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수행.

뒤란 언덕은 개미취로 지천이었습니다.

앞의 높다랗고 긴 창으로는 하늘과 나뭇가지들이 들어왔습니다.

햇살도 넘어오기 시작했지요.

향내가 창고동을 채우고

우리는 몸을 깨우고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은 물구나무서기,

늘 서서 짓눌린 장기들을 뒤집어 털어주고 다시 자리를 잡아주었습니다.

 

달골 자드락길을 다시 내려갑니다.

건넛산이 와락 안겨옵니다.

고개 드니 저 건너 마을을 지키는 큰형님느티나무가 가슴으로 들어섭니다.

오전은 호두를 따기로 합니다.

아침을 먹고 다시 달골 올랐네요.

이곳에서 이리 걷고 또 걷고 걷고만 해도 좋으리라 합니다.

하다가 올라 장대로 털고,

떨어지는 호두에 머리가 맞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통통거리며 줍습니다.

다람쥐 같은 아이들....

그러다 금새 싫증이 났는지 창고동으로 들어가 뛰어다니고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식들 멕여야 하는 정말 다람쥐 엄마들처럼

줍고 또 주웠지요.

“호두도 독 있어. 만지면 두드러기 올라.”

안세영님 그러셨습니다.

안동 시골서 나고 자라셨댔지요.

“에이, 여기(이 마을 사람들) 다 만져도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그런데, 하다가 간지럽답니다.

벌겋습니다, 두드러기 올랐습니다.

숨어있던 것이 마침 얘기 듣고 오른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요?

 

고구마줄기도 뜯으려 하였으나 뜯기 진즉에 접었습니다.

오는 길 거인폭포에도 들렀거든요.

그렇게 장엄한 줄 몰랐더라나요.

아이들이 기어오르고, 엄마들 눈은 아슬아슬.

그러거나 말거나 마냥 신난 아이들이었겠지요.

어른들도 슬쩍 해봅니다.

“준샘이 쓴 것처럼...”

인교샘이 계자에서 쓴 준샘의 하루정리글을 떠올리며

아이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거인폭포가 정말이지 궁금하였더랍니다.

아이들한테 무섭다 말은 못하고

해보니 재밌어서 또 오르고

그러다 엉덩이가 따끔거리고...

다들 젖어서 돌아왔지요.

옷방에서 저마다 옷을 찾아 갈아입었습니다.

 

달골에서 호두를 따는 동안,

학교에선 손님들이 머물다 떠났습니다.

차를 덖으시는 송남수샘, 물꼬 현판 서각하신 신성철샘,

그리고 금산에서 오신 중년의 부부.

얘기 나누고, 가시겠다는 걸음 붙잡아 국수를 말았지요.

사람들이 손님 잘 치르라고 늦었던가 봅니다.

그제야 빈들 식구들이 와서 점심을 먹었더랍니다.

 

오후는 사과잼을 만들기로 합니다.

류옥하다 선수가 주에 한 차례씩 머슴을 살러가던,

사과를 유기농재배하는 광평농장에서 조정환샘과 현옥샘이 나눠주신 것들입니다.

먹기도 하고 잼도 만들라며 넉넉히도 주셨지요.

한 무리는 바깥수돗가로 가서 씻고

다른 무리는 둘러앉아 칼질을 시작합니다.

덩어리가 있어야 식감이 좋더라며 그리 만들기로 하지요.

다들 칼질을 어찌나 잘하시던지요.

아, 이래서 ‘아줌마’들이 좋습니다요.

그 사이 앵두와 소울이를 위한 간식도 마련합니다.

단호박요걸트샐러드!

 

사과가 흠이 많습니다.

그러니 잼을 만드려는 게지요.

그런데 어찌나 달고 단지요.

“비싼 사과 여기 와서 실컷 먹네.”

엊저녁 사과를 먹으며, 연신 먹으며,

한가위에 사과가 얼마나 금값이었나들을 토했습니다.

그랬던 갑습니다, 그랬던 갑습니다.

그렇게 실컷 먹고 이제 잼을 만들고 있는 거지요.

적당히 껍질도 넣습니는다,

거기 레몬즙과 계피도.

솥단지에서 그득 그득 잼이 뒤척입니다.

지난번 고래방바닥을 고친 안명헌샘도 지역도서관에도

광평에도 진주한의원에도 나눠주리라, 또 어디 보내야더라...

아, 그러면 만든 사람들 몫이 줄겄습니다.

역시 늘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라니까요.

연규는 고뿔을 안고 왔습니다.

한참을 누웠습니다.

“독을 빼나 부다.”

더 자라 자라 합니다.

이불 잘 여며줍니다.

그리 잘만 쉬어가도 좋을 테지요.

 

잼공장이 늦게 문을 닫은 덕에

늦은 저녁이 맛났습니다.

그리고 달골, 춤명상.

하지 말까 하다 뭉친 어깨 근육도 풀어야겠다 하고 했습니다.

늘 그러하지만, 역시 하길 잘했다 하지요.

세 살 소울이도 함께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감잎들이 춤을 위한 소품으로 촛불과 함께 가운데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서히 초록색에서부터 물들어가는 과정이 담긴 잎들,

시간이 그렇게 흘렀고,

그 시간들을 우리가 지나왔습니다.

그렇게 어딘가로 또 흐를 테지요.

참, 달골 오르며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들려준 인교샘의 귀신이야기,

정말 일품이었다나 어쨌다나요.

아이들이 노래져서 좇아들어왔더랍니다.

담에 계자에서 초빙해야겄습니다요.

 

실타래.

야참을 먹은 아이들이 반디불이를 찾아

류옥하다를 앞세우고 달골을 내려가고

아, 그런 밤을 이 아이들이 언제 가졌을 것이나요...

어른들은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들이 공유점이 생기고

그것은 대안으로 나아갑니다.

제도교육과 대안교육과 홈스쿨링이 사실 똑같다,

그런 결론을 강력해 제시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저였지요.

문제는 어찌 사느냐라는 거지요.

 

새벽 3시, 류옥하다가 건너왔습니다,

두드러기로 온 몸이 벌개져서 긁으며.

얼음찜질을 합니다,

감식초를 희석한 찬물로 닦아도 주고.

쉬 가라앉을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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