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29.물날. 비

조회 수 1279 추천 수 0 2007.09.21 07:17:00

2007. 8.29.물날. 비


“엊그제 호박을 찾길래...”
한권사할머니 호박 두덩이 들고 오셨습니다.
얼마 전 손님들이 찾아들었을 적
달린 호박이 너무 어려 혹 앞집에 있나 여쭈었더랬지요.
그 소식이 몇 집 건너 게까지 간 겝니다.
버섯을 나누었지요.
챙겨주셔서 고마웠고
이렇게 드릴 수 있어서 또 얼마나 고맙던지요.
“매운 고추라.”
앞집 할머니도 고추 한 바구니를 들고 다녀가셨네요.
역시 버섯을 나눕니다.
돈이 교환을 대신하지 않는 산골살이랍니다.

곳간을 정리하다 재봉틀 앞에 잠시 앉았습니다.
예선 빛 좋은 개살구이다
아이 외가에 가서 한 숨 돌릴 적에나 하는 재봉질이지요.
즐겨 입는, 아니 정확히는 허구 헌 날 입어대는,
치마 하나를 손볼까 하고.
금새 또 밥상을 차려야 해서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사실 수습이 어려웠을 겁니다.
동대문시장 가는 길에 감을 떠서 아예 다시 만드려지요.
지난 번 순천 갔을 적이었습니다.
두 겹으로 된 치마의 안 겹이 아주 삭아 내렸지요.
꼭 10년을 입었는데 쓴 걸로 따지자면 20년은 되었다고도 하겠습니다.
가장 더운 여름 한 달 아주 추운 겨울 두 달 빼고
어르신을 만날 때도 강연을 갈 때도,
그러니 적당히 갖춰 입은 옷이 되기도 하고 편하게 입은 옷이 되기도 하며
일 년 내내 사시사철 입고 있던 옷이었으니까요.
축축 찢어지도록 함께 시간을 보낸 옷이랍니다.
사연도 많았겠지요.
상설학교로 처음 문을 열 때도 그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crystal waters eco-village’에서 우퍼로 있을 땐
(유기농을 하는 농가에서 일 하는 걸로 숙박을 해결하는)
주인 코리나가 다른 거 다 안 해도 되니 그 치마 하나만 만들어 달라했지요.
그 역시 수년을 잘 입으라고
멜라니 타운까지 나가 좋은 옷감을 같이 골랐더랍니다.
향후 십년은 옷을 사 입지 않겠다고 하고
(내 손으로 사지 않는다고 어디 새 옷이 없기야 했겠습니까만)
꼭 그렇게 실천하며 살았던 세월에
친구 같은 옷이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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