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25.물날. 뿌연 하늘

조회 수 1309 추천 수 0 2007.05.14 01:56:00

2007. 4.25.물날. 뿌연 하늘


포도나무 잎이 막 오릅니다.
천연농약재인 석회보르도액을 종일 쳤습니다.
700여 평의 달골포도밭만 포도농사를 짓기로 한 올해입니다.
아무래도 포도가 귀한 한 해가 되겠지요.
올 여름엔 생물도, 즙도 미리 신청을 받아야지 합니다.

주마다 한 차례 있는 공동체식구모임 했습니다.
잔치갈무리가 주된 얘기였겠지요.
“하늘이 고맙더라...”
“사람들이 고맙데요...”
늘 해도 마르지 않은 말들입니다.
무대를 준비해준 부산 추임새, 대구 울림, 구미 너름새, 구미 패러글라이딩,
명지대 하늘빛무용단, 국선도, 사회자들한테
어찌 고마움을 전할까 의논도 합니다,
겨우 밥이나 드리고 우리 거둔 것들이나 나누는 정도겠지만.
IYC(국제유스캠프)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올 여름 계절학교 한 일정을 그것과 맞추려지요.
작년 여름엔 일본, 중국, 이란, 키르키즈탄,
그리고 한국대학생들이 함께 했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나라의 젊은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뒹굴지요...

물꼬 돌잔치에 실어올 떡을 위해 쑥을 캐러 다니시던 어머니가
사고가 났더랬습니다.
소식을 듣고도 달려가지 못하다가
이 일 저 일 수습해놓고 간밤에야 넘어갔다 오늘 돌아왔습니다.
집 안과 밖, 새로 이 봄에 단장한 꽃밭이 환하게 맞이하데요.
고향, 어머니, 돌담길, 골목, 언덕, ...
비슷한 군락의 낱말들이지요.
까부룩까부룩 잠이 쏟아지는 곳,
모든 긴장이 다 풀어져버리는 어머니 곁입니다.
집 구석구석 대청소도 좀 하고
이것저것 밑반찬도 해두자 팔을 걷어부치겠다고 간 걸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늘어놓기 일쑤인 어머니는 되려 다른 때보다 더 잘 정리를 해놓고 계셨고,
상을 차려드려도 모자랄 판에
앉아서 밥상을 받게 하셨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마늘, 부추, 파김치다. 민들레김치도 담아봤다.”
전혀 비린내가 없는 도다리를 넣은 미역국에
도다리 찜구이까지...
깁스를 한 왼쪽 손까지 꼼지락꼼지락하며 준비해주신 것들입니다.
“참, 몸에 좋은 것 사드시고, 빨리 나으시래요.”
외손주가 귀하게 갖고 있던 빳빳한 만원권을 전해드렸더니
기특해하며 당신 보물상자에 구겨질 새라 조심조심 넣으셨지요.
나이 마흔에 어머니 머리를 처음 빗겨드립니다.
“흰머리가 부쩍 많아졌다.”
“나이 드신 분들이 시커멓게 염색한 것보다
희끗한 게 자연스럽고 보기도 좋던데요...”
“나는 흰머리가 싫다...”
햇살 간들거리는 마루에서 무릎베개로 누운 어머니의 흰머리도 뽑았습니다.
언제 어머니 속옷을 빨아드릴 일이 있을까요,
욕실에 앉아 빨래판에 옷을 비비는데,
그만 먹먹해지데요.
학교 세 돌잔치에 가져오려고 장만하셨던 밑반찬들이며
농사지은 강낭콩 자루,
새벽장에 다녀오셔서 말린 꾸덕꾸덕한 흰살 생선들을 잔뜩 실어옵니다.
당신 드리운 그늘로 이 생의 자식들을 살리고,
또 자식이 살 집을 마련하러 저 생에 먼저 가는 당신들이시지요...

돌아오니 책상 위에
칠판에 적어둔 하루일과표대로 움직인 아이들이
저들끼리 잘 챙겼다는 보고서를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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