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28.물날. 흐리다 비바람 천둥번개

조회 수 1268 추천 수 0 2007.04.09 00:09:00

2007. 3. 28.물날. 흐리다 비바람 천둥번개


벌써 아침 볕이 아깝습니다.
겨울이 길기도 하여서 그랬을 겝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아이들과 빨래를 널러 나갑니다.
오래도 입고 자주도 입은 스웨터의 소매가
실이 다 헤져서 풀풀거렸지요.
“얼마나 입었어요?”
“십년.”
“와아. 내가 옥샘 옷 하나 사드려야겠네.”
참 따뜻하기도 한 종훈이입니다.
“옷은 평생 입을 게 옷방에 있으니까...”
이곳저곳에서 보내온 옷들이 옷방에 그득하지요.
준비 없이 찾아온 이들에겐 작업복 옷장이 되기도 합니다.
“커서 책 사 줘.”
“네에.”

아침에 새로 부를 노래를 피아노로 먼저 쳐보았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음을 귀로 익히고 벌써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물 먹는 솜 같은 아이들입니다.
‘아침고요’를 끝내고는 나가
수선화 곁에 앉아 동화를 읽어줍니다.
‘손풀기’는 이제 막 꽃을 벙글려는 돌단풍 앞에서 하였지요.
이 아름다운 봄날에 누군들 시인이 되지 않으려나요.

우리말글 시간은 어찌 어찌 하여 패션쇼가 열렸습니다.
잠시 쉬는 짬에 국화샘댁에서 온 옷 꾸러미를 열어본 게 시작이었지요.
아이들이 헤쳐 가며 옷을 입어보기 시작한 겁니다.
자기 취향이 있더라구요.
하다는 정장을 제 옷으로 정했고,
종훈이는 치렁치렁한, 목이 깊게 패인 원피스에 얇은 머플러를 맸습니다.
그걸로 글쓰기까지 이어갔네요.

숲에 들었지요.
먼지버섯이 흙 절벽 사이 사이에 있었습니다.
아이들 눈이니 저걸 보는구나 싶데요.
진달래가 폈습니다.
남도에서 입 벌리며 보고 온 며칠 전이었지요.
생강나무는 섬진강가 산수유처럼 우리를 반깁니다.
꽃다지 냉이 꽃은 다부룩다부룩 어찌나 천지던지요.
새로 준비되는 산이었습니다.
그의 차림새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늘 곱답니까.

어른들이 표고목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몸살이라도 하겠다 싶습니다.
숲에 다녀와 아이들이 정리글을 쓰는 동안
막걸리 새참을 냅니다,
묵은 김치도 부침개도 부쳐.
저녁을 준비할 땐
아이들이 장구도 옮겨 놓고 빨래도 걷고 갰지요.
참말 사는 것 같습니다.
산골 들어와 살면서도 일이 분화되어 있어
부엌에 서 본 지 오래였지요.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좋아서 또 좋습니다.

이번 학기 첫 ‘우리가락’시간이었습니다.
비바람에 의연한 전사들처럼
천둥번개보다 더 크게 소리를 하고 악기를 쳤지요.
한동안 잡지 않아 놓쳤을 감각을 살렸습니다.
목수샘이 와서 구경을 하고 앉았는데,
종훈이는 무척 쑥스러워합니다.
산골의 수줍음을 닮은 그이고,
반면 산골의 거침이 더 어울리는 류옥하다입니다.

공동체식구모임이 있는 물날입니다.
“표고장하우스 하나를 짓는데도 속속들이 알게 모르게 필요한 게 많은데
혜린네서 중고 파이프를 사면서 차광막, 비닐, 연결 끈, 클립에 많은 걸 챙겨주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갖춰 세워도)시간은 시간대로 들이고 뽀다구도 안 나고...”
그럴 때 효율을 생각하게 된다지요.
그러다가 세상에 넘쳐나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퍼뜩 들면
재활용 하는 게 맞다 마음을 달리 먹는다는 식구들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다르게 살려고 하지요.
이미 넘치게 많은 것들을 ‘다시 쓰며’ 살려지요.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고, 이 삶의 방식을 결정한 사람들 아닌가요...
‘학교 문연날 잔치’에 대해서도 생각을 모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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