학교 울타리까지는 봄이 닿았다 할까나.

남쪽 언덕에 산수유가 비로소 활짝 피었다.

 

몇 해 지난한 문제를 건너가고 있는 한 학부모의 문자를 주고받다.

그리 편안하진 않습니다만 인생은 고다 다고 인정하고 삽니다.’

그의 문자를 읽었다.

인생은 ...

인생은 go! 흘러가는 겁니다, 나아가는 겁니다:)

아름다운 한 세상이기도 하지요! 지금 겪는 일이 결코 작은 일은 아니시겠지만,

그렇다고 날마다 그대의 삶을 채우는 멋진 일들을 그 문제가 결코 훼손시킬 수는 없음!

부디 많이 웃으셨으면.’

글자 수 많은 것에도 호수에 던지는 돌일까 하여

다음 문자는 썼다가 지웠더라.

봄이 왔습니다. 그대의 마음 언덕에도 산수유 피우시기로.’

 

날적이를 쓰려고 랩탑을 열다가

지난 3월 초 인도에서 돌아와 달고 온 감기로 극심한 두통을 앓으면서도 썼던 글 하나

다시 읽어보았다.

당최 맷집이라고는 없는 사람처럼 마무리가 되지 못한 채 밀쳐놓거나 버리거나 잊힌 글이

어디 그 뿐이랴.

왜 전공의들에게 원죄(;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씌우는가라는

의료개혁이라고 내놓은 정부 정책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온 전공의들을,

그때는 이리 오래 가리라 생각지도 못했을 그들을,

돈벌레라거나 환자 팽개치고 나온 악마로 온 몸으로 욕받이가 된 청년들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는데...

14만 의사들 가운데 10%인 전공의들 가운데 1만여 명이 지금 기약 없이 드러누워있다.

국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개인으로도 커다란 낭비다.

뜨문뜨문 이런 문단들이 남겨져 있었다. 아들도 그 전공의 가운데 하나라.

완성된 글이 되기는 어렵겠다.

그저 메모해둔다.

 

축잘알이라는 표현이 있다. 축구를 잘 아는 사람. 축구 커뮤니티에서들 쓴다. 이번 의료증원 사태(필수의료패키지 포함)로 

나는 의잘알이 될 판이다. 의료계를 잘 아는 사람. 아들이 엄마 생일선물로 한 뭉치 현금을 보내왔을 때, 의사니 돈을 잘 

버나보다 했다. 그것이 그가 전공의로 일하고 받은 월급의 절반이었다는 걸 이번 사태로 알았던 나였다. 약보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더 위로가 될 수 있는 환자들에게 그 한 마디 할 시간도 없는 건 의사 개인의 성품 차이보다 시스템 문제가 더 

크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21일 의대 증원 포함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 이래 의료 현장의 반발이 있었고, 전공의들이 앞서서 손을 놓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은 의대증원 발표로 곤두박질치던 지지율이 총선을 앞두고 올랐다. 정치를 위해서 의사를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방법인지 이번 사태가 말해주기도 했다. 코로나 아래서 그토록 고생하던 그들이 누구였던가, 내 수술을 집도해 

고통 없이 살게 해준 이가 누구였던가. 그 의사와 이 의사는 같은 의사들일진대 여론은 저들 밥통 깨질까봐 사람 목숨을 

담보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돈만 아는 악마들이라고 공격하고 있었다. 적개심에 가까웠다.

 

이 정책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의료 영리화라든지 필수의료 붕괴라든지) 아느냐고 그 본질을 알려주는 언론은 찾기가 

퍽 어려웠다. 의대증원 2천명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나라 전반을 한 가지 문제로 소용돌이치게 하고,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시작된 이공계 인재 이탈은 의대 증원으로 추가 되더니 직장인들까지 의대 입시에 뛰어들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221일 박민수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 겸 보건복지부 2차관은 중수본 정례 브리핑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환자의 생명보다 우위에 두는 의사단체 인식에 장탄식의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파업과 사직이 장기화되어도 의료시스템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정부와 언론은 전공의들의 사직 물결이 '파업'이며 그 파업으로 의료현장이 마비된다 한다. 14만 의사 

