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 내립니다.
시커멓게 내립니다.
세상에! 계자 다 끝내고 아이들 나갔다고
밤 기온이 뚝 아래로 내려간 간밤이었습니다.
고마운 하늘, 하늘.
어제 류옥하다는 아이들 가는 걸음에 묻혀
서울 갔습니다.
“안 받겠다고 했는데도 굳이 주시더라.
어머니가 인사 좀 드리고 기억했다가 갚아드려요.”
기차에서 한 어머님이 하다 손에 돈을 쥐어주셨습니다.
벗 같은 그이입니다.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인 그네입니다.
“마음가는대로 나눠 쓰는 거지요.
뭔가 주고 싶은데 당장 있는 게 그거였네요.”
아, 내가 무엇이라고 이런 사랑을 다 누리는가,
아이를 키우며 자주 그 아이 키우는 숱한 그늘을 느끼지요.
고맙습니다.
류옥하다는 제주도에서 섬환경캠프를 같이 했던 10기 동기들을
안국역에서 오늘 만나기로 했더랍니다.
서울은 뙤약볕이었다지요.
“종일 뭐 했니?”
안국역에서 장애인 관련 서명 받던 아저씨가
텔레비전에서 봤다며 하다에게 아는 척을 하기도 했더라나요.
인사동에 가서 게임방도 가고
둘러보며 걷고, 기념품 가게 스티커사진도 찍고,
점심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샘이 사주셔서 잘 먹었다 합니다.
까페에서 수다 떨고,
북촌 한옥마을 들리고,
경복궁 들어가고 설정 사진도 찍고,
그리고 저녁밥으로 보리밥을 먹고 노래방으로 마감했다지요.
계자 마지막 일정을 마친 사람들을 보내고
상가에 갔습니다.
찾아올 이라고는 몇 없는 그네였지요.
계자 중이었다면 어림도 없습니다.
고인을 보낼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밤을 지샌 뒤 발인을 지켜보고,
거창과 김천의 경계를 이룬 수도산 천년고찰 청암사를 다녀왔습니다.
숙종의 정비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있을 당시
이곳 극락전에서 기거하면서 기도 드렸다던가요.
우리나라 비구니 강원 중 가장 외진 곳입니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청정도량답게 맑기도 참 맑데요.
극락전 뜰을 걷고
건너 백련암도 들여다 보고
비 추적이는 불영산(예전 이리 불렸다는) 일주문을 뒤로 두고 나옵니다.
젖은 것들은 마음을 낮추게 하지요.
이런 시간을 허락한 하늘에 또 고마웠던 시간.
사는 일, 고맙고 감사한 순간 참 많습니다려.
식구들과 황간 읍내에서 만납니다.
계자 끝내고 바깥음식으로 저녁 먹자했지요.
비로소 계자가 다 끝난 느낌...
다음은 산골의 일상이 이어지는 거지요.
“옥샘, 이제 계자 끝나고 뭐하셔요?”
새끼일꾼 경이가 떠나면서 그리 물었던가요.
하하, 삼시 세 때 밥해먹고, 청소는 기본,
농사일이며 교무실 일이며
나날의 일상이 우리 앞에 놓였답니다,
어느 삶이나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