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고가는 딸(농주)-민들레 게시판에서 펌

조회 수 1275 추천 수 0 2004.12.15 13:54:00
우리 집 큰 딸이자 막내딸인 새날이가 고등학교를 농고로 가기로 했다.
어제도 중 3짜리 아들을 둔 친구 하나가 "니 딸래미 고등학교 어디로 보내노?"라고
물어왔다.
내 딸이 중3인걸 아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최근에 많이 받는다.

따지고 보면 최근 뿐 아니었다.
딸이 대안중학교인 지리산 실상사로 갔을 때부터 "그럼. 고등학교는 어쩌려고?" 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었다. 인가도 안 난 중학교를 보내서 고등학교를 어떡할 건지, 농고를 보내서 대학은 어쩔 것인지 걱정 어린 질문들이다.
덕분에 나는 생각지도 않고 있던 딸아이의 고등학교 진학을 중학교 입학을 하자마자부터 생각해 봐야했고 결론은 고등학교 보내기 위해 중학교 보내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다.
대학교 보내기위해 고등학교 보내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고등학교를 가야 대학입학 전형에서 유리한지가 고교진학 기준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군 단위 시골학교를 가면 어떤 점에서 대학진학에 유리한지가 학부모들의 고려사항이라고 듣고 놀란 적도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학진학도 오로지 수단과 통로에 불과해진다.
어떤 대학을 가야 취업과 사회진출에 유리한가를 따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뭔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분야에 있어야 결혼? 돈 벌이? 사회적 명망? 권력에 유리한가를 따져야 하는가?
수단과 목적이 뒤집어져 있다.

최선의 선택은 늘 현재에 있다고 본다. 미래는 현재의 행복에서 비롯된다는 게 내 신념이다.
현재는 과거가 모여진 것이고 미래의 씨앗이지만 과거나 미래로 현재가 기울어져서는 안된다고 본다.
딸아이가 가기로 한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는 나는 물론 딸아이도 대단히 만족 해 한다. 몇몇 뭘 아는(?) 사람들만이 잘 됐다고 축하 해 준다.

어제 아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교동창이다.
모교에 다니고 있는 동기인 정아무개 아들래미가 수능점수를 엄청 잘 받았는데
서울대 어느 학과건 지원이 가능한 점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농대를 간다고 하여 어쩌고저쩌고 하는 전화였다.
그 부모이자 내 동기인 정아무개는 명문 K 대를 나와서 바로 시골로 와서 지금껏 포도농사를 한다.
서울 토박이인 부인도 명문 Y 대를 나와서 완전 시골 아낙네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산다. 고향에 온지
20년이 넘는다. 지금은 농민회 간부이자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도 하고 있다.

전화를 한 그 친구는 두어 달 전, 내 딸이 농고 간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그랬었다.
검정고시 점수도 잘 나오고 했는데 뭐가 모자라 농고를 보내냐는 것이었다.
말은 안 해도 나를 자식 장래를 망칠 아버지쯤으로 생각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버지의 주관이 지나쳐서 자식의 고등학교 진학까지 농고를 택한 것으로 보는 눈치였다.
사실 요즘 농고가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마땅한 진로대책이 없고 우수한(?) 신입생도 안 오다보니
'정보화 학교'니 '디지털 학교'니 아니면 '애니메이션학교' 등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농고 뿐 아니라 농대도 마찬가지다.
농대를 지망하는 학생도 적지만 더구나 농사지으려고 농대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점수가 못 미쳐서 어쩔 수 없이 농대 가거나 아니면
농학을 연구하거나 농업기술센터 또는 농협 등에서 근무하기를 좋아하지 직접 농사짓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은 올해 농대를 간 충청도 홍성에 사는 내 친구의 아들에게서 직접 들었던 얘기다.

과학기술의 과잉과 맹신. 반면, 인문학의 냉대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디지털문명과 인문학은 대립과 우열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상호보완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밀양지역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성 폭행 사건을 비롯하여 위기적 사회현상들이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경찰관들의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인문학의 결핍에서 오는 현상들이고 이것은 역으로 과학기술의 위기로 귀착 될 가능성이 높다.

몇 해 전만해도 성폭행 피해여성은 ‘깨진 질그릇’ 이나 ‘신세 조진 여자’ 아니면 더 나아가 ‘행실이 조신하지 못한 여자’ 쯤으로 취급당했었다. 그러나 사회적 피해자로 바라보게 되었고 최근에는 ‘생존자’로 부르기까지 한다. 피해자(victim)에서 생존자(survivor)로 변모 해 온 것이다. 치유와 휴식, 위로와 보호가 필요한 [생존자]를 일선 경찰관들이 알아 볼 리 없다.
단순한 수사대상자일 뿐이다. 인문학의 냉대가 몰고 올 징표에 불과하다.

생명의 농사를 짓기 위해 농대 가는 학생, 농고 가는 사람이 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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