가운데 10%인 전공의, 그리고 그 가운데 1만여 명이 손을 놓은 것. 남은 이들의 피로도가 올라간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만약 의료마비라면 그들에게 그동안 병원이 얼마나 기대왔는지를 말해주는 것. 의대생과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공백이 생긴다는 게 

말이 되는지. 이러니 전공의들을 갈아 대학병원이 돌아간다는 말이 나왔던 게다. 현장에서는 전공의들이 없어 수술들을 미룬다고는 

했다. 수술에서도 수술 후 관리에서도 전공의들의 손을 절대적으로 써왔다는 증거다.

 

의사수를 늘인다고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더 많이 뽑는 건 아니다. ? 수익 때문에. 그래서 있던 전문의도 내보냈던 

병원이다. 의사 수를 늘인다고 그들을 채용할 수 없다. 수익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값싸게 썼던 전공의들이 

있으니까. 대학병원들은 의대 증원을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의대 증원 2배 늘리면 값싼 전공의를 두 배 더 쓸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의대 증원 2천 명은 필요하다고?

 

의사 많이 배출한다고 그들이 필수의료로 가지 않는다. 지방의료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 많다고 거기를 채우는 게 아니다

그래도 많으면 밀려서라도 갈 수밖에 없을 거란다. 아니, 필수의사가 지방의사가 가장 바닥에 있는 이들만 모이는 곳이었더란 말인가.

새는 배관을 바꾸거나 고칠 생각 않고 살짝 땜질해 거기 번드르르하게 페인트칠하고 새것인 양 하는 모양새라니. 있는 필수의도

있는 지방의도 그나마 그들을 버티게 하던 사명감마저 꺾이고 말겠다. 필수의료 살리고 싶다면 현재까지 필수의료하고 있었던 

이들이 계속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게 먼저다!

 

소아과의 경우, 2000년에 990만이던 환자 수는 2022590만으로 줄었는데, 소아전문의수는 3300명에서 7200명으로 늘었다

근데 왜 모자란다고 하는 것일까? 소아전문의가 다른 데서 일을 하니까. ? 소아응급, 소아외과 들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구조 때문에

진상보호자며, 의료사고 시 소아는 기대여명이 길어서 20억씩 배상하는 법률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누가 소아과에 남을 수 있겠는지!

 

백 번 양보해서 2천 명 양성했다 치자.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둘째 치고, 그 의사들은 다 어디로 가지? 앞에서도 썼듯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를 쓰지 않는다. 전공의가 끝나면, 그래서 전문의가 되면, 그야말로 밀려서 개원을 할 수밖에 없다 한다. 골목골목 들어찬 병원이다.

이게 바로 개원가. 살아남기 위해 도덕적 해이에 노출될 환경이다. 필요하지도 않은 비급여를 끼워판다든지 하는 건 양반이고, 심지어 

범법행위까지 일어나 대서특필된 일도 있었다. 새로 발을 들여놓은 젊은 의사들을 죄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증원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수가만이 답은 아니지만, 수가가 낮으니 필수과는 수술을 할수록 적자라 한다. 대학병원이 그 적자를 주차장과 장례예식장 운영으로 

벌어 메운다는 얘기가 나올 만했다. 대학병원이 적자라고? 실제 필수과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서울권에 아홉이나 올라가는 

대형병원건물이 답일지도 모른다. 2027년에 9개 병원 6600병상이 는다 한다. 이들이 의대 증원을 찬성하는 것은 9개 병원 

6600병상(2027)에 쓰일 노예들이 더 필요하기 때문은 아닌지. 아니, 욕을 먹어도 이러한 대학병원이 먹어야지 왜 노예가 된 

전공의들이 욕받이가 되고 있을까? 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이 정도로 의료문턱이 낮고 접근도가 좋은 나라는 전 세계에 드물다. 인용할 수치보다 내가 겪은 오래고 잦은 여러 외국생활이 

그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자주 아팠고, 병원에 갈 일은 많았으나 정말이지 한국으로 돌아올 방법 밖에 없는 때도 있었다.

