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계자 사흗날, 2010. 1.12.불날. 아침에 밤에 눈싸라기


헐렁한 하루였습니다.

눈 날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황토방에서 ‘해건지기’를 할 참이었지요.
창밖의 눈은 제법 내릴 기세고
우리는 전통수련법으로 수련하고 명상하였습니다.
그 사이 희중샘은 흙집해우소 바닥을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고 있었네요.
냄새의 주요 진원은
남자아이들의 오줌이 바닥에 넘치는 까닭이었지요.
아이들이 ‘손풀기’를 하고 있을 적
샘들 몇은 뒤란 화목보일러 앞으로 나무를 옮겼고
장작을 패고 톱질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의 선생은 그런 사람들이지요,
칠판 앞에서만 서는 게 아니라.
유환이도 잠시 와서 거들었답니다.

그리고 ‘들불’.
눈을 감았다 떴더니 우리 모두 논에 들어가 있데요.
샘들은 가마솥방에 모여 곳곳에 불을 피우고
아이들은 논두렁인양 큰 마당 눈밭에서 뒹굴었습니다.
논 한가운데서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은행이 구워지고 가래떡이 데워지고
그리고 달고나가 국자 안에서 끓고 있었지요.
논가에선 이글루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건표와 성재는 쌓는 방법으로 설전이었다지요.
‘요즘 아이들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하는 것이 유일한 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자연에서 자유롭게 풀어져서 놀고,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간식을 즐겁게 먹는 모습을 보니 이런 경험들이 아이들의 삶에 좋은 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주현샘의 하루정리 글 가운데서)
달고나를 맡았던 아람형님, ‘아주 작은 것인데 이곳에서 자신이 당연히 할 일’인데
‘아이들이 열광’해서 즐거웠다며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더욱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역시 하루정리 글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구들더께’.
황토방은 자연스레 잠자리가 되고
모두방은 놀이방이 되었습니다.
책방도 있고,
물론 눈 내린 너른 마당을 달리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샘들이 더 달콤한 시간이었지요.
아이들이야 어디 등을 얼마나 붙이고 있던가요.
훈정이랑 예현이가 오가는 아이들 발걸음에 주의를 주며 지켜준 덕분에
샘들은 한숨 잘 자고 일어났더랍니다.
예현이는 손등이 턴 아람형님의 손을 보더니
가방을 뒤적거려 로션을 챙겨 와서는 발라도 주었지요,
“가만히 좀 있어요, 속상하게.”
움직이기라도 할라치면 잔소리를 하며.
잠이 들 때까지 곁에 있어준다며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그러더라나요.
“아이들에게도 내가 그리 해주었을까......”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일이 너무 오래 되었더라며
한편, 그리 자신이 보내는 시간을 돌아보게 되더랍니다.

3:30.
등을 붙인 구들에서 읽고 있던 책에서 뜨던 실에서
등 떼고 눈 떼고 손 떼고 모두 모이기로 한 시간입니다.
해 떨어지기 전 눈썰매장 한 번 다녀오자 했더랬지요.
짚을 넣은 비표포대를 하나씩 들고
눈길을 가로지르며 아이들과 걷는 길,
네, 정토이고 천국이고 극락이다마다요.
이보다 더한 아름다운 풍경을 본 적이 없습니다.
눈썰매장은, 두터우나 가볍게 쌓여있던 눈이 좀 걷히자
아래는 너무나 단단하게 언 얼음이었지요.
상급슬로프부터 타고 내려오니 그 속도가 어마어마하였답니다.
행여 아이들이 튕겨나갈세라 샘들이 아래서 받쳐주는데,
모두 한 덩어리로 멀리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지요.
재미는 있어 했지만
아찔아찔하여 보고 있을 수가 없습디다.
마침 아래 하급슬로프도 어린 녀석들이 잘 다지고 있었지요.
아래로 내려와서 타자 합니다.
시시할 것 같다더니 타보니 또 재미가 있더란 말이지요.
줄이 끊어질 생각도 않고 아주 날 어둡도록 이어질 판이었답니다.

‘한데모임’.
노랫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고 가짓수도 많아집니다.
마당에서 교무실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을라치면
시간이 그렇게 오래 멈춰있었으면 싶지요.
마음이 한없이 순해지고,
아마도 그걸 평화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들어가서 같이 손말도 연습하고
‘신아외기소리’도 부르고 ‘진도아리랑’도 ‘산도깨비’도
북장단으로 익히고 불렀지요.
이어 오늘은 건표와 성재가 진행을 맡아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에서 부터 서로에게 하고픈 말,
의논이 필요한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시설아동 하나가 아이들 대부분에게 비난을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잠시 그가 자리를 떴을 때였지요.
적어도 그가 없는 자리에서 다수가 몰지는 말자,
그도 할 말이 있고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런 어른의 말에 모두가 수긍했고,
아이들 속에서 나온 이야기는 한 어른이 전해주기로 합니다.
그런데 습이 된 걸 고치기는 참 어렵지요,
특히 욕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도 여기 오면 나날이 덜 쓰게 되는데,
거의 욕을 듣기 어려운데,
아직 날이 덜 간 게지요.
나아질 겝니다.

