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8.흙날. 맑음

조회 수 1493 추천 수 0 2012.01.31 02:18:03

 

 

해가 얼마나 고마운 날들인지요.

장마만 그런 게 아닙니다.

연일 흐리다더니 해 환하게 나와서 기뻤습니다.

늘 하늘 고마운 줄 알고 사는 산골 삶이려니...

 

꽁꽁 얼었던 날이 조금 푹해졌습니다.

난롯가에서조차 훈기가 드물었던 나흘이

어제부터 조금 유해지더니

오늘은 잔뜩 움츠러들던 어깨가 좀 풀렸지요.

 

방금 먼저 고추장집으로 올라간 아이들이 좇아왔습니다.

열 시에 자러 갔는데, 씻고 일기 쓰고 어쩌고 하더라도 자야할 시간일 걸

복도를 달려오는 소리였지요.

“열한 시가 넘었네. 무슨 일들이셔?”

“선 조처, 후 보고!”

나란히 누웠다가 문득 바깥수돗가 생각이 났더라지요.

“성빈아, 아까 낮에 물 쓰고 틀어놨어?”

이런! 착한 아이답게 꼭지 잘(!) 잠근 거지요.

후다닥들 일어나 옷을 걸쳐입고 달려갔더라나요.

아, 얼어붙어버린 수도!

얼른 가마솥방으로 달려가 난로에 올려진 주전자를 들고 뛰었답니다.

열심히 부었겠지요.

비로소 나오는 물, 큰일 날 뻔했다는 거지요.

다행히 날이 풀려있으니 쉬 녹을 수 있었던 겝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잠깐 사이 그러한 겨울 한가운데.

 

“나와요!”

아침부터도 류옥하다 선수는 세탁기부터 살피고 왔습니다.

풀린 날이 고맙습니다.

포기하겠다, 벽 안에서 수도가 얼어 터졌을 각오를 하고 있었지요.

하여 맘 편히 아침을 맞았는데, 먼저 깬 아이가 확인하고 온 겁니다.

“이런 일 한 번씩 일어나면 좌절하게 돼.”

어제 그러더니 이제 그 좌절 좀 수습되었을라나요.

 

“이거 걸레 아니야?”

“수건이긴 한데 걸레 해야겠네.”

어제 아이들이 수건을 개며 그리 주고받더니

수건 가운데 얼룩이 진 것들을 가려놓았습니다.

수건을 수건 같이 쓰면 좋으련,

어쩌다 바닥에 뒹구는 게 하얀 수건이기 일쑤입니다.

꼭 여러 사람이 함께 쓰지 않아도 그리 됩디다.

‘걸레로 쓰기 너무 멀쩡하고, 또 이미 걸레는 너무 많은데...’

빨고 삶고 볕 좋은 곳에 척척 널었지요.

뽀얗습니다.

 

다음은 어느새 또 채워진 쓰레기통들을 비웁니다,

고추장집에서 교무실에서 가마솥방에서 욕실에서 부엌에서 나온 것들.

그나마 계자 뒤의 일상에서는 비닐과 타 쓰레기로 크게라도 분류되어 있어

분리가 수월합니다.

그런데! 계자 기간 동안 나온 것들이(계자 직전엔 ‘완전 정리’였지요!)

되살림터에 온통 쑤셔 박혀 있었습니다.

건물 안에서 재빠르게 나가긴 하더니

마구 뒤섞여 던져져 있었지요.

계자 중 바빠 그리 되었겠다 합니다.

헌데, 번번이 그리 돼버리는 일이기도 하지요.

“아이고, 왜 이랬다니... 이러니 늘 일이 많아지지. 바로바로 하면 수월한데...

말 안 듣는다고 때릴 수도 없고...”

따라 나와 가마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태울 것들 넣고 있던 성빈이,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럽니다.

“때릴 수도 없고... 어른이니까, 그렇죠?

젊은 할아버지가 ‘쑤셔 넣는 것’도 잘하고 불도 잘 때시니까 그럴 수도 없죠?”

아, 우리 성빈이...

쓰레기통들 불려 깨끗이 씻어 엎어둘 때까지도

열심히 지저귀는 새 한 마리 곁에서 날았더랍니다.

 

성빈이가 어제부터 껌입니다.

오늘은 형이 제(자기) 일로 바쁘니 종일 제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자잘한 일들을 도와주며 말이지요.

마른 비닐들을 걷어 들이고 다시 씻어 걸쳐둔 비닐들을 넙니다.

그런 자그만 일들은 여러 날을 보내도 여간 손 가기 쉽지가 않지요.

빨래를 널러가는 걸음도 따라 나섭니다.

“바닥에 널린 것들 한 쪽으로 모아보자.”

떨어진 목장갑이며 한쪽 구석에 웅크린 어느 이의 속옷이며

바람에 날려 빨래방 너머로 간 속바지며, 날려든 휴지며, 조각난 빨래 끈...

“옥샘 하룻밤 자고 가세요!”

자기네 동네 덕소에 가면 꼭 자고 가자 합니다.

열두 번도 더 꼬드기는 중이지요.

밤에는 열심히 하루 일을 기록하는 곁에서

저도 메모지를 달라더니 입으로 되뇌며 적어갑니다.

“옥샘 옷 사주기, 하다 형 맛있는 거 사주기...”

자기도 여기서 잘 지냈으니 이 식구들도 저네 가서 잘 지냈으면 하나 봅니다.

 

간장집 해우소 옆 창고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뒤엉켜 잔뜩 채워진 물건들을 일단 조금씩 꺼내기부터 하지요.

어찌 이러도록 들여놓기만 하였던 걸까요?

계자 직전 안을 들여다보며 계자 끝나면 젤 먼저 손대리라 다짐한 일입니다.

드디어 시작했지요.

여러 날이 걸릴 겝니다,

이 일만 하는 것도 아니니.

대개 절반은 건물 안의 일들을, 나머지 절반은 바깥일을 하지요.

언 날이어도 해를 받으며 자연의 빛으로 충분히 움직이기!

 

성빈이는 오늘 요구르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어찌나 신기해 하던지요...

산골에서 두 아이 데리고 이리 사는 일도 참 좋습니다.

내내 이 식구들로만 살아도 좋겠습니다.

 

* 새벽 1시가 넘어가는데, 성빈이가 오줌 누러 간다고 깼습니다.

근데 들어오는 걸 보니 옷에 지리고 말았습니다.

옷방에 좇아가 입을 만한 것들을 챙기고,

물주머니도 꺼내 뜨거운 물도 채워왔지요.

저녁답에 연탄불이 숨구멍에 문제가 좀 있어 시원찮았던 참이라

여느 날 같지 않게 구들이 끓고 있지 않았거든요.

아이들을 건사하고 복닥거리는 시간들이 참말 재미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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