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게 깐 눈이었습니다.

대배 백배로 아침을 엽니다,

들어오는 아이들의 무사함과 평화로운 청소년계자를 보내자 마음 모은.

올 들어 가장 춥다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없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도 말해서 너덜해진 말, 물꼬 날씨의 기적!

 

기차표가 여의치 않아 여진이가 8시 30분에 영동역에 닿아

택시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택시비를 타진해놓은 물꼬 전용 기사인 셈이랍니다.

세상 험해서도 낯익은 기사가 필요했고,,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는 이들도 없잖아 마련해놓은 대책이었지요.

여진이를 같이 맞이 준비를 도우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청소년계자에 잘 집중하게 돕는 편이 더 옳겠다 하고

고추장집에서 아이들 올 때까지 눈 좀 붙이게 합니다.

 

복도의 바람 많은 몇 곳, 작년처럼 커튼을 꺼내 달고,

아이들 잘 고추장집 방 둘과 된장집 방 하나를 비우지요.

어느 순간 우리는 모든 것에 손을 멈춥니다.

정말 해얄 것만 해야는 순간에 접어들지요.

류옥하다는 큰해우소 청소를 저가 하겠노라 나섰습니다.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미리 잘 그려보느라

어느 순간, 부산한 움직임을 멈추고 호흡!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

영동역에 모이면서 태우가 미리 문자 넣어왔습니다,

모인 아이들과 들어오는 아이들 수가 맞느냐는.

2011 겨울 청소년 계자는 열다섯 규모로 잡았습니다.

현곤이가 엊저녁 갑자기 오지 못할 사정이 생겼고,

석현이가 소식 없이 못 왔습니다.

초등 4년이 마지막 보았던 때였지 싶은 석현입니다.

그 아이 벌써 9학년이어요.

태우와 진주가 대입을 치르고 왔고,

계자를 보냈던 경험 뒤 처음 성재 지호 민재 유진 해인 동진이가

청소년계자에 입성하였습니다.

인영 가람 창우 여진이는 지난 청소년계자에서도 보았구요.

류옥하다는 섬에 가던 일정 때문에 지난 여름엔 첫날 얼굴만 겨우 봤네요.

기락샘도 같이 버스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책방 난롯가에 모여 서로 인사부터 나누었지요.

아직 해우소 청소가 덜 끝난 류옥하다에게

마침 볼일 보러 갔던 해인이 물었습니다.

“도와줄까?”

그런 마음이 새끼일꾼으로 가는 걸음일 겝니다.

 

오늘 우리는 비어있는 속틀 앞에 섰습니다.

우리가 움직이고 그 결과를 기록하는 시간표로 가자 하였지요,

그리 열어놓고 흐름 따라 가보기로.

 

점심을 먹고 ‘개울 앞에서’.

개울을 건너기 위한 준비처럼

청소년계자의 목적인 성장, 배움, 나눔, 쉼에 대해 풉니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자리!

짧은 시간이나 사람은 한 순간 온 삶을 흔들며 깨우치기도 하더라,

24일과 25일, 성탄전야와 성탄을 함께 하는 뜻깊음에 대해서도 짚지요,

종교인이 아니어도 우리가 왜 성탄을 기뻐하는가,

왜 사람들은 석탄을 기뻐하는가 하는.

그리고 함께 보낼 시간에 대한 마음가짐도 고릅니다.

모이다보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요.

마음으로 안아주기, 이해하기, 귀 기울이기!

받아들여진 느낌이 얼마나 위로가 되더냐,

얼마나 사람을 살고 싶게 하더냐.

그리하여 서로에게 사람으로 감동을 주는 시간이 되자 했습니다.

 

배움은 배움으로 흐릅니다.

앞서 익혔던 새끼일꾼들이 다음 새끼일꾼들을 몸으로 기릅니다.

저들끼리 인사를 나눈 뒤 설거지부터 나누고 있습디다,

으레 있겠거니 하고 야참 당번까지.

태우는 밖으로 전체를 진두지휘하고

진주가 안으로 후배들을 건사합니다.

새해면 이들도 품앗이일꾼이 된답니다.

태우랑 일곱 살에 맺은 인연이, 진주랑 초등 4년에 맺은 연이

이 세월에 이르렀습니다요.

 

‘징검다리-1’.

왜 왔는가,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가, 뭘 하고 싶은가,

그리고 지금 하는 생각과 마음을 살핍니다.

다음으로 숙제 검사.

나누고픈 이야기나 글을 준비해오기로 하였지요.

동진이, 짤리기 싫어서 읽었다는 황석영의 글이

읽다보니 재미가 있더라 합니다.

무언가를 하다보면 그 일이 주는 재미가 있지요.

가람이는 어머니가 추천해준 시를 읽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위로하는 날이 필요하다는.

여진이는 고양이를 다룬 자작시.

태우는 글을 준비 못한 대신 수험생이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그런 시간을 건너갈 이들에게 조언을 주었지요.

“물꼬면 물꼬, 자기를 지탱해주는 사람이 필요해.

자기를 버티게 해주는 기억 같은 거.”

시험을 치러가는 새벽 문자를 보내왔던 그입니다.

전 그를 위해, 수험장으로 가는 이들을 위해,

그 아침 대배 백배를 했더랬답니다.

유진이는 윤동주의 시를 한 편 낭송했고,

성재는 류시화 시집을 들고 와 한 편을 읽었지요.

‘역겨움도 모르는 외눈박이 독자들에게나 매혹적인 시집’이라던 혹평이 있었지만

그 글이 많은 사람을 위로해주었던 책이었지요.

저 들끓던 80년대에서 자기를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큰 변화 못지않은 견딤으로 본다던 이문재의 평도 생각났습니다.

