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굵어졌던 비가 아침까지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많이도 내렸습니다.

어른들이 아침수행을 하고 빠져나간 고래방,

참나리 꽂힌 항아리와 촛불과 피운 향을 놓고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비는 내리고, 해건지기 하는 내내 빗소리도 걸어들어와

몸을 풀고 마음의 근육을 다지는 시간을 차분히 도왔지요.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수연이의 피아노연주로 밥상머리 공연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리 시작해주면 또 다른 이가 하기 쉽겠지요.

아침이 기분 좋게 열렸습니다.

‘손풀기’가 끝날 무렵

샘들이 물을 나르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수도가 말썽입니다.

마을전체가 수압이 떨어져있습니다.

어제 통화를 했고 공사책임자가 달려옵니다.

마을을 관통하는 수도관을 새것으로 바꿨는데,

집집이 들어가는 관은 낡아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새고 있다 합니다.

새는 곳을 찾아 교체에 들어간다는데,

그 사이 우린 60여 명이 살아내야 한단 말이지요.

비는 내리고 물도 무겁고 통도 무겁고...

“마음을 내서 물을 같이 나를 분들이 계신가요?”

아이들이 우르르 나옵니다.

비도 내리는데

애고 어른이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열심히 물을 나릅니다.

허드렛물은 계곡에서, 먹을 물은 마당 건너 간장집에서 날랐지요.

살다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납니다.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바로 우리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계기일 겝니다.

우리는 외려 이 어려운 상황이 유쾌했습니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지요.

언제 물을 길어볼 꺼나, 언제 또 이 빗속에서 물통을 들어볼 꺼나...

즐거운 놀이였고, 대동판이었습니다.

어울림이 적었던 저학년 아이들도 같이 크게 움직여본 시간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였지요!

방에 남은 한 무리의 여자 아이들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할 만한 사람들이 했습니다, 그게 더없이 좋았습니다.

 

“그냥 조금씩만 돕자고 했을 뿐인데 거의 모두가 도우러 나와서

애들이 정말 착하고 이쁘게 생각되었어요.”

새끼일꾼 경철형님이 그랬습니다.

우린 밖에서 머리도 감고, 등목도 했지요.

아이들을 충분히 씻겨서도 좋았습니다.

설거지도 밖에서들 했답니다.

“물이 없어서 오히려 모두가 함께 하는 물꼬가 된 거 같았어요.”

나라형님입니다.

때로 부족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지요.

바로 이곳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이 불편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가 우리 존재를 보다 풍요롭게 하는 이 역설!

‘물을 길어오는 일에 아이들도 샘들도 신나했다.

부족하고 없는 것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재미가 될 수도 비참함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어려울수록 사람들의 관계가 끈끈해질 계기를 마련하는 것 같기도.

남자샘들이랑 새끼일꾼들도 한결 가까워진 듯.’(아리샘의 하루갈무리글에서)

 

그런데, 물이 부족한 이 상황이 만약 도시에서였다면

우리는 얼마나 참혹했을라나요.

물이 내려지지 않는 아파트단지 화장실이라니...

다행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여기여서.

우리는 재래식해우소에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오늘.

“...살면서 낭비 많구나... 생활이 너무 많이 의존하고 사는 삶이구나...

무엇인가 하나 마비되면 일상이 깨지는 도시 생활,

제가 18층에 사는데 1주일치 장을 봐서 계단을 올라간 기억이 있어요...”

그래요, 보다 자립을 꿈꾸기에도 산골이 낫습니다.

그거 할라고 이 산골 온 것이구요.

 

헌데 그 귀한 물을

여자 고학년 아이들이 머리를 감는데 다 써버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지요.

외려 그리 하고픈 그 마음을 이해했고,

어려운 물 사정을, 그래서 이 많은 식구들이 물을 나르고 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푸는 거다, 일은 이렇게 해나가는 거다,

배운 시간 되었습니다.

맘을 상하게 하는 것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지요.

 

그리고 ‘열린교실’.

오늘은 세 교실이 열렸습니다; 벽이랑, 창문이랑, 사진이랑.

집단미술창작, 뭐 그런 거였지요.

벽화는 건물 외벽에 하려던 계획이었으나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우리는 그걸 해낼 방법을 찾아냅니다.

벽그림은 고래방으로 건너가 한 벽면을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이좋게 붓도 나누고

함께 놀아가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 서로 봐가며 전체면을 조율하고...

모둠방 하나는 ‘창문이랑’이 썼습니다.

지우 서진 한나 환 민지 효정 도영 종문 지윤 정원 준석 민교 류옥하다가 있었지요.

페인트마커를 들고 창문에 매달려 그림을 그렸습니다.

멀뚱하게 서 있던 동건이,

새끼일꾼 희주형님이 “같이 그리자, 뭘 그릴까? 뭐 좋아해?” 하니

싫은 척 내빼면서도 수줍게 와서 나무가 그리고 싶다 했고

쓱싹 2개를 그렸습니다.

별도 그리고는 뿌듯한지 제가 그린 그림을 멀찌감치서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요.

저도 뿌듯한 겝니다.

“선과 점으로도 면을 그릴 수 있고

채색도 가능하다는 점을 인지시켜주지 못한 것 같아...”

전체 진행을 맡았던 다정샘의 아쉬움이었네요.

