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 백배와 선정호흡, 자비명상.

아침 해건지기가 한 시간도 더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여기는 서울.

2주 뒤의 서울나들이 행사를 앞두고 답사가 있는 날입니다.

신정원님이 동행합니다,

군대 간 큰 아이가 초등 2년 때부터 맺은 인연인.

마침 그 동네께 살아 기꺼이 길눈잡이 하마셨지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경복궁 담장을 끼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청와대 옆 청운동을 올라 윤동주 문학관에 이르고

창의문에도 올랐다 부암동으로 내려섰지요.

환기미술관도 들었다가

점심 먹을 곳을 기웃거려 한 집을 정하고 밥도 먹어보았습니다.

주로 공사장 인부들에게 밥을 대는 함바집이었지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음은 석파정 별채를 들렀다 홍지문을 뒤로 하고 세검정을 향했지요.

옛적 서울의 놀이터라면 동대문 밖 뚝섬과 광나루, 서대문 밖 마포,

그리고 피 묻은 칼을 씻던 세검정이었다 합니다.

세검정 물 위로 떨어지던 능금 꽃잎,

종이죽을 쑤던 가마솥 이들과 마전을 하러 나온 여인들,

그리고 물장구치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골짝,

그곳을 거슬러 백사실(백석동천)에 이르렀습니다.

숲을 넘으니 평창동.

티벳 탕카를 소장한 화정박물관이 보물찾기에서 만난 것처럼

거기 기다리고 있었지요.

붓다의 환생으로 일컫는 파드마삼바바의 팔변화가

상설전시관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오래 섰더랬지요.

계속 티벳불교와의 연이 깊은 최근입니다.

수행은, 자꾸 손짓하는 불교의 인연들이,

그렇게 삶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네요...

 

저녁, 부암동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습니다.

우리나라 2세대 바리스타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선배가

거기서 커피전문점을 하고 있습니다.

전화 넣으니 달려왔고,

다른 한 선배 형도 소식 듣고 가족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게 물꼬 계자에 오는 진현이와 관우네이지요.

20대에 만났던 우리들이 이제 다 자란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형은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하지요.

20년도 더 된 인연,

“다시 20년 뒤에 우린 어떨까?”

선배가 길을 걷다 문득 던진 말입니다.

그날이 오긴 할까요, 우리는 또 어떻게 살고 그날을 맞을까요...

늘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고 바다를 지키고 독도를 지키던 선배가 있었지요.

발해항로를 따라 블라디보스톡에서 오키나와로 뗏목을 타고 떠났던 그는

결국 다리 하나의 주검으로 돌아왔더랬습니다.

해마다 우리는 그를 추모하며

우리 삶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고 있지요.

오늘도 다시 떠난 선배를 기리기도 한 시간이었더랍니다.

 

아이에게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옷 언제 고칠 거냐는.

“새로 옷을 사달란 것도 아니고...

꿰맬 옷을 몇 벌이나 그리 쌓아놓고 있으니

입을 옷이 아무래도 시원찮은 겁니다.

재봉틀 앞에 앉는 날이 이리저리 여러 날 밀렸던 거지요.

“룽따나 이런 건 실질적인 것도 아닌데...”

며칠 전 챙겨서 전나무 사이에 매달아 펄럭이고 있는 룽따를 들먹입니다.

옷 꿰맬 시간은 왜 없냐는 화를 그리 에둘러하고 있습니다.

미안습니다.

내려가면 꼭 해야지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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