한국의 이런 양질의 의료 뒤에는 의사들의 살인적 노동강도가 있었다. 전공의들을 갈아 대학병원이 돌아가고, 의사들을 갈아 

의료계가 돌아간다. 누구의 삶도 그리 갈아서 다른 삶을 영위하게 해서는 안 된다.

 

현재 같은 좋은 의료의 질을 계속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내 주머니에서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사실도 이제는 

공유해야 한다. 정치인들 누구도 말하지 않고 언론도 대놓고 말해주지 않지만,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삶은 없음을 우리 삶이 

늘 말해주지 않았던가.

 

나쁜 의사들 없지 않았을 테고, 돈만 아는 의사 역시 없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직업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없겠는지. 하지만 적어도 

선배들의 잘못으로 그 원죄를 이제 일을 시작한 전공의들에게 씌우는 건 어른들이 할 짓이 아니다.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쉬거나 여행을 하거나 그동안 못다 했던 것들을 하고나 더러 다른 길을 찾고도 있단다

아들은 서울에 머물며 연일 다른 사직 전공의들과 토론하고 이번 정책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태원이며에서 숱한 사람들이 수많은 일들로 시위하는 걸 보았다고. 이번 일로 세상살이에, 세상의 목소리에, 사람들에게 눈을 

키우고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나오고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고 한 달이 가고 두 달에 가깝다. 건네고픈 말이 넘친다

'아들아, (의사 아니어도)의미 있는 일 많다. 길은 또 있다. 날마다 죽고 아침이면 또 새 생을 시작하는 사람살이 아니뇨. (그동안 

의사가 되기 위해 보낸 시간)아까울 게 무어냐. 우리가 우리 생에서 한 고생 어디 안 간다. 지독하게 구른 그 시간이 그대를 단단하게 

했을 것이고, 앞으로 가는 걸음의 거름이 될 것이라.'

이 사태에 사직한 전공의들과 뜻을 같이 하나 현실적인 생활의 문제로 현장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이 다른 

동료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처지가 있고, 생각이 있을. 그들 안에서 서로 적이 되거나 상처 입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쩌다 한 통화는 짧은 한 마디로 맺어졌을 뿐이었다.

"밥 잘 챙겨 묵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6636 2024. 4.14.해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43
6635 2024. 4.13.흙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31
6634 2024. 4.12.쇠날. 맑음 / 소리(판소리)는 누가 불렀을까? 옥영경 2024-04-23 137
6633 2024. 4.11.나무날. 맑음 / 화전놀이 옥영경 2024-04-23 31
6632 2024. 4.10.물날. 맑음 / 곡성 동악산(735m) 옥영경 2024-04-23 28
6631 2024. 4. 9.불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25
6630 2024. 4. 8.달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25
6629 2024. 4. 7.해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23
6628 2024. 4. 6.흙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26
6627 2024. 4. 5.쇠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25
6626 2024. 4. 4.나무날. 잔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24-04-23 27
6625 2024. 4. 3.물날. 비 옥영경 2024-04-21 52
6624 2024. 4. 2.불날. 흐리다 밤 비 / 옳다면, 가시라! 옥영경 2024-04-21 42
6623 2024. 4. 1.달날. 맑음 옥영경 2024-04-21 42
6622 3월 빈들 닫는 날, 2024. 3.31.해날. 맑음 옥영경 2024-04-18 173
6621 3월 빈들 이튿날, 2024. 3.30.쇠날. 소나기 지나다 옥영경 2024-04-18 87
6620 3월 빈들 여는 날, 2024. 3.29.쇠날. 갬 옥영경 2024-04-18 79
6619 2024. 3.28.나무날. 비 옥영경 2024-04-18 65
6618 2024. 3.27.물날. 맑음 옥영경 2024-04-17 69
6617 2024. 3.26.불날. 정오께 비 걷다 옥영경 2024-04-10 1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