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27.물날. 흐리고 바람 많은

조회 수 1302 추천 수 0 2011.05.07 02:26:33

 

 

“해수야, 아침마다 어떻게 하라고?”

“옥샘한테 오라고!”

해수의 비염이 나아지길 바라며 약을 멕여 보고 있습니다.

승기는 목감기가 조금 나아진 듯 보이나

차를 끓여주지요.

준이 눈에 뭐가 들어가 한참을 아프다하기

죽염수를 만들어 넣어줍니다.

가야는 잔뜩 찌푸리고 있는데,

뭔가 불편은 한듯한데 물으니 별일은 아니라네요.

깊이 아파하지는 않는 아이 같아 걱정은 그리 되지 않지만

자꾸 마음이 갑니다.

오래 만났던 아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사람 사이의 시간, 참말 무섭습니다요.

눈이 좀 아린 준환샘은 결명자 진액을 꿀 타서 마셔보라 권했습니다.

아침부터 이리 북적이니 정말 ‘같이’ 산다 싶어요.

공동체가 별거고, 식구가 혹은 가족이 달래 무엇이겠는지요.

 

강진리 저수지는 바람이 많기도 했습니다.

갈 때마다 그랬습니다.

둑길 걷다보면 생의 시름이 다 밀려드는 것만 같았지요.

지역어르신특강이 있는 날입니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그림 같이 앉은 건너편 집을 보며

아이들이 그랬습니다.

“바로 저 집에 간다.”

“네에?”

마치 이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듯

바람에 휘청이며 둑을 건넜지요.

홀로 차를 덖고 계시는 '구름마을 살가운 집' 송남수 선생님 댁에 넣어드릴

밑반찬을 하나 챙겨서 말입니다.

가는 길, 매곡에 있는 오리고기 공장에도 들렀습니다.

그런 공장이 있는 줄 이제 알었네요.

 

이만치나 내려오셔서 우릴 맞으셨습니다.

집을 둘러본 아이들을 데리고

선생님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주고 풀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풀과 차입니다.

우리는 집 둘레를 거닐며 풀을 따 모았습니다.

“자기 먹을 건 자기가 준비합니다.”

질경이 수영 조팝 쑥 개망초 산딸기 꽃다지 제비꽃 민들레

달맞이꽃 천궁 엉겅퀴 찔레순 별꽃...

“다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풀만이 아닙니다.

청미래잎과 어린 열매, 찔레순도 꺾고, 솔잎도 따고, 단풍에 배꽃에 벚꽃에...

하지만 꼭두서니와 애기똥풀처럼 조심해야하는 것들도 있지요.

“3가지 이상 먹으면 중화가 되니 괜찮습니다.”

좀 더 걱정이 된다면 숙주나물을 더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물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풀을 씻고 하는 동안

선생님은 감꽃차를 달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차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지요.

덖음차와 발효차, 각 나라의 차들,

그리고 차와 다른 마실거리의 이름들의 의미며...

 

라이스페이퍼에 풀을 놓고 숙주나물 몇 가닥 얹고

그 위에 준비해간 소스를 뿌려 맙니다.

풀이 아주 맛나지는 않지만

나름 굉장한 실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은이는 ‘아이들 눈을 피해 라이스페이퍼만 열심히 먹기도 해’

은근히 더 신나고 재미났다던가요.

세 점을 풀만으로 먹은 뒤 훈제오리고기를 냈고

이어 국수를 삶아냈습니다.

“풀이 먹을 수 있는 게 신기하고...”

“매일 보고 지나치는 풀들이 음식이 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때 오리라,

체르노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의 일본 원전사고로 더욱 먹을거리들에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것 아니어도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며로

식량대란을 예고한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요.

물꼬가 요새 천착하는 문제가 바로 이 풀먹기이기도 하답니다.

 

배도 불렀고 얼씨구, 경치도 좋고 절씨구,

아이들이 호수 쪽으로 내려갑니다.

골목대장처럼 준환샘이 앞서가 물수제비를 뜨자

아이들도 흉내를 냈지요.

그때, 버들이 보였습니다.

준환샘이 버들 속을 빼내고 피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버들피리 하나씩 들고 아이들이 행진하며 올라왔지요,

관의 굵기와 길이에 따라 갖가지 음높이를 내며.

