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20.흙날. 비

조회 수 68 추천 수 0 2024.05.24 13:58:21


엊그제 18, 홍세화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던 소식을 듣는다.

당신의 마지막 직함은 장발장 은행장이었다.

장발장 은행 생활고로 경범죄 벌금 낼 돈이 없는 이들에게 

신용조회 없이 무담보무이자로 돈을 빌려준다.

돈 없어 감옥 가는 길을 막아주는 것이다

재원은 기부금.

소년소녀가장미성년자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이 우선 대상으로,

최대 300만원까지 대출, 최장 6개월 거치기간 후 1년간 균등 상환.

최근에 들었던 통계에 따르면 그간 1318명의 장발장들에게 234555000원 규모를 대출 지원했고,

대출을 받은 가장 어린 장발장은 1998년생.

못 갚거나 안 갚는 이들이 많을 거라는 어림짐작과는 달리

상환자 수가 대출자의 절반을 넘었다.

신뢰를 받았던 대출자들은 그걸 바탕으로 갚을 힘을 길렀고,

나중에는 그가 은행의 후원자가 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그가<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던진 똘레랑스(관용)

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적지 않았다.

적어도 관용이란 낱말의 뜻이 새롭게 읽혀졌음에는 틀림없다.

너그러움은 어쩌면 이 시대에 더 간절하게 요구되는 태도이기도 할

장발장 은행은 관용의 현실적 질문이었고, 실천이었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고 썼던 당신은

진보를 말하고 진보로 살다 가셨다.

 

병상에 계신 당신께 누군가 물었다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어떤 삶의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하냐고.

당신은, ‘겸손이라고 생각하신다 했다.

우리야 먹고 살려고 지긋지긋하게 일하고 싸우고 했지만,

대학 나와서 공장에 취업 하고 빵에 가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김진숙(민노총 지도위원)

홍세화 선생님 책으로 의문을 풀었다 했다. 인간의 품위!

당신은 그렇게 살므로서 우리에게 그 삶을 가르치고 떠나셨다.

사는 일이 참 어렵다가도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간단한가.

다만 인간의 품격을 지키시라,

생각한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 하라는.

등을 곧추세우게 하는 어른들이 계신다.

당신을 보내고

나는 다시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네.

 


여섯 차례 갔다.

한 번 가면 어깨와 등, 두 곳 치료를 한다고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하니 열두 번을 간 거다

물리치료사와 좀 이물어졌다. 아이 셋을 둔 30대 남성.

대화는 현 정부가 내놓고 시끄러운 의료개혁에 이르렀다.

정책을 반대하기로는 같은 병원 식구라 의사들과 다르지 않을 줄 알았더니,

의사들만 해도 그렇듯

병원 구성원들 역시 층위가 다양한가 보다.

의사들, 저는 좋게 보지 않습니다.

돈만 밝히는 이기주의자들. 환자 목숨을 담보로

의사들에 대한 적대감이 이 정도일 줄이야...

정부가 제시하는 의료개혁의 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당신이 아는 것과 다르다고,

의료 영리화 앞에 이제 우리 같은 사람은 빅5 병원 구경도 못하고

긴 줄을 오랫동안 서야 할 것이라고 설득할 만한 재간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대 증원이 흐지부지되더라도

의사와 국민 혹은 의사와 환자간의 금간 신뢰는 어쩌나,

이 적대감은 또 어쩌나

선거에 이기겠다고 말도 안 되는 2천명 증원을 던져놓고,

잘 굴러가는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정부는 사직한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큰소리쳤지만

그저 돌아오라, 돌아오라고만 말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그게 이 정부가 곳곳에서 하고 있는 짓거리다.

세상은 평온하지 않음으로

사람의 품격에 대해 우리를 일깨우나니.

 

 

겨울에 접어들면 오래고 낡은 학교는 바람구멍을 메우기 시작한다.

그때 고래방 복도에 있는 두터운 매트를 끌고 와 

본관 복도 북쪽 벽의 창 아래에 죽 붙여 세우고,

수행방과 모둠방에도 양 벽의 창 아래 바람막이로 세운다.

오늘 그것들을 다시 고래방으로 보냈다.

비로소 멧골 학교에도 봄이 왔노라는 말이런가.

우리 마음에도 봄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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