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19.나무날. 맑음

조회 수 1235 추천 수 0 2007.04.27 15:06:00

2007. 4.19.나무날. 맑음


양강 사는 종훈(물꼬도 종훈이 있는데) 종혁이네에서
떡을 맞춰오겠다는 연락입니다.
“농사 지으니까...”
있는 걸로 해온다지만
그 농사, 그것도 유기농으로 하는 농사가 어떤 힘이 드는 건지 아다마다요.
“그래두 돼요?”
“그래도 돼요. 한 해 한 번 얼마나 행복하게 놀다 오는데...”
즐거움을 나누는 이웃이 있어서 또 좋았지요.
떡도 실어온다니 힘을 덜어주어도 좋았지요.

이른 아침 이장댁에 들립니다.
잔치 소식도 전하고 걸음 하십사 말씀드렸지요.
마을 집집이 경사에는 누구네라도 잘 가지 않는 어르신입니다.
바쁜 아침이지만
이 시대 말도 안 되는 농사, 그것도 유기농을 짓네 하는 어설픈 물꼬를 보며
한 소리 하기를 지나칠 리 없지요.
“섞여 사는 게 쉬운 게 아니예요...”
공동체라고 모이고 또 사람들이 떠나고 하는 과정들에 대해서도
내막이야 잘 몰라도 이래저래 하고픈 말씀 많으십니다.
“농사로는 안 된다니까...”
농사는 어떤 경제구조도 만들 수 없다,
나 역시 농사지어서 자식 학교 보낸 게 아니라
약초다 뭐다 해서 그 공부 다 시킨 거다,
제발 농사로 뭐 할 생각 말라 말리고 또 말리십니다.
“저희야 팔 것까지 할 재간이 있나요, 겨우 우리야 먹자고...”
“선생들도 뭘 모르고 애들이랑 농사를 짓는다고... 선생이 더 알아야지...
같이 배우면서 할라면 안돼, 알아서 가르쳐야지.
농사는 그렇게 지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올해 쉬어가며 이것저것 가늠을 해보고 있노라며 물러납니다.
들을 얘기는 듣고 흘릴 일은 흘리며 살아가겠지요.

종훈이는 오늘 공동체에 와서 자기로 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서울로 수원으로 다들 일보러 가셨네요.
저녁에 어른 둘 아이 둘, 돌고개에 초대장을 돌렸지요.
대해계곡 끝마을 석현입니다.
“아이구, 고맙게 이렇게 올라오고...”
잔칫날 저녁답에 걸어 내려오시면 잔치 끝에는 실어드리마 하였지요.
꼭 잔치 아니어도
이참에 여러 어르신들 한 번 들여다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종훈이랑 하다를 데리고 비어있는 달골 햇발동에 올랐습니다.
종훈이는 젖힌 고개를 떨어뜨리질 않았지요.
“와아, 옥샘, 여기는 별이 많아요.”
늘 있는 게 비로소 눈에 들 때가 있지요.
아니면 늘 있는 것이 비로소 어떤 곳에 가서야 보이거나.
달골은 모든 게 많습니다.
산그림자도 새소리도 물소리도 바람소리도
배꽃도 복사꽃도 자두꽃도.
또, 잘 보이지요.
산도 나무도 별도 꽃도.
그리고 바람까지.
두 녀석은 아래 윗층 온 마루를 돌며 구슬치기를 하며 밤을 즐겼습니다.
“이제 잘까?”
잠자리에 들 무렵 기질 바클렘의 <찔레꽃 울타리 겨울이야기>를 읽어주었지요.
들판을 지나 냇가 옆 덤불숲에 있는
오래된 나무 기둥과 구부러진 뿌리 사이,
작은 굴뚝에서 가는 연기 피어오는 들쥐들의 고향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만큼 그림도 그러하지요.
무릎 양쪽에서 그림책을 들여다보느라
아이들 머리가 자꾸 바닥으로 갔답니다.

류옥하다 외할머니의 사고 소식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포기한 대신 오토바이를 막 끌기 시작하셨는데
덤프트럭이 앞 차량을 추월하면서 오토바이를 못 본 거지요.
트럭 뒷바퀴에 오토바이가 감겼다는데,
얼마나 다치셨을 거나,
딸네 잔치에 인절미를 해오겠다고 날마다 쑥을 캐고 계셨더랬는데,
어제 마지막으로 쑥을 캐러 가셨던 참에 벌어진 일이랍니다.
“욕실 수세미도 사 두었는데, 일찍 가서 청소도 좀 해야 하는데...
부추랑 마늘 민들레 쪽파 반찬이랑 김치도 다 담아났다 아이가.
우짜노, 손도 모자랄 텐데...”
늘 어머니 그늘로 삽니다려.
나이 오십도 육십도 그러하겠구나 싶습니다.
저승에 가신다한들 그 입김 닿지 않을까요.
마음이 먹먹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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