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계자 이튿날, 2010. 7.26.달날. 이른 아침 비 다녀가다


아침, 여자 아이들방 이불이 깔끔하게 개져 있었습니다.
중1 유진이와 경이 덕입니다.
예비 새끼일꾼훈련과정을 밟고 있는 그들이지요.
아이들에게 때로는
어른들보다 이런 형님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해건지기.
세 마당으로 이루어진 이 시간은
처음은 몸을 깨우고 두 번째는 마음결을 고르며
세 번째는 몸과 마음을 같이 쓰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두 번째 마당까지 끝내고 나자
고래방을 들어설 때 잠시 멎었던 비가 다시 추적이고 있었지요.
이럴 땐 또 ‘아침에 듣는 말씀’을 준비하지요.
오늘 아침은 마음밭에 무엇을 키울 것인가 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본 하늘, 산, 운무, 나무...
“그냥 보는 게 장관이네요.”
인영이며 새끼일꾼들도 아이들 사이에서
잠시 말을 잊고 풍광에 젖고 있었지요.
아침이 그렇게 왔더랍니다.

엊저녁 한데모임에서 비어있는 속틀을
아이들이 하고픈 것들로 같이 짰습니다.
최대한 그 의견을 반영해 밤중에 샘들이 시간을 적절히 자리 배치했고,
아침 임시한데모임에서 아이들의 승인을 받았더랬지요.
모두 흔쾌해하는 안이 되었답니다.

규범이와 규한이가 오늘 들어왔습니다.
해날부터 시작하는 일정을 달날이라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아주 가끔 있지요.
그런데 이를 어쩌나요,
아이들은 잘 챙겨왔는데, 그만 가방을 잊고 오셨답니다.
어쩌겠는지요.
가방을 마련해주고 거기 옷가지를 챙겨 넣어줍니다.
옷방의 여벌옷과 여벌 가방이 제 몫을 해냈지요.
그럴 때 아이를 도로 데려가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이곳의 장점 아닐까 자랑스러워졌더랍니다.

참, 아침의 고래방,
샘들을 반성케 하는 작은 소요 하나 있었답니다.
우리들의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한편 수행공간이기도 한 그곳,
도저히 아이들을 맞을 수 없는 상황이 있었지요.
보이는 곳만 겨우 청소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정리하지 않는, 둘러보지 않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고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지요.
어른 해건지기를 마치고 아이들을 맞기 전
청소를 통해 우리는 다시 우리 마음을 닦았습니다.
거울을 닦고, 발레봉을 닦고, 가장자리 전선들을 들고 먼지를 털고,
후미진 곳을 걸레질하고...
먼저 들어와 있던 아이들이 도왔습니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쌤들 해건지기를 했다. 집에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명상도 하고, 제조도 하는 일상은 꿈꾸지도 못했었는데 물꼬에 오니 아침부터 탁 트인 공기와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해건지기가 끝나고 아이들 기상과 해건지기를 위해 고래방을 치우고 있었는데 임수랑 경이가 와서 기꺼이 그 큰 방을 같이 치우고 쓸고 해줘서 너무 기특하고 이뻤다. 도시에서의 아이들은 청소를 자발적으로, 기쁘게 받아들여하는 대신 의무적이라는 강박과 압박 속에서 행하고 심지어는 기피하는 현상도 많이 나타나는데... 오늘 아침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함께, 자신을 기꺼이 내어 같이 해준다면 우리가 일상 속에서 힘들어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쉽게 끝내버려지고 또 행복하게 마무리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손풀기 시간에 화장실 청소를 계속하고, 처음으로 청소가 정말 재밌고 보람있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편히 씻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나의 긍정적 마음가짐이 청소를 즐겁게 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던 것 같다.’(새끼일꾼 인영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손풀기’는 그림을 어려워하는 벽을 허무는 작업이고
손에 자극을 주는 작업이며
보는 법에 대한 안내이기도 하고
명상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한 주제를 놓고 계속 그려가 그 변화를 보기로 하였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곳곳에서 복닥거립니다.
그런들 또 어떤가요.
‘찬영이가 너무 웃겼다. 내가 너무 시끄러워서 주의를 줬더니 원래 예술가는 시끄러운 거라면서 나를 웃겨주었다.’(새끼일꾼 가람이의 하루 정리글에서)

