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23.나무날. 조금 흐렸던 하늘 / 갈기산행

조회 수 1313 추천 수 0 2009.07.30 06:47:00

2009. 7.23.나무날. 조금 흐렸던 하늘 / 갈기산행


지역 화가들에게 산을 안내하기로 했는데,
어찌 어찌 하야 계자를 며칠 앞둔 지금까지 밀려
꼭 이 학기 끝나기 전 지켜야할 약속으로 남았지요.
그런데 정작 의기투합했던 모임에선 한 사람만 붙고
카톨릭계 사람들이 함께 갔습니다.
이미 물꼬를 방송을 통해 잘 안다시는 분들이셨지요.

사람들이 바뀌면서 오를 산도 바뀌었지요.
대야산을 가고 싶었습니다.
이번학기 내내 노래 부르던 산이지요.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이라 혹 너무 힘이 겨울까 하여
수통골로 다시 잡았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 그러하였는데,
안내해줄 이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네요.
마침 다른 선배 하나가 워낙에 다니는 길이라며
이것저것 꼼꼼히도 길을 알려주었는데,
그러는 사이 행선지는 갈기산으로 어찌 어찌 정해져버렸답니다.
지난 봄날 끝에 오른 천태산과
금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산이지요.

아이도 없이 산에 오르기는 수년 만입니다.
영동읍내에서들 만나 차 한 대로 정리하였지요.
갈기산 간이주차장에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싸리꽃들 만발하데요.
민달팽이 기어와 반기더이다.
뒤를 돌아보니 큰 비로 분 금강이
그만큼 큰 움직임으로 출렁이고 있데요.

500미터쯤 오르면 나타나는 헬기장에 이를 때까지
갖가지 버섯들이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이맘 때가 특히 그러하지요.
덜게기까지 다시 600미터를 나아갑니다.
숨어서 핀 듯한 노오란 산나리 한줄기 곱기도 고왔답니다.
여전히 버섯잔치!
작은 뱀도 한 마리 만났습니다.
그들의 몸은 참으로 가볍지요.
날뱀이라는 이름이 있으려나,
정말 풀 위를 날아갑디다.

1.3킬로쯤 오르니 정상에 이르렀고
거기서 점심 밥상을 풀었습니다.
영남쪽에서 온 산악인들이
그 곁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지요.
산에선 우리 모두가 손님이어
그 처지로서의 연대가 퍽 쉽게도 생기지요.
배를 채운 몸이 노곤해집니다.
밥상 곁에 누웠지요.
그런데 어르신들, 참말 할 말도 많습디다.
사는 일이 그렇게 재미난 얘깃거리일 수가 없어
거기서 두어 시간이었답니다.
둘레의 쓰레기들을 좀 줍고
말갈기 능선을 타고 갑니다.
1.5킬로미터쯤 이어진다던가요.
말갈기능선 바위 어디께에서 퍼질고 앉아
노래 한 곡도 목 터져라 불렀습니다.

차갑고개를 지났을까나,
거기서부터 다시 4km 소골로 내려옵니다.
계곡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가로지르기를 수차례
그예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지요.
양산을 지나며 우체국장님 마침 계셔
천태산 은행나무골로 들어가 하산주도 한 잔 걸쳤더랍니다.
“다음번에 저쪽을 탑시다!”
갈기산 농원 쪽으로 올라 몇 봉우리 치고 도는 길 말이지요.
또 같이들 갈 일이 있긴 하려나요...
어르신들 틈에서 마음 참 다사로운 하루였답니다.
산은 또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요,
낮다고 만만하게 볼 산 아닙디다.

아, 그리고,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일은 고마울 일입니다.
지붕공사를 어쩌나 걱정 컸는데,
마침 산을 오른 분의 이웃 사람 하나가
그런 일을 야물게 잘하는 분이 계시답니다.
와서 젤 먼저 전화부터 드렸지요.
낼 들러봐 주신다셨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오늘 산 아래에 닿을 무렵
달포를 넘게 제 안에 머물고 있던 생각 하나 또 떠올랐습니다.
한 기자가 EBS까지 장악한 학원계의 거물급을 인터뷰한 기사의
마지막이었지요.

Q. 솔직히 이렇게 달려온 인생이 행복하십니까?
A. 나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것은 근거 없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시작과 끝이 자기 의지로 되지 않는데, 행복이란 인간이 너무나 행복하지 않아 만들어 낸 형이상학적 추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죠. 즉 ‘행복을 위해 산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말이에요. 저는 대신 ‘몰입의 평화와 성취감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고 믿어요.

몰입의 평화와 성취감이 나를 존재케 한다,
존재케 한다...
산을 내려서며 또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참, 오늘부터 용찬샘이 들어왔습니다.
장기방문자로 3개월을 머물 겁니다.
첫 방문자로 며칠을 묵었고,
빈들모임을 세 딸과 꾸준히 오며
물꼬에 깃들어 살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 이입니다.
우선 3개월을 가족없이 홀로 머물며 가늠을 서로 해보기로 합니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귀농에 대한 관심도 아니라지요.
그저 물꼬라는 곳에 깃들어 살고 싶으시다 했습니다.
도회에서 40년을 산 사람,
성실하고 바르고 착하나
몸으로 할 줄 아는 게 별반 없다시는데,
이 산골의 거친 삶이 가혹하지는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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