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6.불날. 싸락눈 내린 아침

조회 수 1238 추천 수 0 2011.12.20 11:44:46

 

이른 아침 폴폴 싸락눈 날리고, 종일 흐렸습니다.

눈이 많아지면 꼼짝 못하는 달골입니다.

창고동의 춤명상 소품들을 학교로 내리고

이불을 또한 내립니다.

허둥거리지 않아도 될 즈음에 달골 짐들을 내리니 좋습니다.

겨울을 덜 힘들게 보내는 방법 하나가

바로 서두르는 것임을 여러 해의 겨우살이로 알지만

허겁지겁하기는 늘 반복되어왔습니다.

비로소 올해 조금 나아지고 있다지요.

지난 네 해는 공부 하나를 하느라고도 그러하더니

올해가 여유롭기는 했나 봅니다.

 

김장 장을 봅니다.

해마다 보는 젓갈가게 아주머니,

홀로 해얄지 모르는 김장을 걱정해주며 오징어젓갈을 선물합니다.

굵어지는 아들을 손주이거니 이뻐해주시며

그 아이 잘 먹는다고 챙겨주시는 것입니다.

시장통 한 곁 노부부가 하는 가게에서 갓과 쪽파도 삽니다.

오래 전 TV에서 봤노라 인사를 건네옵니다.

“한참 됐는데...”

“영동이라 하니까 자세히 봤지요.”

지역, 그것이 무엇이관대

우리는 어데 가서 나랑 연관 있는 지역 끄트머리 천 조각 하나만 봐도

그리 반갑고는 합니다.

사람이란 게 그리들 외로운 게지 싶습디다...

 

한 지역의 작은 신문사에 새해부터 칼럼을 쓰기로 합니다.

만나서 얼굴 보고 결정했네요.

주에 한 차례가 얼마나 금새금새 닥치는지 모르지 않으나

딱 눈감고 반년만 쓰기로 합니다,

훈련이려니 하고.

 

산골서 요긴한 두툼한 장갑 한 켤레,

장성에 있는 제자 같은 후배가 선물로 보내왔습니다.

또, 서울서 광주서 아이들의 인사도 닿습니다.

가장 혹독한 시간 가장 어렵게 사는 이들이 해오는 연락들로

마음 푹합니다.

고맙습니다.

 

벗이 보낸 애잔한 세상 이야기도 읽습니다,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의 영결식에 다녀온 한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 뉴스에

두 명의 소방관과 두 명의 공군조종사의 사망소식이 나왔다고,

순직한 한 소방관의 아내는 임신 중이고

순직한 한 공군조종사의 아내는 아이를 낳은 지 20일이 되었다고도 나왔다고,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쓴 글은

마음이 아픈 아침, 이라고 맺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삶 너무 절박해서 다른 삶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게 산골의 겨울은 그러합니다.

미국인친구가 고양이를 맡길 수 없겠냐 연락했습니다.

어렵겠다 하자 맡길 만한 곳을 알아봐 달라 했지요.

나는 그만큼 답답하지 않고

나는 그만큼 슬프지 않고

나는 그만큼 아프지 않아 미안했습니다,

나 사는 처연함으로.

하지만 작가의 말은 궁금했습니다.

찾아보았겠지요.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면서 확인한다."

아직 벗이 나를 기억하고 다가와 용기를 주고,

아직, 삶이 처연한 어미 없는 제자가 소식을 전해오고,

아, 아직 살아야겠습니다!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마음에서 부글거립니다.

소방위의 월급은 200만원 남짓에 위험수당 5만원, 화재진압수당 8만원.

소방장은 기본급 180만원 정도에 수당은 같다 합니다.

남의 재난에 몸을 던져 뛰어들지만, 그 수당은 13만원이 전부.

일의 가치에 따라 처우가 달라야할 것이니...

이러니 누가 그 일을 하려들겠는지요.

결국 생에 떠밀린 이들이 하게 될 것입니다.

 

성찰 하나.

저는 그냥 만나서 좋은 관계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기는 쉽기 때문입니다(나쁠 게 무에 있겠는지요).

사실 물꼬에서 살아가는 일이

그저 모여서 같이 밥 먹고 놀고, 그럴 짬이 없어서도 그럴 겝니다.

뭔가 같이 작업해낼 때 그 관계가 단단하고 오래갑디다.

물꼬의 관계들을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서 더 깊고 짙습니다.

제게 피붙이 같은 이들입니다,

설혹 지금 곁에 있지 않고 멀리 떠나 있을지라도.

그런데 가끔 그런 관계가 있습니다, 호의에 답하기 위해 움직이는,

때로는 뜻과 상관없이 상황에 밀려갈 때가.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리 내켜하지 않다 잡아놓은 약속이라 달려가며,

장소에 서둘러 가려다 그만 지나쳐서 고속도로를 되돌아가며,

맛난 거라지만 제법 많은 거리를 차를 타고 가며,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이더냐, 한가해도 되더냐 불편해진 마음...

짚어보면 산골 쌓인 내 살림살이의 사정으로 마음이 바빴던 것을,

결국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던 것을,

내 원망으로 정작 마음 좋은 친구의 그 마음이 빛을 보지 못했고,

좋은 곳에 좋은 사람들과 맛난 것을 대접하고 싶어 마음내고 불러준

그의 정성이 그만 허투루 새고 있었던 겁니다.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하여, 때로 예의를 다하는 일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새삼스런 반성.

혹여 인사가 많은 섣달, 그렇게 하는 예의로 자신이 억압되지 않기를.

오늘의 호의는 또 갚는 날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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