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에 들때면 목장갑을 챙겨야 한다.
이곳의 걸음이 대개 그러하다.
가는 길에 풀 하나라로 뽑게 되고
늘 일이 줄 서 있으므로.
간 걸음으로 뭔가를 하게 되는.
학교에서 일전에 얼마의 날 간격으로 청희단풍 둘을 달못 위로 옮겨 심고 보니
파낸 구덩이에서 나온 돌이 굴러다녔다.
일할 때, 또 이튿날도 살피고 주웠으나
마치 하지 않았던 일 마냥 돌은 또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주워다 아가미길 가장 자리 작은 돌담에 얹고,
대나무 수로를 치고,
뽕나무 아래 넘어진 난나를 일으켜 자리를 잡아주고,
달못 너머로 가서
벌써 한 차례 마을 어르신이 훑고 나간 뒤 며칠이 흘러
오르고 있는 댓 그루 참두릅을 따내고.
6월 초순에 담양에서 중국 황궁다법 시연을 할 계획이라고 하자
‘중국 황궁다법’들을 물었다.
그간 물꼬에서, 또 몇 곳의 차 축제에 초대받아 시연을 해왔다.
소림사 무예와 중국 황궁다법을 지녔던 허주당 보원스님의
생전 마지막 제자가 물꼬에 있었더라.
2015년 1월 27일 원적(법락 56년, 세수 75세)에 드신 스님으로부터
그 전해 1월에 만나 주에 한 차례 몇 달을 다법을 배웠다.
당신 세 살 때 삼촌 화엄대사를 따라 대만에서 건너와
열여덟에 해인사에서 출가를 했고,
1998년부터 경주 보림선원에서 소림쿵푸와 한국 다례, 중국 황궁다법을 전수.
중국 황궁다법에 소림사 쿵푸 품새가 섞인 건 익히 알려진 일다.
당나라 2대 황제 이세민이 사지에서 소림사 승려들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그 고마움을 표한 5가지 선물 가운데 하나가 금색의 승복 착용을 허락한 것.
소림사 승려들이 황제와 같은 황금색 복장을 입을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들은 이세민 호위승으로 대우를 받고
전래의 황실 차문화까지 공유했.(이세민을 위해 소림승들이 개발한 다법이라고도 함)
청일 전쟁에 지면서 황궁다법도 쇠락한다.
그나마 이어진 맥도 1960년대 문화대혁명기를 거치며 사라졌다는데,
그 한 흐름이 1943년 한국으로 흘러들어와 서울 청파동에 자리 잡았던 화엄대사.
그의 조카가 소림사 쿵푸와 황궁다법 기능을 이어받았던 것.
바로 허주(법호)스님.
황궁다법은 크게 세 종류(다해작법, 개완작법, 문향품명배 작법)가 있다.
물꼬에서 하는 황궁다법은 다해작법과 문향품명배 작법 일부를 더해 약 30분간 집전.
그 시작은 검지에 물을 묻혀 잔의 테두리를 돌려 청음을 피워 올리는 향배 돌리기.
잔 이동, 찻받침 이동, 배사를 써서 잔 씻기, 주수자 다루기, 차호 씻기, 차 넣기, 차 우려내기,
마지막으로 문향품명배로 향을 맡고 차를 마시는 동작으로 갈무리.
옷은, 팽주는 노란색, 좌우 집사인 사령은 붉은색 치파오를 입는다.
코로나19를 건너 곳곳에서 봇물처럼 축제들이 터지고 있다.
다법 시연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