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마지막 아침입니다.

요란한 밤은 늦은 아침을 불러오지요.

샘들도 아이들도 실컷 잤습니다.

‘해건지기’는 애고 어른이고 다 같이 일어나

이불을 터는 것으로 대신키로 했더랍니다.

 

가방을 꾸리고,

우리가 지냈던 공간에 대한 책임과 또 이곳을 쓸 누군가를 위해

정리를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가장 잘 나누고픈 한 가지가 바로 그 ‘정리’.

정리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지요.

책임지지 않은 이들이 한 정치의 결과가

책임지지 않는 이들이 행한 환경의 결과가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래서 우리는 정리를 아주 좋은 공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습니다.

 

진섭이가 어제부터 열이 납니다.

아무래도 어제 비를 맞고 내려온 산행의 결과이기도 하겠습니다.

그 작은 아이가 아기 새 같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새끼일꾼 진주며 여러 샘들이 살펴줍니다.

다른 몇도 감기 기운이 있네요.

집에 돌아가면 긴장이 풀려 한바탕들 앓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부모 그늘이면 뭐 금새 툭툭 털겠지 하지요.

 

아이들 나가기 좋으라고 날은 멀쩡한데,

시간이 밀립니다.

으악! 아무래도 부산으로 가는 기차시간에

버스가 댈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서현샘!”

앞에 가는 버스 안의 전체실무 책임을 지고 있는 서현샘한테

긴급히 전화를 넣습니다.

“미리 기차 탈 아이들 바로 내리도록 대기시키고...”

역에선 부모님들이 아이 받아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버스는 조금 속도를 내고...

일이 되느라고 기차가 조금 연착되었네요.

모두 무사 탑승했다는 연락입니다.

 

영동역.

남겨진 물건들이 주인을 찾아가는 물꼬장터 뒤

모여서 ‘자유학교 물꼬 노래 1’과 ‘신아외기소리’를 짧게 불렀습니다.

거기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배여 있었지요.

불편한 곳에서 잘 지내주어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 부모님들께 드리며 145 계자가 끝이 났지요.

 

뭘 할까 싶은 일곱 살 두 녀석 무량과 건호, 얼마나 단단하던지요.

저리 이뿐 것들이 학교를 들어가면 왜 그 모양(?)들이 되느냐 말입니다, 하하.

절대 곁에 앉는 법이 없이 동그라미의 가장 먼 곳에 서로 앉는 승산과 진섭,

저 예쁜 줄 알아 한껏 새침하던 정말 예쁜 민아,

형 그늘에 치더니 이제 커서 제 목소리 내는 태웅,

또이또이하던 려빈,

유머감각이 뛰어난 가은,

어른들과 이야기가 더 편하던 동화,

참해서 돌아보고 또 보게 하던 해찬,

형님노릇으로 전체를 돕고 스스로 즐기기도 하던 동영이와 일환,

문제를 일으키지만 금새 또 사과하는, 잘 웃던 별,

물꼬의 질감을 잘 느껴주던 은렬,

집안이 틀림없던 다경이와 원규,

땀띠가 극성을 부려 짜증이 날만도 하련만 씩씩한,

그리고 자꾸만 말을 붙이고 싶은 우리 맑은 성빈,

엄마가 더 웃기던 석찬,

아줌마 같이 은근히 재잘대며 우리를 웃게 만들던 승완,

안경을 끼고 멋스럽게 나타난, 이제는 형님티가 나는 준우,

선이 곱던, 금새 인정하고 제 몫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규리,

자매가 있으면 참 좋겠다 하고 돌아보게 하던 현아와 서연,

말이 자꾸 엉키지만 제 의견을 끊임없이 던지던 성원,

우리의 햇살둥이 지섭과 준섭,

휩쓸리지 않는 중심을 보여주던 민경,

아이들 속으로 잘 스미던 승준,

동생 무량이랑 같이도 잘 지내고 또한 따로도 잘 지내던 무겸,

몸만 아니라 마음도 참 건강하던 강현,

형을 통해 이미 물꼬가 익숙하던 준호,

이제는 ‘분명’ 물꼬의 형님인,

이전 계자까지 물꼬의 느낌이랑 멀고 멀기만 했던 태형,

끊임없이 이야기를 달고 있던 태훈,

오빠를 떠나서도 제 일을 찾아 잘 다니던 해인,

소리 나지 않게 제 영역을 만들던 예원,

산만하나 필요하다 싶은 곳에서의 집중은 또 최강이었던,

우리를 자주 유쾌하게 만들던 윤섭,

스스로 건강한 사람임을 잘 알던 민서,

마음이 퍽 다사로운 윤호,

분노조절이 안 될 때도 있지만 마음을 잘 다스려보는 기환,

결국 집에 돌아갈 것을 알지만 확인하고 투정도 부려보던 승록,

빛나던 똘망이 유현,

어려운 보행에도 시도하고 또 시도하던 철우,

할 말 많던 우현,

한껏 신명을 낼 줄 알던 준수,

멀리 중국에서 오빠 꽁지를 잡고 달려왔으나

주눅 들지 않고 움직이던 현비,

이제는 훌쩍 커서 새끼일꾼 몫을 해내고 있는 이곳의 류옥하다.

이렇게 하나씩 입에 올리니 배시시 웃음이 자꾸 배는 우리 아이들,

이들이 만든 천국에서 정토에서 누린 날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요.

