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9.달날. 세상 바람이 시작되는 대해리

조회 수 1440 추천 수 0 2007.11.09 07:10:00

2007.10.29.달날. 세상 바람이 시작되는 대해리


또 흐린 아침입니다.
큰해우소 뒤 커다란 잣나무들과 버드나무 가지가
어찌나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나뭇잎을 떨구는지
세상 바람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만 같습니다.
북쪽으로 난 이 골짝은 바람 맵기가 여간하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버섯도 많고 산살림이 풍부하기는 하나
특히 겨울밤의 바람은 수십 대의 덤프트럭이 지나는 듯하지요.
그 바람 세기가 어떨지
보여주는 이른 아침절입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달날 아침에는
‘첫만남’이라고 한 주 맞이 준비를 하는데,
시작하면서 어찌할 지
끝내면서는 하는 가운데 어떤 마음들이 들었나를 살핍니다.
“힘들었어요.”
“쓸기 할 때 처음 사람이 못 하면 다음 사람도 못 하는데
그러면 청소가 늦어져...”
방법을 잘 찾아보라 합니다.
“형, 왜 물 안 잠궈?”
걸레를 빨고서였는지 한 녀석이 수돗물을 튼 채 나온 모양인데
다음 녀석이 그걸 또 보고는
잠근 뒤에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을
그냥 와서 형에게 말을 던집니다.
내가 한 일은 아니나 내가 할 수 있는 마음,
아름다운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그런 때문 아닐지요.
그가 아이를 버리지 않았지만 아이를 거두고
그가 강물을 더럽힌 게 아니지만 그 강물을 맑게 하기 위해 애쓰고
그가 그이를 굶게 한 게 아니지만 밥술을 나누는.
왜냐면 이 우주 모든 것은 서로 얽히어
결국 내가 아이를 버린 것이며
내가 강물을 더럽힌 것이며
내가 그를 굶게 했을 것이므로.
거대국가가 잘못한 세상 쓰레기들을
당장 내가 아프므로 가려운 놈이 긁는다고 치우는 거지요.
느끼는 사람이, 먼저 안 사람이, 움직이는 겁니다.
네가 한 짓이니까 네가 할 때까지 기다리는데
그가 아니 한다면 어찌하겠는지요.
답답한 놈이 우물 파야지요.

“내 돼지가 휘파람을 부는 것 같아.”
새로 생긴 우리들 사이의 속담입니다.
뭔가 매우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 앞에서 쓰는 표현이지요.
요즘 새로 읽기 시작한 장편의 한 구절을
같이 공유하는 겁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됨,
같이 읽어나가는 책으로 한결 가까워지고
유머 감각의 질(?)이 높아지기까지 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공동체에 머물고 있을 적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큰 아이들과
식탁에서 같이 읽은 문학작품을 논하며
바로 그거 우리 식탁에서 아이들과 하고팠습니다.
얼마나 다사로운 풍경이던지요.
그리고 이곳, 그래 왔고, 지금도 그러하지요.
“옥샘도 그 책 읽었어요?”
“그런데 너무 슬퍼죠?”
“그래선 안 되는 거지요.”
“거기서 나왔던...”
우리 살이가 훨씬 풍성해진 느낌을 주는
책 이야기들이랍니다.

“오늘은 책 조금만 읽어요.”
읽어주는 책이라면 어떻게 하면 더 길게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녀석들이
오늘은 튕깁니다.
“책은 우리끼리 읽을 수 있지만...”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시간을 늘이자는 겁니다.
그 시간을 어찌나 좋아하는지요.
피아노 앞에서 아주 목소리들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기, 읽고 말하기, 듣고 되말하기들을 하며
‘우리말우리글’ 시간을 보냈지요.

“좋은 날 다 놔두고...”
바람 거친데 오후에는 모두 달골에 올라 감을 따내렸습니다.
몇 날을 해야 할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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