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11.해날. 맑음

조회 수 1252 추천 수 0 2007.02.12 09:44:00

2007. 2.11.해날. 맑음


‘이레 비우기’를 끝내고 회복식에 들어간 첫날 아침입니다.
비우는 일도 복되고 채우는 일 또한 그러합니다.

아침을 들고 젊은 할아버지와 류옥하다는
진돗개 장순이랑 산책을 나갔습니다.
언제 저 녀석을 데리고 나가야지,
늘 묶여있는 걸 보면 마음이 짠했는데
마음들이 매한가지지요.
단식을 하면서도 밥상을 차리는 걸 고마워하시던 삼촌(젊은할아버지)은
제 얼굴에 곤한기가 드러났던지
빨래를 돌려주고 널기도 해주셨습니다.
단식 동안 화기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학교가 바쁜 때도 아닌데 저녁마다 아궁이에 불도 댕겨주셨답니다.
날마다 고마운 분이십니다.

때를 맞춰 온 이는 참 반갑습니다.
산골에서 나눌 게 없으니 시장으로 찾아온 손님이 최고지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니까요.
누룽지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되는대로 나눠먹고 혹여 모자라면 그 사이 서둘러 냄비밥이라도 하고
떡국떡이라도 얼려둔 게 있으면 끓여내거나
국수가락이라도 초고추장에 비벼내면 될 테지요.
그리고 묻혀있는 든든한 김장독이면 반찬 걱정이 무에 있을라구요.
고자리에 귀농해 사는 이영건님,
표고버섯을 기다리며 소를 치는 이철수님,
그리고 막 귀촌(아직 농사를 시작하지는 않은)한 둔전리의 이성안님이 오셨습니다.
달랑 두 식구(저는 미음을 먹고 있고) 밥상을 차리다가
누룽지를 더 끓여내고
김치를 듬뿍 넣고 말린 가자미를 졸이고
묻혀있던 무를 꺼내와 전을 부쳐냈습니다.
어찌나 달게들 드시던지...
이영건님이야 이래저래 인사를 했던 터고
재작년에 들어온 이철수님은 지금은 소 친다고 고자리에 가 있다 하나
집은 대해리 흘목이라 하니 인사가 늦은 셈이지요.
이영건님은 역시 아이들 교육 문제로 찾아온 길이랍니다,
큰 애가 이제 여섯 살인데.
“여, 들어와 살면 다 된 거지요.”
참삶을 아는 어른들이 있고, 둘러친 자연이 있는데,
아이 교육을 왜 걱정하냐 되물었지요.
“이렇게 한가한 거 처음 보는데,
이참에 고자리로 한 번 들리시지요.”
그렇게 고자리와 둔전리를 다녀왔지요.
좋은 이웃들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254 2024. 3.28.나무날. 비 옥영경 2024-04-18 526
5253 2022. 1.16.해날. 흐리다 맑음 / 드르륵 문 여는 소리 옥영경 2022-01-26 527
5252 2019. 6.30.해날. 오후 갬 / 남북미 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옥영경 2019-08-14 528
5251 2023.11. 9.나무날. 흐리다 밤 비 옥영경 2023-11-19 528
5250 2020. 1. 5.해날. 맑음 / 계자 준비위 옥영경 2020-01-20 529
5249 2020. 3. 9.달날. 흐린 오후 밤비 옥영경 2020-04-12 529
5248 2019.10. 1.불날.흐림 옥영경 2019-11-22 530
5247 2023.10.12.(나무날)~15(해날). 흙날 잠시 비 떨어진 걸 빼고 맑았던 / 난계국악·와인축제 옥영경 2023-10-24 530
5246 2019. 6. 9.해날. 구름 조금 옥영경 2019-08-05 531
5245 2019.10. 7.달날. 비 옥영경 2019-11-25 531
5244 2020. 1. 9.나무날. 해 옥영경 2020-01-20 531
5243 2023.10. 2.달날. 맑음 옥영경 2023-10-17 531
5242 2019. 9. 8.해날. 태풍 지났으나 비 옥영경 2019-10-23 532
5241 2020. 4. 7.불날. 맑음 옥영경 2020-06-01 532
5240 2019.12.1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1-16 533
5239 2020. 1.18.흙날. 맑음 옥영경 2020-02-20 533
5238 2023.10.10.불날. 맑음 옥영경 2023-10-24 533
5237 2023. 1. 5.쇠날. 잠깐 해 옥영경 2024-01-08 533
5236 2023. 8.23.물날. 작달비 / 면회 옥영경 2023-08-26 534
5235 2023. 8.27.해날. 구름 / ‘멧골 책방·2’ 닫는 날 옥영경 2023-09-03 53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