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17.물날. 맑음

조회 수 1320 추천 수 0 2010.11.25 10:16:00

2010.11.17.물날. 맑음


새들 부산한 아침.
마당에 나와 바삐 배를 채우고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학산 이정훈샘이 진행하는 태극권으로
사흘째 아침수행입니다.

쪽파를 심었습니다.
종범이랑 학산샘이 식구들을 도왔습니다.
다 심은 뒤 왕겨를 뿌려 겨울날 준비를 해줍니다.
오후에는 된장집 뒤란 은행나무에 학산샘이 올랐지요.
열심히 은행을 털고,
다른 이들은 열심히 주웠습니다.

물날 오후에 있는 대학생들 수업을 끝내고 서둘러 들어왔습니다.
열혈 수강생들이 있어 이건 슬쩍 빼먹을 수도 없는 수업입니다.
이젠 겨울방학 때 시간낼 수 있냐 물어오고 있지요.
가장 기다리는 수업이라 하니
가르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한 기쁨 있을라나요.
열심히 준비하고 그만큼 또한 가르칩니다.

집안 조카 하나가 방문중입니다.
그의 앞날을 위해
모두 둘러앉아 차 한 잔을 마시기로 벼른 밤이었지요.
한 청년을 위해 40대를 살아가는 네 사람이 앉았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 액체성이 난무하도록!”
“나날을 성실히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냐,
결국 그런 날이 모여 우리 생을 이루지 않더뇨.”
늘 하지만, 결국 이야기는 이렇게 귀결되데요.

편지 같은 문자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문자가 오게 된 사연부터 얘기해야겠군요.
지난 물날 의 '사람과 사람' 꼭지에
“열두 살 농부 ‘하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방송 후 시청자게시판에 몇 사람들의 공방이 있었지요.
다음날 우리도 소식을 듣고 들어가서 읽었더랬답니다.
‘일을 해야 한다는 그 엄마도 그렇고,
엄마의 사상을 받들자는 노래를 하는 아이도 그렇고,
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아동착취니 긴급출동 SOS에 나와야 한다,
자연으로부터 배우라면서 애 일만 시킨다,
어른들도 다 이상하다, 아무도 안 말리더라,
애가 공부를 해야지 무슨 일이냐,
가족과 같이 보는데 불편했다, 머슴살이라니...’
이런 부정적 시각에
‘자기가 좋다고 해서 하는 일인데 왜 자꾸 학대한다고들 생각하냐,
씨앗을 심고 열매가 맺어지는 광경이 보람된다고 하지 않느냐,
방송 재미있게 잘봤다,
 12살 초등학생이면 공부할 나이인가,
어머니가 일을 시킨 것도 아닌데 학대라니,
나중에 농림수산부 장관감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저기 하다가 여러분들 자식 또래 아이보다
더 공부 잘하고 크게 성장할게 분명하다, 반성해라...’
그런 의견도 있었지요.
거기 류옥하다 선수도 한마디 보태고 나왔습니다.
‘저는 방송에 나온 류옥하다입니다. 긴급출동 SOS라......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셨군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리고 저는 여자아이가 아니고 남자아이입니다. 방송에서 일하는 것만 보인건 제 생활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 날이 흘렀고,
산골 일상 속에 금새 잊힌 일이 되었지요.
 
그런데 오늘 촬영을 했던 PD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입니다.
“옥쌤, 00피디예요. 혹시라도 모르고 넘어가시길 바랬는데 인터넷을 하는 하다이기에 게시판 상황을 알고 만듯해요. 게시판에 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참으로 여러 부류이지만 우리방송이 그런 오해와 편협함에 상처받을 때 오해의 소지를 만든 제 탓이 가장 크겠죠. 무엇보다 어린 하다가 상처받았을까봐 걱정되고 미안해서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제가 좀 더 잘 만들지 못해 죄송해요. 짧은 방송시간 안에 가장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얘기를 컨셉이라는 명목으로 몰아가게 방송의 단면이지만 결국 제 부족함의 결과입니다. 진심으로 죄송하고 몇 명일지언정 옥쌤과 하다가 오해를 받는 게 속상하고 괴롭습니다. 하다에겐 현명하신 옥쌤의 치유를 부탁드려요.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서둘러 답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니 아니 아니, 우린 모두 유쾌하게 읽었어요. 우린 그저 우리 삶을 살아요. 우린 그 잠깐에 참 잘 만들었다 생각했는 걸요. 외려 그런 글의 반응에 우리가 여유롭게 바라보는 걸 느끼며 우리 삶의 견고함을 확인했어요. 이런 문자까지 주셔서 00PD님께 감동했어요. 지지해주는 분들도 많았답니다. 어떤 엄마가 아이들 교육문제로 하다한테 상담도... 하다 왈, 믿고 기다려주시면 잘할 거다, 나도 문제 많다, 하지만 잘 해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연락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늘 그런 마음(방송 만들며 ‘사람’을 생각하는 일) 잊지 마시길.”
이런 주고 받음, 아름다운 이야기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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