해인은 생활 이야기를 전했고,

지호는 트리나 폴러스의 작품을 언급했지요.

그건 <어린왕자>와 <예언자>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함께

이 늙은이의 청소년기에도 필독서였습니다.

진주는 유진샘네 집에 갔다 읽은 사랑에 대한 장영희님의 글 한편을 전하였으며,

민재는 책방에서 급조했노라 서정춘님 시 하나 던졌습니다.

덕분에 저는 근 한 해만에 서정춘 선생님께 전화 넣었지요.

칠순도 그냥 지나고 인사한 셈 되었고,

송년인사 되었더랍니다.

류옥하다는 수행승 아잔 브라흐마의 글 하나를,

인영은 한비야의 책을,

그리고 창우는 난도샘의 책 가운데 한 구절을 다루었네요.

풍성했습니다.

계자에 정말 잘 왔다고, 그럴 줄 알았지만 정말 그렇다고,

살아가는데 지혜를 얻었다고,

그리고 잘 나아갈 거라고들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징검다리-2’.

일명상입니다.

가마솥방 유리창을 닦고, 간장집 뒤란에서 장작을 패고,

연탄재를 깨고, 장을 닦고, 부엌일을 도왔습니다.

인영은 감자를 깎다 손을 베였지요.

류옥하다가 달려와 마저 했습니다.

우리는 그 감자가 든 된장찌개를 먹었다지요.

 

저녁을 먹고 ‘밥상꼬리 공연’이 있었습니다.

여느 때라면 밥상머리 공연이었겠지요.

오늘은 꼬리.

기타를 치고 피아노를 치고 플룻을 불고 율동을 했습니다.

유진의 공연도 드디어 보았네요.

지난해 밥상머리 공연을 위해 연습 무지 했다던 그였으나

오지 못할 일이 생겼더랬습니다.

창우는 2개나 한다고 했더랬네요.

“나, 음악 시간에 안 졸았거든.”

“그래서 가창 C 받았냐?”

굴하지 않고 무대로 나온 창우.

엘리제를 위하여 두 마디와 음정 틀린 젓가락 행진곡 네 마디.

그 유쾌함이 우리를 더욱 즐겁게 했습지요.

마지막은 진주가 치는 피아노에 맞춰 우리 모두 입 모은 합창.

 

‘징검다리-3’; 춤명상.

느릅나무 춤을,

날이 날이니만큼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처럼 ‘기도’ 춤.

누구나 그런 십자가 하나 짊어지고 이 생을 건너가고 있을 테지요.

그리고 마리아 화란투라의 노래 ‘가깝고도 먼’ 춤.

성탄 전야의 축제를 위한 춤으로 흥겨웠더랍니다.

 

‘징검다리-4’; 실타래.

논의가 먼저 있었습니다, 이번 겨울 아이들 계자를 어찌 꾸리면 좋을 것이냐.

경험했던 계자에 대한 평가,

그리고 머리를 맞대보았지요.

다음은 자신의 한 해 평가하기,

마지막으로 마음 털기.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 역시 먼지 털듯 털어내기.

아프게 슬프게 속상하게 화나게, 가 다 비슷한 말들일 수 있을 테지요.

저도 그 결에 덩달아 풀었더랍니다,

새끼일꾼이 되는 순간 이들은 제자를 넘어 동료이고 동지이니까.

누군가가 이곳을 도왔다고 해서 우리를 함부로 대할 까닭은 없다,

구석구석 쑤시고 간 것들 꺼내고 정리하며 모락모락 피어오른 짜증,

여기 상주하는 식구들도 물꼬의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런 푸념들,

하지만 한편, 물꼬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하는.

저마다 사는 일이 만만찮지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그들대로, 산골에 사는 아이는 또 그 사정대로,

부자면 부자인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모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며 없는 대로

사는 일이 다 그러합니다.

“무식한 울 어머니 그러셨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처처마다 제 걱정들이 있으리니.”

그렇게 우리를 위로했고,

“어쩌니, 이래도 저래도 다 지나갔는 걸.

자면서 죽고 일어나면서 다시 살자.”

그리 다짐하였더랍니다.

그래도 생이 얼마나 소소한 기쁨들로 넘쳐나더냐,

사는 일이 또한 얼마나 경이이더냐,

더하여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과 돈독한 관계와 가치로운 일에 대한 복무’도

잊지 않고 짚었구요.

 

밤참도 먹고 노닥거리고 씻고 도란거리고,

어느새 새벽 세 시가 바로 앞이었지요.

아이들을 먼저 올려보내고 교무실에서 갈무리를 하고 본관을 나가며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하나는, 신발까지 들어가는 이가 신기 쉽도록 해놓은

설거지를 하고 나온 이들이 한 정리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무렇게도 벗어던져둔 슬리퍼들에.

마지막 순간까지 해야 할 긴장도 새끼일꾼이 익혀야할 일일 테지요,

어디 그들만 그러해얄까만.

 

아이들 방에 꺼지는 불을 확인하고서 간장집으로 스며듭니다,

눈 다시 나리는 마당을 건너.

기락샘이 깼습니다.

잠시 이야기 나눕니다.

그리고, 음... 마음에 품어왔다가 비로소 결심하고 결단하게 된

물꼬의 대전환에 대해 매듭을 짓게 되었습니다.

질이 찰 때로 차면 다음 질로 변화하지요.

훗날 우리는 이 밤을 물꼬의 새 역사를 쓰게 된 날로 기억할 겝니다,

그 날을 우리가 함께 하였다고 느꺼워할 겝니다.

성탄 아침, 아이들은 그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기다리는 아침은 더답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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