‘춤명상’.
절기를 따라 가던 한 해의 춤명상을
올 겨울 계자에서 결산하고 있습니다.
대동강물 풀린 우수를 지나고
개구리가 튀어나온 경칩도 지나
춘분을 지나고 청명에 이르렀다
백로 지나더니 추분에 이르고 있었지요.
온 몸으로 ‘피고지고 거두’었습니다.
어제 힘없이 주저앉던 유환이,
오늘은 드디어 곁의 예지샘이 일러주는 대로
(유환이는 야맹증이 있습니다) 곧잘 동작을 따라합니다.
허리를 접고 손을 땅으로 가져가는 동작을
아주 멋있게 해내고 있었더랍니다.
그 모습을 유심히 곁에서 보던 성재,
모둠 하루재기에서 열심히 하는 유환이 모습이 좋더라고
자랑스레 평해주었지요.
아이들이 그린 동그라미 안에는
거둔 알곡으로 채워진 나뭇잎 모양의 주머니가
켜진 초와 함께 곱게 놓여있었습니다.

‘대동놀이’.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이어달리기도 하던 어제랑 달리
오늘은 다시 뜀박질입니다.
주춤거리던 처음 온 샘들도
오늘은 사력을 다하던 걸요.
그럴수록 아이들의 함성은 높지요.
야밤의 산에 들어 토끼도 몰고,
그런데 그만 토끼 우리에 멧돼지가 들어있질 않나
아주 난리가 아닌 밤이었더랍니다.

예현이의 얼굴에 뭐가 나 있습니다.
가렵지는 않다네요.
목이며 몸을 들춰보니 얼굴만 그러합니다.
어떤 자극이 얼굴에 닿은 걸까요?
어디가 아프거나 하진 않아 일단 살펴보기로 합니다.
당장 피 철철 흘리는 일도 아니고,
어쨌든 나쁜 기운이 빠져나오는 건 틀림없다 싶어,
그리고 제 몸이 스스로 이겨내기를 기다려보자 하지요.
현수는 이제 좀 마음을 붙이나 봅니다.
환하게 웃고 다니네요.
사람은 패가 생기면 용감해진다는데,
그래서 대한민국 어린이집 대표로 온 민아도
예현이 승미랑 패가 되면서 더 용감해졌으려나요.
더욱 씩씩해졌답니다.
유환이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눈이 불편해 걱정 일더니 할 말 다하고 애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있네요.
그가 신발을 찾고 있으면
곁에 있는 아이들이 어느새 찾아주고 있습니다.
경이네 언니는 그런다네요,
언니랑 싸우기라도 할라치면 경이 더러 물꼬 가란다 한답니다.
그런데 아람이형님 동생도 그런다네요.
싸울 때면 언니 물꼬 언제 가냐 쏘아붙인답니다.
한편, 더 많이 와서 더 많이 배려하는 애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언니 따라 왔던 세월이며
아주 오래 물꼬를 드나든 한 여자 아이가 입에 올려졌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그 아이가 다른 데서 다 반듯하다가
예 와서 좀 뭉기적거릴 수도 있지 않을지요.
왜냐면 물꼬니까, 아이들의 숨통이니까.
크게 다른 사람을 헤치는 게 아니라면 좀 그런들 어떻겠는지요.
다 나아질 겝니다.

