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4.물날. 맑음

조회 수 1596 추천 수 0 2007.10.29 04:55:00

2007.10.24.물날. 맑음


흔히 대안학교, 혹은 물꼬 같은 산골공동체배움터에서는
제도학교에서 쓰고 있는 교과서를 부정한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물꼬에선 그렇지가 않답니다.
그간의 인류의 축적물을 나름대로 담고 있는 교과서를
부정할 까닭도 없거니와
그 가치의 유용성을 버리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지요.
얼마 전 ‘우리말 우리글’ 시간엔
초등 2학년 2학기 읽기 책의 한 쪽을 펼쳤습니다.
는개, 이슬비, 가랑비.
가늘게 내리는 비들입니다.
굵고 억세게 내리는 비로는
작달비 장대비 채찍비가 등장하였지요.
세찬바람과 함께 내리는 채찍비...
감동이 일었지요.
가만히 읊조려보았습니다,
낱말 하나가 고스란히 시입니다.
우리 말, 그것을 잘 살리고 가르치는 게 국어시간일 테고,
국정교과서는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거지요.
새삼 교과서들을 잘 써야지 싶데요.

오늘 벼를 가마니에 넣어 광에다 들였습니다.
아이들이 큰 일꾼이었지요, 늘처럼.
오전엔 ‘신문이랑’ 대신 ‘그림놀이’를 하였습니다.
탁본흉내였지요.
모든 튀어나온 것들, 혹은 들어간 것들을 종이 위에 옮겨보았습니다.
그걸 오려 다시 스케치북 위에 구성을 했지요.
탁본의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이 나라 탁본의 대가 직지사 흥선스님한테
한 두주 뒤쯤 아이들이랑 가서 탁본하자 조를 참이지요.

‘국화’시간도 있었네요.
고생 무지 하고 오셨습니다.
어제 차가 병원에 갔다네요.
“웬만하면 전화주고 쉬시지...”
“그래도 빠지면 되나요?”
지난주도 물꼬 사정이 있어 빼 달라 했으니
두 주를 다 빠질 수 없다고 오신 것이지요.
임계리에서 영동-황간간 큰 길을 나오셔서
다시 게서 황간까지, 다시 매곡까지,
그리고 상촌까지.
다음엔 그제야 연락을 받고 우리 차가 나가 뫼셔 왔네요.
무려 세 시간 여정이였답니다.
그렇게 오신 길이 또 아이들한테 큰 배움 하나였을 겝니다.


읍내 모처의 주차장에서 도마뱀을 만났습니다.
아주 엎드려 그를 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징그러워 저만치 비껴갔던 그입니다.
사람이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줄 알고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하였지요.
그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요?
“나는 늘 다녀도 늘 세상이 넓고 길이 낯선데
너는 이 낯선 세계 어디로 가는 것이더뇨?”
존재를 다르게 보는 법을 끊임없이 배우는 물꼬입니다.
무엇이 징그러운 것이고 무엇이 사랑스러운 것이겠는지요.
오늘, 도마뱀이, 귀여웠습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394 2019. 9. 8.해날. 태풍 지났으나 비 옥영경 2019-10-23 485
1393 2월 어른의 학교 사흗날, 2022. 2.27.해날. 밤 눈싸라기 폴폴 옥영경 2022-03-24 484
1392 2020. 4.15.물날. 맑음 / 총선 옥영경 2020-06-15 484
1391 2019. 9.30.달날. 맑음 / 어머니는 남는다 옥영경 2019-11-22 484
1390 2022. 1.24.달날. 흐림 옥영경 2022-01-31 483
1389 2020.10.10.흙날. 맑음 / 새 책 출간 계약서 옥영경 2020-11-18 483
1388 2019.11.20.물날. 맑음 / 서울 북토크: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 옥영경 2020-01-09 483
1387 2019.11. 4.달날. 맑음 옥영경 2019-12-27 483
1386 172계자 닫는 날, 2023. 8.11.쇠날. 짱짱 옥영경 2023-08-13 482
1385 2019.12.31.불날. 해 옥영경 2020-01-17 482
1384 2019.11. 7.나무날. 오후 흐림 / 내가 내가 되는 용기! 옥영경 2019-12-29 482
1383 173계자 이튿날, 2024. 1. 8.달날. 맑음 옥영경 2024-01-10 479
1382 2월 어른의 학교 여는 날, 2020. 2.21.쇠날. 밤비 옥영경 2020-03-28 479
1381 167계자 나흗날, 2021. 1.20.물날. 해 옥영경 2021-02-08 478
1380 2020. 1.19.해날. 아침 이슬비 옥영경 2020-02-20 478
1379 2020. 1. 2.나무날. 조금 흐림 옥영경 2020-01-20 478
1378 2019.10. 5.흙날. 흐림 옥영경 2019-11-24 478
1377 2024. 1. 6.흙날. 맑음 / 173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4-01-08 477
1376 2021. 1.30.흙날. 해 옥영경 2021-02-14 477
1375 2020. 2.25.불날. 비 옥영경 2020-03-31 47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