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14.불날. 눈 날리다 흐림

조회 수 1320 추천 수 0 2012.02.24 03:30:11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온 산을 울립니다.

산골 봄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간장집 마당엔 새들이 내려앉아 총총거리고 있었지요.

봄이 번지고 있습니다.

흙집 세탁기 온수가 드디어 나오네요.

빨래바구니는 비었는데...

그간 물을 긷고 데우고 빨래를 주무르고 널었더라지요.

 

‘저는 1993년 즈음인가 물꼬 방과 후 수업을 받고,

계절자유학교에 방학마다 다녔던 경험이 있는 학생입니다.

아, 이젠 직장인이죠.’

제자 하나의 메일을 받습니다.

그 아이 초등 저학년을 함께 보냈고,

몇 해의 계절학교를 같이 보냈습니다.

그의 사촌들 이웃들 동생까지 같이 글쓰기 공부를 한 인연들이지요.

‘... 옥선생님이 기억해 주시려나 모르겠네요.

이렇게 저도 벅찬 마음으로 메일을 쓰게 되었어요.

 

사촌언니들과 저, 그리고 제 남동생까지 다 방과 후 수업을 받고

계절자유학교에 같이 다녔던 추억이 있어 홈페이지를 보고 너무 반갑고 울컥 했습니다.

그 당시 자유학교 터를 마련해 두셨다고 한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터가 맞는지 궁금하네요.

 

계절 자유학교에 갔을 때 불렀던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노래하는 아이들아~"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이제 제 나이도 어느덧 스물여덟이 되었는데,

자유학교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홈페이지 자주 찾아보겠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고마울 일이다마다요.

 

서울행 기차 안.

앞자리에 앉은 여럿 중노인들이 어울려

서로들 영동을 아느냐, 영동 산다, 상촌이라고 아느냐,

그런 이야기들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두엇씩 같이 탄 이들이 서로 비슷한 연배들인 듯 보여선지

기차가 영동을 지나가는 참에 그리 한 덩어리가 되어 화제 삼고 있었지요.

저도 뒤에서 몸을 빼며 앞으로 한 마디 거듭니다.

“어, 저 상촌 살아요!”

“거기 끝에 떡집 있지? 그 아저씨 며칠 전 죽었어.”

“네에? 언제요?”

“엊그제. 내가 계원이라 잘 알아.”

동네 소식을 기차에서 낯선 이로부터 들은 게지요.

아는 분께 전화 넣습니다.

“아니야. 상촌 끝에 말고 시작하는 데 있는 떡집 있잖아...”

우리 잘 아는 이쪽 끝이 아니라 저쪽 끝의 떡집.

기차를 타고 지역 소식을 나누고 서로 동무하고...

아, 나도 늙은 거다, 그런 기분.

 

중앙아시아 비자 건으로 서울 종로.

그리고 한 산악인이 하는 와인바에서 천산원정대 발대식이 있었습니다.

3월 한 달 중앙아시아를 같이 누릴 네 사람입니다.

증인으로 강호의 고수 산악인 부부가 함께 했네요.

‘아, 가게 되는 구나.

바램이 차고 넘치고, 잊지 않고 잃지 않으면

그예 꿈에 닿는 날이 오는 구나...’

지금 못하면 나중에도 못 하리니, 그 마음에 내뛴 걸음입니다.

3월을 기다립니다.

 

부암동에서 새벽 5시를 맞았습니다.

늘 마음에 안고 사는 선배를 만났지요.

찬바람 맞으며 한참을 걷고 기다려서야 택시를 잡았습니다.

얼마 전 본 영화 한 장면이 불현 듯 스쳐,

택시를 가장한 차를 타고, 그 왜 여성들을 대상으로만 범행을 저지르는,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스릴러풍,

갑자기 무서워지는 겁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앉자마자 막 듣고 있던 라디오채널을 돌리는 아저씨.

“예불방송인가 봐요. 좋은데...”

“켜놔도 되겠어요? 싫어하는 손님들이 있어서...”

불교방송을 듣고 있다는 사실로 신뢰가 일면서

평온한 마음으로 앉았더라지요.

그런 것이겠습니다, 우리가 종교인에 대해 거는 기대가.

그들은 우리 같은 속인들과 다를 거라는,

그래서 혹 성직자가, 교사가, 저지른 죄에 대해 우리가 더 가혹한 것일 테구요.

그런 걸 좀 놓고 사람을 볼 일이겠습니다.

한 선배에게 얼마 전 잘 읽었던 시 한 편 보이니,

“이건 아니지. 이건 노인네들이잖아.”

도전과 모험의 청년정신을 얘기하는 그에게는

생의 마지막에야 만나는 것만 같은 풍경이 너무 먼 이야기였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차이구나 싶데요.

‘나, 너무 늙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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