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15.나무날. 맑음

조회 수 1304 추천 수 0 2007.02.16 09:03:00

2007. 2.15.나무날. 맑음


식구들이 이렇게도 짝을 이루고 저렇게도 짝을 이루어
교무실과 교실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양철이 덜렁거리는 간장집 처마를 수리하고,
달골 햇발동 살림을 정리하였지요.
공동체식구가 되려고 들어왔던 이의 살림으로 지난 한 해를 살았던 햇발동이
그 살림들이 비워져
냉장고를 새로 들이고 식탁을 들이고 장에 그릇도 챙겨 넣었습니다.
살림이 돌아갈 수 있게 준비해두었지요.
삼촌은 또 틈틈이 설 쇠러 떠나기 전 간장집에 나뭇단을 쟁여주고 계셨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하인리히 뵐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어느 조용하고 아늑한 어촌 마을의 아침,
바닷가 모래밭에서 고기잡이 노인이 평화롭게 단잠을 자고 있었다지요.
노인이 모습이 인상적이어 사진을 찍던 관광객의 기척에 그가 잠을 깼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고기 잡으러 나가지 않으세요? 벌써 해가 저만치...”
“이미 새벽녘에 다녀왔지.”
“아, 그러세요?... 그러면 또 한번 더 다녀오셔도 되겠네요.”
“그렇게 고기를 많이 잡아 뭐하게?”
“참, 할아버지두... 그러면 저 낡은 거룻배를 새 걸로 바꾸실 수 있잖아요.”
“그래가지고선?”“그 다음에는 새 배로 고기를 잡으시면 훨씬 빨리, 더 많이...”
“음... 그 다음에는?”
“그야 당연히 크고 좋은 배를 몇 척 더 사시고, 사람도 많이 부리고...
그러면 뭉칫돈 버는 건 시간문제 아니겠어요?”
“옳거니... 그래서는?”
“그 다음에야... 이 마을에 생선 가공공장도 세워, 싱싱한 통조림도...”
“흠... 그리고 나서는?”
“그때는 별 일도 않고 가만히 누워 그저 편안히 지내실 수 있지요.”
이 말에 고기잡이 노인의 대답은 이러하였지요.
“지금 내가 바로 그렇게 지내고 있네.”

끼니마다 밥상을 차리고 짐승을 거둬 멕이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불을 때고 아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나날이 닥친 일을 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었던 바로 그대로 나날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바로 그렇게 지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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