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3.물날. 소낙비

조회 수 914 추천 수 0 2009.06.13 23:41:00

2009. 6. 3.물날. 소낙비


소낙비 지난 한낮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은 안에 손이 가지 못했던 안에 일들을 하지요.
빨래방(비닐하우스)에 무섭게 오르는 풀도
멀거니 구경만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비님 덕에 오늘은 그 풀도 잡아보았네요.
4월에 뿌린 시금치도 오늘 다 거두었습니다.
봄시금치는 겨울처럼 통통하지 않고 가늘지요.
데쳐서 무더기 무더기 지어 냉동실에 넣어도 두고
굵은 건 국거리용으로 다듬어두고
식구들이 김밥을 말았습니다.
묵은 김치에 맛살, 달걀, 표고버섯볶음...
그리고 시금치를 넣었지요.
맛이요?
말해 뭣하겠는지요.

아이가 저녁 설거지도 맡았습니다.
점심설거지도 저가 했는데,
가위 바위 보로 단판에 끝난 승부에
깨끗이 승복하고 앞치마를 맸지요.
지는 걸 못견뎌하기만 하던 아이도
세월 가니 허허로움 배우는 게지요.
오늘은 밭가에서 잠시
오디를 따거나 떨어진 걸 줍기도 하였습니다.
작은 오이효소 항아리가 생겼지요.

달무리 진 밤하늘입니다.
젖은 마당을 거닐었습니다.
식구들은 저마다 방으로 들었네요.
지나간 시간들이 그 마당에서 놉니다.
기쁨만 있는 게 아니었지요.
노여움도 일었던 시간이 새록새록 피어올랐습니다.
모여 사는 일, 참 쉽지 않지요.
한국으로 돌아왔던 2003년 가을 어느 날,
갈등으로 속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던 밤이 있었습니다.
누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잘 안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요, 뭐.
그런데 헤어져야할 때 헤어지지 못한 관계는
결국 더 넓은 관계까지 파탄으로 이르게 하는
갈등의 중심이 됩디다
(아, 물론 그게 다가 아니겠지만 말을 하자면).
물꼬 일을 해오며 꼭 하나 후회하는 시간을 꼽으라면
그 때를 꼽겠습니다.
그래서 때로 저는 상대의 이혼을 축하한다고 말합니다.
억지도 끌고 가기보다 그게 더 건강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상대를 서로 할퀴며 생채기 내는 것보다
헤어져서 서로 더 정겨울 수도 있는 겝니다.
관계를 끝까지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것이
헤어지는 것만 못한 꼴이 될 수도 있더란 말입니다.
헤어져야할 때 헤어지는 것도 지혜다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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