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29.물날. 맑음

조회 수 1301 추천 수 0 2012.03.07 01:57:38

 

 

 

동구 밖 서성이던 봄이 대문 열고 들어서더니 문지방을 넘습니다.

고양이들도 마을길에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개들이 짖기 또 바쁜 봄입니다.

소사아저씨는 우물 앞 연탄재를 깨다가

마을 한 바퀴 도셨다지요.

 

2월 29일.

28일에 하루가 더 있는 해입니다,

덤 같은 하루.

그 하루를 쓰러 서울 가는 셈 되었네요.

‘수요북콘’.

아는 분이 하는 출판전문월간지 <라이브러리 & 리브로>에서

책을 쓴 사람들, 그림 그리는 사람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겠다고

지난 달 15일부터 물날마다 하는 북콘서트입니다.

오늘이 그 세 번째-출판 편집자 ‘생각을 담는 집’의 임후남.

저자이기도 하고 편집자이기도 한 그가

기획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1인 뮤지션 지구밴드의 공연도 함께.

진행자가 조금 편했으면, 좀 더 사람에 집중했으면 싶은 아쉬움도 없잖았지만

밋밋함을 내용으로 잘 채우는 초대손님들이었지요.

 

아이의 전령으로 간 길이기도 했더랍니다.

류옥하다가 그 잡지에 올 한해 서평을 쓰기로 했지요.

첫 원고를 보내고 이 달 잡지가 막 나왔습니다.

아동문학가 노경실 선생님이 인사를 건네셨지요.

1958년생 노경실님, 그리고 1998년생 류옥하다가

<라이브러리 & 리브로>에서 서평 한 쪽씩 마주 보고 있는 사이가 됐습니다.

올 한 해 고정 필진들이지요.

류옥하다 글에 감명 받았다며 아이 대신 같이 사진 찍자셨습니다.

 

하다는 빈들모임에 왔던 인건이네랑 남해에서 포항을 찍고 오늘 서울로.

그런데 서울서 또 가람 가온 인영 효정 훈정이가 인건네로 다 모였네요.

오늘 우리 가족 셋은 서울에 다 있었으나

각각 따로따로 보내고 내일 서울역에서 만나 영동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답니다.

 

‘발해 1300호’ 주요 구성원들이랑 수요북콘을 같이 갔고,

홍대 앞에서 밥 먹고 곡주 마셨습니다.

물꼬의 동교동 연남동 시절들이 떠올랐지요,

특히 서울에서 젊은 사람들과 도시 공동체를 시험하던

세 해의 질긴 ‘연남리’(도시공동체 이름)의 시간들도.

아, 옛날은 가고 사랑은 남는다던가요.

 

오늘 모임을 천산원정길 환송회이거니 했습니다.

한 기업인의 개인 후원이 있었고,

선배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었지요.

등산장비들, 필요한 물품들.

그리고 한 선배는 새벽거리에서 손을 꼭 붙들고

서로 힘들더라도 잘 살자고 했던가요.

오늘 어느 이의 ‘눈물 나도록 기쁜’이라는 표현이,

마치 처음 보는 말처럼 도드라졌습니다.

봄에 나무를 타고 오르는 물처럼 몸을 타올랐지요.

눈물 나도록 기쁜 인연들입니다.

이 생을 함께 걸어주어 고맙습니다.

 

아, 부암동의 선배네 찻집에서 노해를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대학시절을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보냈어요.”

인사를 나누었고, 잠시 몇 마디를 주고받았습니다.

“안아두 돼요?”

그리고 안았습니다, 계단에서.

이상을 잃은 삶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혁명시인,

어떤 이는 그를 그리 일컬었습니다.

20세기에는 사회주의혁명을 꿈꾸었고,

21세기에는 사람만이 희망인 사회를 꿈꾸는 그니.

혹시 집단창작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던 그의 글이

결국 실체가 있는 개인이었음을 알았을 때도,

그가 91년 결국 구속되었을 때도,

그리고 8년의 독방생활

날마다 20킬로미터씩 달리고 열두 시간씩 정좌하여 책을 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리고 전쟁지역을 도는 소식에서도

그는 늘 화들짝 놀라움이면서

동시에 아하 그렇구나 하는 주억거림으로 앞에 왔습니다.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 소리여야 한다’, 그것도 그의 말이었지요, 아마.

고르게 잘 먹고 잘살자는 사회주의의 꿈보다

고르게 덜 벌어 덜 쓰는 농사공동체가 그의 새로운 이상이 되었다던 게

그에 관한 마지막 들은 소식이었던 듯.

마침 그가 이끄는 나눔문화재단이 부암동에 있었지요.

선배로부터 간간이 이름자를 듣기도 하였더랬네요.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던 그니.

 

그의 행적이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찌 걸었고 어디로 걷는가 묻게 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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