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8.해날. 맑음

조회 수 1220 추천 수 0 2011.05.23 16:40:49

 

 

“죽이 남았다!”

세상에, 처음으로 제가 한 메인 음식을 아이들이 남겼습니다.

죽이 좀 불기는 했다지만,

입이 까칠한 겁니다.

간밤의 ‘우리는 야행성’의 여파입니다.

세 시까지도 얘기소리 흘러나왔지요.

아이들이 종일들 푹 꺼져 있었습니다.

 

핏자를 만들었습니다.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화분을 들고 와 하룻밤을 묵은 제자들이

열심히 반죽을 해주고 나갔습니다.

소스를 바르고 애호박과 피망과 양송이를 얹고

그 위에 치즈가루를 뿌렸지요.

양파오이피클도 같이 냈습니다.

그런데, 후라이팬에 구운 핏자 네 판,

그만 바닥이 좀 탔습니다.

“안 탔어요, 안 탔어요!”

타서 어쩌냐 싶은데, 저들(저희들)은 한사코 안탔답니다.

제가 좌절하지 않도록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거지요.

긁어내고 주리라 하는데,

그걸 떼 내며 먹이리라 하는데,

웬걸, 아이들 부스러기까지 다 먹고 있습니다.

아휴, 그럼 안 되는데,

맛나다 하니 에라, 그것쯤도 소화할 생명들이라고 결국 그냥 두었지요.

남은 반죽으로 빵도 두 판 구웠습니다.

아무래도 오븐이 아니라 한번 뒤집어주었지요.

핏자의 탄 부분을 만회하였는지 맛나게도 구워졌답니다.

후식으로 냈기 망정이지 주식이었다면

모자라도 아주 모자랐을 테지요, 짐작했지만.

 

선미샘이 달골 햇발동 거실에서 ‘연필놀이’를 진행했습니다.

일종의 협상게임입니다.

세 모둠이 부러진 연필과 연필깎이와 종이를 각각 지니고,

연필로 표시를 한 종이를 많이 갖는 모둠이 이기는 놀이이지요.

아이들은 두어 시간의 협상 끝에 무승부를 이루었는데,

그들은 이 시간을 밟으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아이들이 써 놓은 글을 옮겨봅니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적당히 양보도 하고 손해도 봐야 하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다른 쪽 의견도 잘 들어줘야 한다.

함께 하고 함께 책임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팀들이 서로 기분 좋은 것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자기 의견을 똑바로 잘 이야기해야한다.

생각하고 말하고 팀이랑 잘 이야기해야 한다.

자기 주장만, 자기 입장만 생각하면 과열된다.

타인과 말할 때 잘 얘기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장도 해야 하지만

듣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된다는 것,

듣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말하는 걸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

자기 의견만 얘기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반대만 하면

끝이 날 수 없다.

잔머리의 중요성도 알았다.

눈치와 이해력, 팀웤이 필요하다.

같은 팀에서 얘기를 하고 그 뜻을 팀에서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면

힘든 게임이 될 것 같다.

상대방의 도발에 휘말리면 무조건 내가 협상에서 실패한다.

다른 사람을 꼬드길려면 마력 있는 카드를 써야한다.

자신의 이득만을 얻을려고 하지마라.

모든 건 필요하다.

남의 말에 끼어들거나 이해를 못하거나 몰르는데 말을 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

질질 끌거나 더럽게 굴지 말고 쿨하게, 빨리, 내가 손해보더라도 인정을 해야 한다.

자꾸만 문제를 회피하려고 거짓말을 해서는 점수를 까먹을 수 있다.

말하는 법을 좀 더 예쁘게 해야겠다.

 

저녁, 버섯두부전골에 멸치볶음,

그리고 대구 새끼일꾼 윤지가 사온 대구명물 납작만두 한 보따리를

떡볶이와 함께 내고 수박을 더했습니다.

점심버스로 들어온 서현샘(미국에서 돌아와 인사하러 왔지요),

귀찮은(?) 납작만두 열심히 구워댔더랬지요.

밤, 성재네가 어제 들여준 와인을 풀어 샘들이 모여앉아

잠시 쉬기도 했답니다.

 

아이들은 종일 준이 언제 오냐 물었습니다.

소식 없습니다.

베트남으로 의료자원봉사 떠나는 부모님들 따라

(공정무역관련 일도 하신다던가요)

지난 달날 서울을 갔고,

그 과정을 지켜보려 준도 갔습니다.

내일은 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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