열린교실.
저마다 관심 있는 교실을 신청해서 들어갔지요.
‘바람이랑’에는 준수 임수 희수 경이, 그리고 동영이었던가요?
부채를 장만해서 붙여주고 다니네요.
‘가위랑’에는 나경이가 홀로 들어가
‘2010년 아름다운 물꼬에 있으면 좋아요.’라는
너무나 멋진, 물꼬의 여름 광고포스트를 만들어냈습니다.
작품입니다요, 작품!
“꼭 두고 가.”
대문 안쪽 게시판에 붙여두어야겠습니다.
‘한땀두땀’에서 규동이는 쿠션을, 재호는 책을,
그리고 대림이는 모자를 만들었지요.
그런데 그게 정말 세련된 모자였더라니까요.
‘풍선이랑’의 유진 은결 동현 기환 현서 나경이는
잔치에 쓰는 장식에서부터 포도송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로 우릴 즐겁게 했습니다.
‘뚝딱뚝딱’으로 가볼까요?
굳이 격식 차린다고 목공실 안에서 톱질 망치질입니다.
그 목공실이란 게 말이 좋아 그렇지 그냥 비닐하우스.
한여름 대낮의 그곳이 얼마나 쪘을라나요.
원준이랑 재창이는 합판 위에 나무토막으로 물꼬를 그리고,
준수 중근 원규는 총이며 도구들을 만들었으며
형찬이와 찬영이는 지난해 가을 이곳 들을 지켰던 허수아비를
다시 손봐주고 있었지요.
혜랑 현우 여름이는 ‘단추랑’에서 목걸이며 팔찌며 장신구를 하나씩 장만했고,
‘다좋다’의 우석 주용 계윤 소윤 지은 민정이는 가마솥방에 모여
마늘을 까고 있었지요.
너무 잘아서 여간 손이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물꼬 농사가 참...
“맛있게 드세요.”
모두 어깨 활짝 펴며 요리에 그리 넣으라 하데요.
‘봉숭아랑’엔 현주 정인 진이 재이 자누 미래 지호 해온이가
손톱에 물을 들였습니다.
재이와 진이, 간난아이처럼 누워서 흥얼거리며 좋아하고,
다좋다에 있던 아이들도 들어와 손가락을 내밀기도 했더랍니다.

낮밥을 먹고 쏟아져 나온 아이들,
이 더위에 또 축구입니다.
저리 놀 아이들이 여태 무얼하고 살았더란 말인가요.
물놀이도 갔지요.
물꼬의 수영장은 수준에 따라 장만되어 있습니다.
깊고 넓은 곳이 있는가 하면 얕고 너른 곳이 있고
흙이 많이 깔린 곳이 있는가 하면 돌만 있는 곳도 있고...
오늘은 또 어딜 갔을려나요.
그런데 현우 형찬 우석 재창 재호가 남았습니다.
책을 더 좋아해서, 귀가아파서, 쉬고 싶어서, 더 놀고 싶은 거리가 있어서,
그런 까닭들이었지요.

규동이와 미래 현주가 세아샘을 도와
‘보글보글’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보입니다. ‘철수네핏자’에는 찬영 원준 기환 은결 형찬 여름이가 들어갔지요.
맛있었습니다.
도우를 얇게 밀어서 구웠더니 모양도 한결 나았지요.
‘영희네핏자’집도 있었는데...
지은, 유진, 지호, 현주, 해온, 경이는 김치볶음밥을 하였습니다.
준수 주용 대림 소윤 계윤 규동이는 김치떡볶이를 만들고,
희수 정인 자누 규환 규범 나경이는 김치수제비를,
그리고 다경 원규 우석 재호 현주 동현이는 김치스파게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침개는 다들 어딜 갔나요?

‘빨래는 끝도 없이 쌓이고 신발 정리는 되지 않고...’(찬일샘의 하루 정리글에서)
어디 그것만 그런가요.
‘보글보글 설거지 당번이었던 나는 처음엔 출발이 순조로웠는데 가면 갈수록 설거지가 쌓이고 쌓여 정말 해결할 수 없을 정도까지 온 거다.’(새끼일꾼 가람의 하루 정리글에서)
보글보글의 마지막 설거지는 가람 경록 선영 찬일샘이 도맡았더랬지요.
아고, 애쓰셨습니다.

저녁, 노랫소리 높고, 말 많았던 한데모임이 지나고,
그리고 이 여름밤에 장작불 같은 대동놀이였더랍니다.
“매일 이렇게 놀고 싶어요.”
그래요, 아이들은 놀이가 필요합니다.
놀이를 통해 그들은 마음의 찌꺼기들을 내보내고
삶을 배우고 긍정을 배웁니다.
이렇게 놀아댈 아이들에게
오늘 이 시대는 무슨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요.

샘들 하루재기.
‘많이 여유로워지고 포용력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도 밀려오는 일거리에 허겁지겁하는 듯하고, 제각각의 아이들의 목소리가 거대한 산처럼 다가올 때, 쉽게 힘으로 누르려는 독단과 권위로부터 그리 멀어지지 않은 듯합니다...’
찬일샘은 하루 정리글에 그리 쓰고 있었습니다.
재이가 뒷간을 갈 때 서현샘더러 같이 들어가자 했습니다.
볼일 다 본 재이, 엉덩이를 내밀었지요.
그걸 닦아주는데 그런 생각 들었다 합니다.
“인간처럼 사는 걸 물꼬에서 배운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걸 배우겠는가...”
서현샘, 그리 말하며 울먹였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같이 배워가는 물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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