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15.물날. 맑음 / 보식 3일째

조회 수 1237 추천 수 0 2011.07.02 19:55:57

 

 

이동학교를 온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니신 듯합니다.

게다 지금 그 학교를 둘러싼 마을 실험에 대해

대단한 긍지를 지니고 계신 듯.

그 지위를 만든 배경에는 당신들이 나오신 좋은 대학도 몫을 하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이 아이들의 대학에 대한 꿈도 그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순전히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짐작한 것일 뿐

사실과는 간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시대에

개룡(개천에서 용 나는)이 더 이상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가는 강남 군락의 절대적 비율에 대해서도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지요.

우리 아이들이 아무렴 좋은 대학을 간다면야 같이 덩실덩실 할 일이지요,

축하할 일이다마다요.

그런데, 저는 자신을 둘러싼 배경이 아니라

정녕 자신의 삶에서의 진정한 자긍심을 우리 아이들이 지니기를 바랍니다.

저 자신 또한 그러길 바라구요.

그 배경이 다 사라지더라도

온전히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그런 것 말이지요.

오늘의 ‘아침에 듣는 말씀’은 그 맥락에서 들려준 것이었습니다.

“십여 년 전 계자에 태백에서 온 남녀쌍둥이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 성함이 숙희였음을 기억합니다.

당시만 해도 캠프를 오는 아이들 가정은

흔히 이 사회 중산층인 경우가 절대적이었는데,

부모들의 대학 또한 중상위권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분위기에 쓸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부모들까지 좋은 대학의 옷을 입기 쉬운데,

그 무리들 가운데 한 사내 아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요.

“우리 엄마는 대학 안 나오셨어. 여상 나왔어.”

하지만 자신들을 잘 키웠고, 올바르게 살려 애쓰신다고,

자기는 그런 ‘울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했지요.

저 역시 아이를 그렇게 키운 그 엄마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물론 그 아이 또한 자랑스러웠구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사느냐가 아니겠는지요,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가 아니라.”

 

밖으로 나온 해건지기는 윗마을까지 산책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감꽃을 한 움큼씩 주워도 왔지요.

바람 좋은 그늘에서 감꽃차가 될 것입니다.

“딱 1주일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2주일만 더!”

갈 때가 되자 아쉬워하는 아이들입니다.

마치 끝나가는 방학 끝의 밀린 숙제처럼

아이들이 갈무리해야할 일도 그리 쌓인 게고,

바쁘다 바쁘다 하나 이 산골의 여유를 떠나기가 또한 아쉬운 거지요.

“편지할게요.”

“꼭 한번 올 거 같애요.”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꼭 올 거 같애...”

편지가 아니 와도 걸음이 안 닿아도

이렇게도 충분하네 싶습디다.

 

오늘은 마지막 지역어르신특강이 있습니다.

차를 덖는 송남수샘 오셨습니다.

먼저, 들려주고픈 삶의 이야기를 전하셨고,

감잎과 뽕잎을 따러 아이들이 떠났지요.

뒤란에서 준환샘이 더덕을 캐왔고,

그걸 두드려 구이도 해서 밥상에 올렸네요.

몇 뿌리 거기 오래 키우고 있던 것들이었지요.

 

점심을 먹고는 차를 덖습니다.

가마솥에 불도 지폈지요.

잎을 깨끗한 행주로 앞뒤 닦습니다.

감잎은 쉬우나 벌레를 많이 타는 뽕잎은 손 역시 많이 갑니다.

딸 때도 마찬가지였더랬지요.

어느새 패가 둘로 나뉘어

가마솥방 안에서는 잎을 닦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 뒤란에는 덖는 이들이 모였습니다.

작두로 잎을 잘라 장갑을 두 겹씩 끼고 덖어서 내면

깨끗한 무명천에서 비비고 다시 덖기를 반복합니다.

차를 덖는 양이 많지 않았던 몇 해,

작두는 녹슬고 먼지 켜켜이 얹혔더랬는데,

준환샘이 야물게 잘 씻어 쓸 수 있도록 채비를 해주었지요.

몇 개의 채반에 넘치는 양으로 서서히 아이들이 질릴 즈음

뽕잎은 덖기만을 반복하기로 합니다.

물꼬가 평소 뽕잎차를 덖어오던 방식이지요.

“집어서 먹어봐.”

“과자 같애요.”

하는 김에 감꽃도 한 바가지 덖어냈네요.

‘차는 지금까지 마시기만 하고 그다지 깊이 생각하거나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이렇게 직접 만들어보니 차만드는 게 생각보다 번거롭고, 기술과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여해의 날적이에서)

 

커다란 빙수기가 왔습니다.

선정샘이 보내오신 것인데,

이렇게 커다란 것일 줄 몰랐지요.

황학동에서 구한 그 옛날 분식집 빙수기가 영 말을 듣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동학교 아이들 가기 전 성능 실험을 할 예정입니다.

운좋은 녀석들...

팥빙수 개봉박두!

 

이동학교가 마지막에 이르려하자,

아이들은 서서히 보따리를 쌉니다.

“아직 살날이 여러 날인데, 더 있다 싸지?”

곁에서 준환샘이 대답했지요.

“그러면 분명 빠뜨리는 게 많을 겁니다. 지금부터 며칠을 싸야...”

그런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236 7월 14일 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5-07-20 1245
5235 2011.10. 9.해날. 스모그? 옥영경 2011-10-18 1244
5234 2011. 4.26.불날. 비 옥영경 2011-05-07 1244
5233 2008. 8.24.해날. 맑음 옥영경 2008-09-13 1244
5232 2005.11.22.불날.맑음 / 과일과 곡식, 꽃밭이 만발할 것이요 옥영경 2005-11-24 1244
5231 9월 7일 불날, < 흙 > 옥영경 2004-09-16 1244
5230 2012. 4.15.해날. 맑음 옥영경 2012-04-23 1243
5229 2008.10. 1. 물날. 맑음 옥영경 2008-10-10 1243
5228 2007. 3. 6.불날. 맑음 / 생명평화탁발순례단, 영동 들다 옥영경 2007-03-15 1243
5227 2006.12. 7.나무날. 비 옥영경 2006-12-11 1243
5226 2005.10.14.쇠날. 3주째 흐린 쇠날이랍디다, 애들이 옥영경 2005-10-17 1243
5225 6월 22일 물날 텁텁하게 더운 옥영경 2005-06-24 1243
5224 1월 30일 해날 맑음, 102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5-02-02 1243
5223 9월 23일 나무날 맑음, 밭이 넓어졌어요 옥영경 2004-09-28 1243
5222 2011. 7. 3.해날. 비 옥영경 2011-07-11 1242
5221 2007. 4. 6.쇠날. 맑음 옥영경 2007-04-16 1242
5220 2006.3.11-12.흙-해날. 맑음 옥영경 2006-03-14 1242
5219 2005.10.27.나무날.맑음 / 과학공원 옥영경 2005-11-01 1242
5218 9월 10일 흙날 흐리다 갬, 어서 오셔요! 옥영경 2005-09-19 1242
5217 2월 6일 해날 맑음 옥영경 2005-02-11 124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