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의 물꼬,
어제 영동역에서 맞아주고 물꼬에서 묵은 기자는 밥상에서
어떻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들을(물꼬가) 모색해보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게 꼭 물꼬가 바라는 일은 또 아닙니다.
받으면 또 그 만큼을 해야할 지니
그저 소소하게 제 힘으로 서는 게 가장 물꼬스러울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
기사를 위한 정식 인터뷰를 다음으로 예정하며 기자님이 떠난 뒤
제법 긴 시간 떠나있었던 학교를 돕니다.
아이가 가꾸는 간장집 남새밭은 어찌나 가지런하던지요.
물이 차던 길도 땅을 돋우어 평평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욕봤습니다.
바람이 찹니다.
그런데 이 바람을 뚫고 아, 수선화, 환하게 펴있었습니다.
수선화를 오직 좋아한다던 한 벗이 있었지요.
올 봄부터 지리산으로 차를 덖으러 들어간다 했습니다.
연이 시작된 지 오래지 않으나
자유롭게 떠돌며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이어
벗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습니다.
때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전혀 다른 환경 심지어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도
그렇게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잘 있는가...’
그 곁에서 돌단풍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간의 학교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으며,
덥기까지한 두터운 봄볕이 있었는가 하면
고래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기도 하며 그렇게 꽃샘추위가 다녀갔고,
봄눈이 내렸고 바람 거칠게 불었더라지요.
부추가 젤 먼저 봄기별을 하였고,
마늘싹이 부지런히 올랐으며,
시금치도 싹을 내밀었다 합니다.
씨감자가 왔고 그 감자를 놓았으며
완두콩도 심었다지요, 이른 감이 있었으나.
아이는 날마다 통로를 쓸고 닦고
때마다 소사아저씨와 돌아가며 밥상을 차리고
불날마다 새벽 6시 20분 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왔다 합니다.
또, 쇠날마다 물꼬로 온 풍물샘과 장구를 두드리고,
잊히지 않을 만큼 마치 어미가 쓰는 물꼬에선 요새처럼 글을 써서
물꼬 풍경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제 공부 챙겨하고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그리 잘 살아주었습니다,
소사아저씨 역시 당신 삶을 잘 살아주었지요.
기락샘은 주마다 달려와 차로 움직여야할 일들을 챙기고,
더러 식구들 바깥나들이도 시켜주었다 합니다.
그 사이 시영샘이 와서 식구들이 구덩이에 시멘트를 굳힌 데다
교문 현판을 철사로 고정시켜주었다지요.
사람들은,
찾아오거나 먹을 것이며 필요한 것들을 보내거나 혹은 글로 물꼬를 격려했고,
그렇게 다들 물꼬를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다, 모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