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

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 던 오세영 선생의 시를 생각하는 아침.

 

날 흐리나 봄입니다.

낼부터 또 기온 좀 떨어질 거라 하나

그래도 봄입니다.

 

빈들모임입니다.

이번엔 여느 빈들과 달리 초순에 일찌감치 자리가 찼습니다.

2011학년도를 잘 갈무리하고픈 바람들이 담겼겠다 짐작합니다.

물꼬 상주 식구들을 포함해 스물셋이었지요.

그런데, 물꼬의 새끼일꾼과 고학년들 자리는

좀 더 일찍 마감하게 되었더랍니다.

하여 신청이 늦었던 분들께는 이번에 참여가 어렵겠다 메일 드렸지요.

아주 정교한 모임이 아니어 웬만하면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준비하는 편에서는 각 나이대의 적절한 비율,

처음 오는 이들에 대한 기회부여 같은 것들을 두루 생각해야 한답니다.

특히 신청하고도 오지 못하게 된 새끼일꾼 넷에게 미안.

 

미처 손이 가지 못한 부분들이 없는가 살피고,

겨우내 눈과 바람에 맨얼굴 다 드러내고 있던 평상도 닦고,

뒤란에선 불을 땝니다.

온수통의 물도 다 얼어 있었더라지요.

 

재수를 시작한 태우샘이 먼저 들어와 잠시 쉬었고,

대구의 품앗이 성원샘이 다섯 살 루다를 데리고 들어와

부엌일이며 준비를 도왔습니다,

들어오며 떡방앗간에서 가래떡과 떡볶이떡도 찾아.

점심을 먹고 달골에 올라 베갯잇도 씌우고 이불도 깔았지요.

류옥하다는 그 사이 입춘첩을 쓰고 붙였습니다.

‘봄을 맞아 크게 길하라,

새해 왔으니 경사가 많으리라.’

대보름에 쓰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부랴부랴.

저 아이 그 사이 또 글씨가 늘었습니다.

지난 한 해의 애씀이 그리 드러나고 있었지요.

 

“뭐야, 몰골을 정비하기도 전에 나타났잖어.”

버스에서 내린 이들이 들어섭니다.

새끼일꾼 인영 가람과 함께 훈정 효정 세훈 가온,

그리고 처음 방문하는 한정휴님과 기림이 기륭이까지.

저녁을 짓는 동안 고래방 청소를 먼저들 하였더랍니다.

 

저녁상을 물릴 무렵, 기찬샘과 소령샘,

그리고 10학년 되는 영서와 11학년 되는 인건이 등장했습니다.

제천에 할머니 모셔다드리고 오는 걸음이었지요.

기다리는 이들이 목 빠지고 번거로울까 하여

저녁을 밖에서 드시고 온다하기 일정을 조금 조절하면 된다 전하였더랬습니다.

밥을 낼 수 있어서 기뻤다마다요.

규옥샘과 희자샘은 내일 걸음키로 했다 합니다.

그런데, 새끼일꾼 대호가 오지 못했네요.

 

밤, 달골 오릅니다.

창고동에서 춤명상을 하지요.

오래 쓰지 않았으나 미리 공간을 좀 데웠더니

못 견딜 만큼의 한기는 아니었지요.

봄날의 춤들을 춥니다,

새 학년을 시작하는 춤.

이렇게 시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런 시작의 날들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과거에 너무 많이 묶인 우리들의 발목끈을

풀거나 혹은 끊었더랍니다.

 

햇발동 더그매에서 ‘실타래’가 야참과 함께 이어졌지요.

“그렇게 먹고도 안 먹을 것 같지요? 웬걸요...”

한정휴님과 이소령님 그리고 성원샘이

손 빠르게들 준비하여 3층으로 올렸지요.

“좋은 선생은 숙제를 내고 잊지 않는 선생이지요...”

숙제검사를 합니다.

빈들모임은 비어있는 들에 우리들의 이야기와 움직임을 채워나가는 시간,

읽은 책을 혹은 들은 이야기를 또는 자기 삶을 내놓았습니다.

기찬샘이 읽은 시는 모두를 한참 침묵케 했지요.

“목소리 정말 좋아요.”

“하나 더 해주세요.”

“농담이지?”

“물론 농담이죠.”

엄마가 짐 싸래서 어디 가는 줄도 모르고 왔다는 기림이는

그래서 숙제가 있는 줄도 몰랐다네요.

“숙제 하러 올게요.”

 

별방에 모여 밤을 새겠는 아이들입니다.

저들은 저들 삶의 화톳불에 풀무질을 하고,

한편 어른들은 어른들의 삶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지요.

봄밤이 깊어갑니다.

멀리서 산짐승의 울음소리...

그런데 날이 좀 축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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