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계자 밥바라지로 선정샘 닿았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의 산골 추위와 어둠 속으로

뚜벅뚜벅 온 가족이 다 왔지요.

어느새 아침까지 해서 챙겨드셨더랍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거친 겨울의 밥바라지를 걸음마 아이 데리고 하겠다 나선

선정샘이 준 감동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지요.

 

그리 바쁠 것 없는 아침이라,

그리고 사흘 내내 늦게까지 움직였던 계자 준비위 샘들이

느지막히 내려왔습니다.

대배백배와 선정호흡으로 해부터 건지지요, 더뎠으나.

중요한 일정들을 앞두고 그리 마음가짐부터 가지런히 합니다.

무엇이나 그러해야겠지만 아이들 맞는 일이라면 더욱.

 

학교 뒤란 마을 댓마의 한 댁에서 항의전화가 온 아침.

흙집 벽에서 터진 수도가 길을 얼리고 있었지요.

이장님과의 상의에서는 그걸 당장 어쩌겠냐고

연탄이나 깨서 뿌려놓으라셨습니다.

산 아래 마을의 수도를 관장해주는 아저씨를 부르지요.

바깥 소사아저씨쯤 되시는 게지요.

부실한 공사였던 흙집이 두 해나 같은 문제를 일으켜

드나드시면서 사정과 구조를 다 알게 되셨더랍니다.

“부품이 오래된 거라, 요새 안 나오는 거라...”

김천까지 나가서 알아보느라 오후 다 지나서야 오셨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찾던 것을 구해 막음을 하였지요.

헌데! 다른 곳이 또 문제였습니다.

다시 아저씨 나갔다 오셨는데,

아무래도 구해지지 않는다십니다.

내일은 해날인데다 정월 초하루이기도 하여

부품 구하기는 다 글렀습니다.

모레까지는 어찌어찌 수도를 쓸 수 있도록

임시조처를 한 채 돌아가셨네요.

다행입니다, 계자 아이들이 적어.

또, 시작하면서 그래서 다행입니다.

계자 중간이면 얼마나 정신이 더 없었을 라나요.

고무통을 들여 물을 미리 채워놓은 덕에

수도 잠그고 공사하는 동안 일정을 잘 진행할 수도 있었답니다.

다 고마울 일입니다.

 

하나하나 날을 잘 쓰며 챙겨온 덕에

장까지 어제 나가 왔던 까닭에

계자 미리모임이 한결 여유가 있습니다.

오전에는 선정샘댁 세현이와 성빈이 옷가지까지 챙길 수 있었지요.

어제 잠시 시간을 들여 꺼내고 확인하였던 것을

오늘 선정샘이 다시 아이들한테 맞는가 가늠하셨답니다.

겨울을 위해 갈무리한 말랭이채소들이며 살림살이도 확인합니다.

선정샘 밥바라지 오시던 지난 몇 해,

이 짧은 틈이 쉽지 않아 와르르 쏟아지듯 일을 받아 부엌을 살아내셨더랬지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점심 버스에서부터 샘들이 내립니다.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기락샘도 내려와 간장집 부엌에 불쏘시개로 쓸 잔가지들도 들여주고

고추장 집 부엌에서 흘러 얼어붙은 배수로를 넘친 물,

간장집 오르는 계단을 덮어 언 것도

더운물 뿌려가며 깨고 흙도 덮어주었지요.

 

저녁 7시 미리모임.

뒷일정은 마흔넷 아이들 마감이나 앞 일정은 아이들 열아홉입니다.

열 명으로 한다던 계자였는데 그래도 어른들 열넷을 더해

서른셋이 꾸리게 되니 그리 작은 규모가 아닌 거네요.

아무래도 1월 1일에 시작하는 일정이 애매했던 모양입니다.

두 번째 일정 이후로 한 주 날을 받자 하는 분들도 계셨으나

그건 또 그 다음 주의 설주간이 걸렸더랬지요.

여느 계자들이 첫 일정부터 아이들 차던 것과 달리 두 번째 일정이 마감인데,

첫 일정에 아이들 자리가 비는 것도 또 처음입니다.

물꼬에서 사는 일이 그리 늘 새로움입니다려.

 

초등 2년 때부터 와서 대학생이 되는 진주며

일곱 살에 와서 오랜 시간을 여기서 보내고 역시 곧 대학생이 되는 태우,

이제 새끼일꾼으로 처음 입성한 민재,

신청에 밀려서 중 3이지만 이제 새끼일꾼 첫걸음인 해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코 깨져서 안 오다가 코 붙고 다시 왔”다는

새끼일꾼 2년차 동진,

처음 물꼬 품앗이가 된 교원대의 한 분과모임 수환샘 성호샘 한별샘,

방학이라고 강원도서 일하다가 부랴부랴 온 유진샘,

군대 간 오빠가 초등 2년 때부터 맺은 인연 뒤 역시 오랜 연이 된 9학년 경이.

처음 온 샘들은

새끼일꾼이며 이곳 샘들이 일하는 것을 보며 감동했다 했습니다,

알아서 광내고, 윤내고, 이 공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그런 공간입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기운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엿새를 흐를 것이지요.

 

어른들이 미리모임을 하는 동안

류옥하다 선수가 아이들 글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자라 그리 일을 돕고 있는 7학년.

“계속 그 나이 해서 우리 모임 할 때 글집 만들어주면 좋겠네.”

하여 일을 덜었습니다.

계자 전체 움직임을 그리고 교사교육이 끝난 10시,

샘들의 마지막 점검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자정, 우리는 길게 늘어서서 재야의 종을 쳤습니다,

절집에서 108 번뇌를 종소리로 울려 깨닫게 하던 종,

이제는 제야 한밤중에 서른세 번 울리는.

107번을 묵은해에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새해에 치는 거라고도 하던가요.

12개월과 24절기, 그리고 72후(候)의 숫자를 합쳐도 108이네요.

33은 조선시대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사대문을 열 때

서른세 번 종을 치던 파루에서 온 줄이야 익히 압니다.

이것은 불가의 삼십삼천에서 나왔을 게구요.

우리도 그거 따라 현세에서 가장 먼 33천, 도리천까지 울려 퍼지라고

크게 크게 종을 쳤더랍니다,

열 하나가 돌아가며 세 차례.

 

새벽 3시,

희중샘, 자정에 일 마감하고 서울서 달려왔습니다,

오직 아이들이 있는 물꼬에 대한 애정으로.

149 계자 안정감 있게 잘 시작하라,

늘 하던 대로 아이들맞이 해주기 위해 달려온 길입니다.

화장지와 교사들을 위한 일회용 커피와 유자차와 코코아와 귤과

그리고, 아보카도 한 상자와 함께.

“장에 갔더니 있더라구요.”

정말 이곳에서 귀하고 유용한 꼭 그것들을 챙겨왔습니다.

그저 착하기만 하고 아무 생각 없다고 핀잔을 듣던 그입니다.

그런데 아, 저이도 이렇게 나이를 더하며 가는구나,

물꼬의 세월이 그러하구나 하였더라지요.

 

묵은해를 보냈습니다, 새해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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