하지만 우리는 충분했는 걸요.

 

사진이랑도 다른 모둠방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아이들이 많지 않으니 굳이 빔프로젝트로까지 사진을 동원할 건 아니겠다며

세호샘이 노트북으로 역사적인 사건들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인화된 사진으로 콜라주 작업.

“아이들의 표현력에 정말 감탄했어요.”

기사작성으로까지 확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샘도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지요,

당연하겠지만.

지수와 지욱이 술래잡기도 하고

현서가 내꺼라 억지를 부리는 일도 모다 자연스런 교실의 풍경 하나였더랍니다.

‘다소 아쉬움도.

사진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어야지 않을까.

워낙 사진이 무게 있고, 한 시대의 역사를 대표하는 것들이어서

그저 장난스러움으로 하기보다는 좀 더 진지한 접근이었으면.

고학년들이랑 해보았어도 좋았겠다.’

아리샘은 하루갈무리글에 그리 메모하고 있었네요.

 

아이들이 너무 신나게 작업한 열린교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뭔가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예쁘다.’

어디 유정샘만 그리 느꼈을 라나요.

 

날이 어둡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점심을 먹고 하나둘 이불을 꺼내와 눕기 시작하더니

영락없이 구들더께들 되었습니다.

커튼을 아주 내려주었지요.

까만 하늘,

우리는 그렇게 낮잠들도 잤답니다.

모두 한풀 쉬어준 시간.

 

“이제 이불 개지. 우리가락 하러 갑시다!”

고래방으로 건너가 판소리에 민요에 민요율동,

그리고 땀 뻘뻘 흘리며 악기를 두들겼습니다.

신나게 쳤지요,

항상 신명나는 자리라는 그 말 그대로.

“여기오면 쉽게 배워요.”

아이고 어른이고 하는 말입니다.

금새 배운 가락으로 공연판까지 짰더라니까요.

 

다음은 ‘매미랑 버들치랑’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계곡으로 나갈 계획이었던 거지요.

그런데 비는 쉬지 않고 있습니다.

빗속에 나가 마당에서 맨발로 놀아도 좋을 것이지만

안에서 한껏맘껏 보내는 것도 재미나겠다 싶데요.

청소년학과를 다니는 유정샘이 진행을 맡았습니다.

스피드퀴즈도 만들어서 하고 왼갖 놀이들을 했습니다.

레크리에이션이라고 하는 그런 거.

책방의 책에 심취한 한태희 다상 현서 동주를 빼고는

준비한 프로그램처럼 모두 한 방에 모여서들 말이지요.

‘새끼일꾼들이 일을 참 잘하고 알아서 움직여주는 성실함이 너무 고마웠다.

참 재주도 많고 아이들과도 잘 노는 새끼일꾼과 어린 품앗이샘들이 예쁘다.’

나이든 샘들의 하루갈무리글에 한결 같이 들어있는 칭찬이었습니다.

 

노래가 넘쳤던 ‘한데모임’,

아이고 어른이고 한 표씩을 쓰며 제 목소리를 내고,

말하기와 듣기를 연습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최선의 길을 찾아내지요.

물론 손말도 배우고.

이어 ‘춤명상’.

비 계속된다고 고래방 건너갈 것 없이 수행방에서 모여 하였습니다.

이러면 이런 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방법을 잘 찾는 물꼬가 참 좋은 순간이지요.

집중이 한 곳에 되니까 좋았다는 세아샘,

‘대동놀이는 못했지만 춤명상을 해서 마음이 편안해진 느낌이 들어서 좋았고,

긴 하루가 짧게 느껴지고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쉽게만 느껴진다.’는 새끼일꾼 창우형님,

‘침묵의 힘, 아이들의 집중력 항상 놀랍다,

그 많은 인원이 침묵할 수 있다는 게.’하고 하루갈무리글을 적고 있던 아리샘이었지요.

 

모둠 하루재기를 끝낸 아이들은

물 상황이 좋지 못할 때 최소한으로 물 쓰는 법을 익혀가며 무사히 씻었고,

샘들은 아이들에게 베개 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샘들 하루재기.

‘...그리고 어제 하루재기 시간에 다시 확인하기 라는 것을 많이 실천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지만 한 사람이 계속 살펴봐주면 일이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아 보람찼습니다’(새끼일꾼 경철형님의 하루갈무리글에서)

정녕 물꼬 영광의 이름 새끼일꾼들이 계자를 끌고 갑니다려.

 

앞 계자를 다녀간 준샘 댁에서 어머님이 견과류를 보내오셨습니다.

그저 냉장고에 있던 것 나눠주신 거라 하셨습니다.

새 것 사서 못 보내 외려 미안타셨습니다.

아, 그런 사랑들을 여기 우리 아이들이 받습니다.

지난 계자에는 유진샘의 어머니가 일정을 시작할 때 손 보태고 가시며

전자렌지를 사서 보내오셨습니다,

그거 있으면 산골 부엌살림이 수월할 거라고.

전기 덜 쓰려는 줄 다 알지만 그건 받아들이라고,

그래야 부엌일 하는 사람 손도 던다고 헤아려주셨지요.

아, 그런 사랑으로 물꼬가 살고

거기 아이들이 모입니다.

고마운 하늘, 그리고 고마운 사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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