샘들 하루재기.
힘들면 힘들수록 많이 배운다는 원균샘이었습니다.
한데모임에서 ‘작은 세상’을 부르는데
2절 첫 구절에 눈이 한참 머무르더라는 태우형님이었지요.
‘사랑은 입에 있지 않으며 이웃을 위해 움직이는 것...’
오늘 여럿이 운 일이 있었습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하는 대목에서...”
시설에서 온 아이의 지나친 행동으로 그를 감싸는 샘이 울고
그를 보며 다른 샘들이 울고
또 다른 아이들이 부딪히다 울고,
그러한 상황과 마주쳤을 때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스럽다던 선영샘,
“우리가 아이들을 만난 지 3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너무 많은 욕심을 내고 있는 건 아닌가,
상처가 있었다면 나아지는데 시간이 걸릴 것.
마음을 내줬다고 쉽게 변하기를 바란 건 아닌지...”
이리 덧붙였지요.
휘령샘은 자신이 더 선해야겠다 결심케 되더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걱정하면 (아이들이) 같이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면 같이 위로해주고,
어른의 모습이 중요하단 걸...”
오늘은 부엌엄마랑 한참을 도란거렸던 아람형님은
물꼬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즐겁다며
많은 면에서 물꼬에 감사한다 전하기도 했지요.
“오늘 한데모임에서 옥쌤께서 아이들을 섬긴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말이 찌릿하게 와 닿았습니다.”
주현샘은 하루정리 글에서 이리 이어 쓰고 있었습니다.
‘아직 너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이 경험해서 채워가야 하는 아이들이 훗날 만들어갈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현재의 어른들의 역할이 큰지라 그것은 결국 아이들을 섬긴다는 표현의 다름 아니겠지요.’
예지샘도 생각 많은 하루였습니다.
“대동놀이 하러 고래방으로 갈 때
처음에는 유환이와 안보여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해서...”
켜져 있는 불빛을 가리키며 “저 빛, 보여?” 하니
갑자기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더라지요.
‘그 뒷모습 보며 아리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것이 유환이가 이렇게만 달려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에게 빛이 보이냐 라고 한 것 밖에 없는데’
교사의 역할이란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더랍니다.
이곳에서 오래 살고 있는 아이가
정작 문제의 중심에 있기도 합니다.
툭툭 부딪히는 곳을 가면 그가 꼭 있습니다.
‘홈그라운드’라던가요.
그러게요, 그러면 목소리 더욱 클 수도 있겠지요.
누구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 아이라고 다를까요.
가장 속상한 건 자신일 겁니다.
아이들이 우리 바람대로 자라주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그렇지 않을 때 그를 얼마나 기다려줄 수 있는가가 관건 아닐는지.

시설아동에서 온 아이도 있고 그곳에서 온 새끼일꾼도 있습니다.
“내가 너무 무관심한가, 애들한테 소홀한가 싶고, 마음이 무거워요.
감싸주고 싶은데 감쌀 수가 없고...”
우리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보며 또 자신을 보며
서로 흔들리며 그러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건강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제행동은 때로 긍정적인 행동을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그 행동을 가르쳐주면 될 것입니다,
그 아이의 행동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모르는 것’이라는 초록샘 말처럼.
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화내는 법을 잘 몰라서 화를 그리 낼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가르치면 되지 않겠는지요.
분명한 건 지난 모습은 잘 하나 못 하나 지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모습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나’ 또한 이곳에서 잘 익혀갈 일일 겝니다.

이번 계자 밥바라지가 최고의 부엌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부엌을 보면 똑같이 화려한 밥상이 나와도
어떤 이는 그것이 자기 과시인가 하면
어떤 이는 그저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내지요.
신기하게도 그게 다르단 말입니다.
부엌의 후덕함은 고스란히 계자도 그리 이끌지요.
이번 부엌이 그러합니다.
부엌곳간을 뒤적거려 나온 월남쌈이며
쟁여둔 청둥호박이 죽으로 나오고...
목수샘이 지난 계자를 마치고 가면서 그랬지요.
“여자들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남자 없이 어떻게 계자를 할 생각을 해요?”
그러게요, 산골 거친 생활은 남자 손이 참 많이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부엌아빠가 그 자리까지 채워주고 계십니다.
문제가 생기면 당장 밖으로 달려와 주시지요.
게다 지금 안정적인 밤의 따뜻한 온도는
초저녁에 먼저 잠을 자고 새벽 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불을 때주는 당신의 몫이랍니다.
구들이 뜨끈뜨끈합니다.
식구 가운데 다 다른 영성의 간극을
물꼬에서 수행하며 좁혀보기로 했다는 온 가족(물꼬의 후원자 ‘논두렁’이기도 한)입니다.
아, 부선이와 건표가 그 댁 아이들이지요.
물꼬가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하였습니다.
아람형님도 그 얘기를 듣더니
우리 가족들도 모두 함께 와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합니다.

모두 잠자리로 들어간 밤,
가마솥방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희중샘이랑 곡주 한 잔 했습니다.
“힘드시죠?”
그러게요, 지난 세 해가 주르륵 지나갑디다.
실제 축을 이루던 동료를 떠나보내고
황망할 새도 없이 일들은 몰려오고
어찌 어찌 이태를 살아냈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손발이 있었고,
그렇게 물꼬가 살아남았습니다.
앞으로도 이왕이면 물꼬가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꼬가 살아남아야 할 단 한 가지 이유는
누구에겐가 이곳이 마음 붙일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물꼬가 살아가는 기제였지요.
“응. 그래도 덜 힘들었지. 네가 있잖아.”
그리고 그것은
물꼬에 닿은 모든 걸음들에 건넨 말이기도 하였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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