마을군악대가 따로 없었다니까요.

 

다시 둑길을 건너옵니다.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거지요.

바람 여전히 거셌습니다.

“비가 내린 뒤 강물 불어나면 거기 통나무가 떠내려 오기도 했는데...”

지리산 어디께서 태어나고 자란 준환샘이

여름 한 날 친구들과 그 통나무를 타고는

그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떠내려간 일 있다했습니다.

몇 시간을 팬티만 입고 걸어 돌아왔더라지요.

아름다운 날들이 우리를 밀고 갑니다.

이곳에 있는 순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오후, 돌아와 바느질을 합니다.

으레 하는 구나 하고 다들 바로 바늘과 실을 잡고

만들던 주머니를 꺼내옵니다.

한 명 한 명 자기 진도에 맞춰 작업을 하며

필요할 땐 도움을 청했지요.

강유, 이런 거 완성해본 적이 없다 합니다.

“그참, 얼굴은 참 참하게 생겼는데...”

열이면 열이 다 그런 소릴 한다네요.

“좋아, 평생에 못한 그거 이번엔 해보자!”

고운이다운이며 여해, 진하, 벌써 완성한 아이들도 있었네요.

꽃무늬를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 가야조차도

한번 해보자라는 말을 따르며

모두 같은 크기에 비슷한 무늬와 단추로 꾸몄습니다.

모다 그리하였으니 이동학교 기념 주머니가 된 셈이었지요.

 

다들 비운 학교에서 소사아저씨,

파드득나물과 쑥, 머위를 뜯어 놓으셨더랬습니다.

파드득나물겉절이와 쑥국, 그리고 머위쌈을 저녁 밥상에 올렸지요.

태어나서 머위를 그렇게 맛있게 먹어보긴 또 첨이었네요.

나이 드나봅니다.

낼모레 예순이야,

아이들한테 늘 하는 말대로 그 나이에 곧 이르겠지요...

 

오늘 아이들이 받은 숙제 하나는

생태적인 삶을 위해 자기가 애쓰고 있는, 혹은 애쓸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날적이에 쓰는 것이었습니다.

류옥하다 걸 슬쩍 목 빼고 봤지요.

‘1. 친구들이랑 싸우지 않고 친하게, 잘, 서로를 배려하면서 지낸다.

 ...

 7. 연필이나 종이를 아껴 쓴다.

 다른 존재도 살아갈 수 있게 내가 조금 덜 쓰자!’

다른 존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네, 그리 살피는 우리들의 삶이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616 2007. 5.20.해날. 맑음 옥영경 2007-06-03 1310
5615 2006.5.15.달날. 맑음 옥영경 2006-05-17 1310
5614 5월 26일 나무날 맑음, 봄학기 끝 옥영경 2005-05-27 1309
5613 5월 10일 불날 겨울과 여름을 오가는 옥영경 2005-05-14 1309
5612 2014학년도 겨울, 159 계자(2015.1.4~9) 갈무리글 옥영경 2015-01-14 1308
5611 2008. 6.12.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7-02 1308
5610 2006.9.2-3.흙-해날 / 밥알모임 옥영경 2006-09-14 1308
5609 5월 29일 해날 옥영경 2005-06-03 1308
5608 2011.11.13.해날. 날이 개 거닐기 좋은 옥영경 2011-11-23 1307
5607 2008. 3. 8. 흙날. 맑음 옥영경 2008-03-30 1307
5606 7월 19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5-07-27 1307
5605 10월 13일, 교무실에 날아든 편지 옥영경 2004-10-28 1307
5604 2011 겨울 청소년계자 여는 날, 2011.12.24.흙날. 눈 얇게 쌓인 아침 옥영경 2011-12-29 1306
5603 2011. 6.22.물날. 마른 장맛비 / 모심을 받다 옥영경 2011-07-02 1306
5602 2008. 6.10.불날. 맑음 옥영경 2008-07-02 1306
5601 11월 4일 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4-11-19 1306
5600 10월 몽당계자 갈무리글 옥영경 2009-11-07 1305
5599 2007.10.21.해날. 맑음 / 겨울 날 채비 옥영경 2007-10-29 1305
5598 2007. 2.1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7-02-16 1305
5597 10월 27일 물날 맑음 옥영경 2004-10-30 130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