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30.쇠날. 소나기

조회 수 1319 추천 수 0 2008.06.09 13:41:00

2008. 5.30.쇠날. 소나기


아침, 마당에서 아이는 한껏 팔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아, 감꽃냄새...”
그리고 찔레향내를 흠뻑 맡고 있었지요.
그 기운들로 아이가 저렇게 실한 게 아닐지요.
큰 힘들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 산골이어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자주 “거저 키운다.”고 하시지요.

연일 짬짬이 모돌리기를 합니다.
더러 빠진 모가 있고 약한 모가 있고 상한 모가 있습니다.
그곳에 모를 다시 꽂는 거지요.
젊은 할아버지가 아침에 잠깐씩 하던 일인데,
더 미룰 일은 아니어 오늘은 같이 붙어서 했습니다.
다섯 다랑이를 다 해치웠지요.
오래 무릎을 앓아왔습니다.
굽혀 신발을 들고 신발장에 넣는 것도 어려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잠시도 쪼그려 앉아 풀을 매지 못했지요.
소식을 들은 논두렁이나 벗이 한약을 보내오기도 했고,
잠시라도 통증을 이겨보라고 한방파스를 받은 것도 몇 상자였더이다.
때마다 그리 챙겨 주었지요.
그리고 스스로도 몸에 귀를 많이 기울였던 몇 해였습니다,
수술이나 약물치료에 의지하지 않고.
병을 제거해야하는 이물질로 보지 않고
그냥 제 일부처럼 여기며 보냈지요.
그러는 가운데 새 살이 돋듯 조금씩 회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설학교가 쉬엄쉬엄 해져서, 또 공동체 규모도 줄면서
몸의 고단함이 준 것도 도움이었겠지만
무엇보다 예 살아서, 그리고 물꼬를 통한 좋은 연들의 축복 속에 지낸 게
가장 큰 약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오래는 못해도 밭일도 하고 논일도 하지요.
고마울 일입니다.

이제야 이웃마을 ‘마고농원’에 갑니다.
밝은 기운이 아까워 늦도록 들에 있다
한참 어둑해서야 넘어갔지요.
아이가 입원 하던 날,
필요한 짐들을 죄 부탁하고 여태 인사도 못 갔습니다.
어려운 시간, 이웃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게 했지요.
“그거 다 쓰라고 준 건데, 왜 도로 갖고 왔어?”
그래도 돌려드릴 것 드리고
물꼬에서 요긴 한 것 되받아왔지요.
늘 귀한 말씀을 주시는 당신들입니다.
오늘도 이 시대의 큰 영성지도자이신 한 스님과의 모임을 전했지요.
모임에 그 지역의 말도 안 되는(?) 스님 한 분이 찾아왔다는데,
그래서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데,
“어이구, 몰라 뵈었습니다.”
우리의 스님, 바로 그 지역 스님 앞에 가서 큰 절을 하시더라나요.
무릎을 탁 쳤습니다.
당신이 분명 어른이십니다,
큰 스승이십니다.
당신이랑 동시대를 살아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심으로
모두의 마음에 인 찌푸림을 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하신 게지요.
그리고 아선샘과 영현샘이 주시는 충고도 잘 받아왔습니다.
“옥선생, 당신이 옳아.”
그러나 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어리석은 이에겐 어리석게 말하라
듣는 자에겐 들리게 말하라,
이해하는 자에겐 모두 말하라, ...
귀한 말씀들이었다마다요.
잠시 인사만 하겠다던 자리가
두 분과 젊은 할아버지와 아이까지 새벽 1시를 넘겼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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