모다 고맙습니다, 모다 사랑합니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샘들은 읍내의 한 냉면집에서 갈무리를 합니다.

계자 중간 집안일을 도우러 돌아갔다 다시 온 희중샘,

샘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런 희중샘한테 늘 무거운 짐을 지어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희중샘이 빠진 자리를 굳건히 메워낸 준샘과 기린샘,

나이는 헛먹어지는 게 아닙디다.

마치 오래전부터 물꼬에서 움직여본 사람들처럼

온 마음을 다하고 있었지요.

샘들의 고운 결이 고스란히 다른 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전해졌습지요.

서현샘, 그 곱고 단단한 사람을 보고 또 보는 즐거움

오래이고 싶습니다.

물꼬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라는 그의 말은

바로 그 자신을 두고 말함이기도 하답니다.

전체실무 책임자로 입성함을 축하하며 자주 그런 날 있길.

유진샘은 희중샘과 함께 차세대 물꼬 중심입니다.

차곡차곡 공부를 잘해가고 있지요.

대기만성처럼 사람이 보면 볼수록 진가를 드러내는 휘령샘,

아, 그리고 우리에게 교사로서 아주 좋은 스승이었던 아리샘,

잘 하네 못 하네 해도 세월을 그냥 흘리지 않은 세아샘,

그리고 물꼬 영광의, 빛나는 이름 새끼일꾼 연규, 윤지, 동휘, 경이, 진주, 여진.

모다 애쓰셨습니다.

사람 때문에 살고 사람 때문에 죽습니다.

위대한 혁명가들이 그러하였듯

인간에 대한 낙관을 물꼬에서 체험하게 해주던 이름자들이지요.

갈무리를 끝내고 나오자 비로소 비 뿌렸네요.

그래요, 하늘 몫이 늘 물꼬 일에 크다마다요.

 

부엌! 일을 해보면 먹는 일이 젤루 큽니다.

특히 계자의 부엌은 단순히 먹이는 일 이상이지요.

그곳에 어떤 이들이 있는가가

계자의 성공(?)여부를 가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정샘과 인교샘, 부엌에 하나도 마음을 쓰지 않게 해주셔서

아이들한테 더 많이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도움꾼이었던 철우샘과 광희샘의 도움도 여유를 더해주었지요.

서현샘 말대로 ‘하나를 먹어도 만족스럽게’ 음식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간식을 덜 내는 실험이 가능토록 한 것도

바로 이 정성 덕이었습니다.

나아가, 개인적으로 호사를 누린 계자였네요.

날마다 오후면 교무실 책상에 작은 접시 하나 놓였더랬지요.

에너지가 혹 달릴까, 살피고 배려해준 흔적입니다.

계자가 끝나면 마지막 설거지를 쌓아놓은 속에 떠나는 분도 계신데,

이번 샘들은 내일까지, 또 다음 계자 첫날까지

일을 잘 이어주고 가기로 하십니다.

고맙습니다.

기꺼이 마음 빚을 지겠습니다.

꼭 갚겠습니다.

 

아, 뭐니뭐니 해도 두 살 세현이가 젤루 욕봤습니다.

지난 여름도 애기 이불에 누워 계자에 즐거움을 더하더니,

엉덩이 땀띠가 나고 불러도 와주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그가 젤 많이 참고, 그가 젤 많이 계자를 도와주었다 싶어요.

그 아이도 이곳에서 아이들 속에 함께 달리고 있을 날 올 테지요.

멀리 사나 물꼬 식구이거니 하는 선정샘네랍니다.

 

무어라 이 감동을 다 담을지요...

모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174 11월 25일 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4-11-26 1499
6173 5월 2일 해날, 일탈 옥영경 2004-05-07 1499
6172 2007. 2.27.불날. 맑음 옥영경 2007-03-06 1496
6171 4월 26일 불날 맑네요 옥영경 2005-04-29 1496
6170 98 계자 여는 날, 8월 16일 달날 비 옥영경 2004-08-18 1496
6169 2012. 1.28.흙날. 맑음 옥영경 2012-01-31 1495
6168 2월 24일 나무날, 지리산은 안녕할지 옥영경 2005-02-26 1495
6167 7월 5일, 우리 아이들의 꿈 옥영경 2004-07-15 1495
6166 2005.11.5.흙날.흐릴 듯 / 종이접기 특강 옥영경 2005-11-07 1494
6165 11월 30일 불날, 흐림 옥영경 2004-12-03 1493
6164 2008. 5. 9.쇠날. 연일 흐리네 옥영경 2008-05-20 1492
6163 2008. 1.22.불날. 계속 눈 옥영경 2008-02-20 1490
6162 6월 29일, 성학이의 내년 계획 옥영경 2004-07-11 1490
6161 120 계자 닷샛날, 2007. 8. 9.나무날.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07-09-03 1488
6160 2011. 7.30.흙날. 맑음 / 145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11-08-03 1486
6159 2006.3.24-5.쇠-흙날. 맑음. 떼 뜨러 가다 옥영경 2006-03-27 1486
6158 5월 28일, 봄학기 마지막 날 옥영경 2004-05-31 1486
6157 4월 15-17일 처마 껍질 옥영경 2004-04-28 1485
6156 3월 9일 물날 맑음 / 물입니다, 물 옥영경 2005-03-10 1484
6155 2019.10. 6.해날. 잠깐 해 / 그대에게 옥영경 2019-11-25 148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