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25.불날. 휘영청 달 오른 한가위

조회 수 1237 추천 수 0 2007.10.05 22:22:00

2007. 9.25.불날. 휘영청 달 오른 한가위


한가위입니다.
그저 그득한 마음입니다.
저 보름달처럼 말입니다.

오전에 손님이 들었습니다.
천연세제를 만드는 왕혜금님 김규숙님입니다.
언론에 워낙 소개되어
어디를 가나 알아보는 사람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는데,
산골 예서는 그저 지나는 한 사람입니다.
고자리 철수아저씨가 소개해주셨지요.
대형마트에서 파는 환경세제라 하더라도
결국 계면활성제가 들었다,
좋은 기름을 쓰니 천연세제가 비쌀 수밖에 없는데,
만들어라, 수익사업으로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권하십니다.
생태공동체로 나아가고자 하며 세제에 대해 고민 오래였는데,
이렇게 또 길이 생기네요.
참 사는 게 신비한 산골살이입니다, 물꼬입니다.
꼭 와서 가르쳐 주겠다십니다.
“아예 날을 받아 갈게요.
서로 연락 하자하면 미뤄지기 쉽고 먼저 전화하기 불편할 수도 있고...”
맞아요,
그러다 그냥 없던 일이 되기도 하는 걸 적지 않게 봤지요.
시월 하루를 잡아둡니다,
혹 사정이 생기면 다시 날을 옮기더라도.
된장을 끓이고 뚝딱뚝딱 같이 점심을 해먹은 뒤 떠나셨답니다.

시월을 지나며 금새 기세가 죽을 것이나
그 때까지 어찌 보고 있는답니까.
오후엔 간장집 앞 남새밭 풀을 뽑습니다.
언제부터 일이었는데,
그 두어 시간을 내지 못해 여태 미루었지요.
거기 제 게으름이 있고
종종거리는 산골 삶이 있고
정말 사는 일이 무엇이어 이런 일도 못챙기는가 회의가 일기도 하는
그런 풀이었지요.
그래서 차마 다 쳐다볼 수가 없어
드나들며 그냥 얼굴을 돌리곤 하였더랍니다.
삼촌도 오셔서 같이 호미를 드셨다가
질퍽한 닭장 바닥이 생각나셨던 모양입니다.
수레로 풀을 실어가고 계셨지요.
한번 쯤 부추를 더 먹을 수 있었는데
풀에 가려 손도 못 대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잘 베어두면
두어 해는 더 키워 먹을 수 있을 겝니다.
줄기에 붙어 풀에 가려있던 달덩이 같은 호박 한 덩이도 나왔습니다.
류옥하다가 키운 것이지요.
지렁이며 꼬물거리는 것들 또한 마구 쏟아졌습니다.
네가 살아 고맙구나, 반가움으로 맞았지요.
“아구구, 무릎이야.”
허리를 펴는데,
마을에 잠시 자식들 다녀가고 또 달랑 남은 할머니들이
뒷짐 지고 걸으시다 인사를 건네옵니다.
“뭐해?”
“... 잘 쇠셨어요?”
“어째 안 갔나보네?”
“예, 식구들 먼저 보내구요.”
“그래, 일이 있으면 못가지, 뭐.”

이웃 철수아저씨네에서 포도가 왔습니다.
아침에 들렀다 우리 포도를 떼먹어보고는
즙으로 다 내고 생과로 먹을 만한 것이라곤 영 맛이 떨어지니
저녁에 지나는 길에 그네 포도가 달다 넣어주셨지요.
“약도 안 쳤어. 봄에 세 번 밖에 안쳤어.”
“응? 세 번?”
“그래도 저농약이야. 내가 작년에 열 번인가 그것보다 넘게 쳤는데...”
잊고 있었지요,
세 차례도 저농약입니다, 과수는.
달기는 참 답디다만...

더러 한가위 안부를 물어오셨습니다.
뭐나 귀한 연결이었지만 특히 마음 오래 머무는 전화가 있었지요.
고아원에서 나고 자란 친구입니다.
게다 다시 그곳에 가서 일을 하고 있는
(흔히 뒤도 안 돌아보고 싶어 하며 떠나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저 고마운 친구입니다.
야무지기는 또 어찌나 야무진지,
속은 또 얼마나 깊은 그인지요.
물꼬의 품앗이일꾼이기도 합니다.
“샘, 이 주일 전에 일 그만 뒀어요.”
그리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랬겠지요, 그랬겠지요,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도 그 공간도 서로 기대치가 컸을 테고
그만큼 힘에 겹지 않았을 지요,
그 속이야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만.
“애썼다. 우리가 살면서 일을 놓고 쉴 수 있는 때가 그리 많지 않더라.
일단은 잘 쉬고, 꼭 다녀가고.”
가족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는지요,
힘에 겨울 때 비빌 언덕!
그저 예가 언덕 하나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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