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19.나무날. 흐리다 비

조회 수 1395 추천 수 0 2012.04.26 02:02:18

 

 

마음에 아무런 떨림도 없이 4.19가 갑니다.

삶은 자주 부끄러움도 모르고 염치도 없습니다.

4.3은 지나는 지도 모르고 갔습니다.

얼마 전 지역 도서관에 나갔던 날 챙겨두었던

<제주, 그리고 오름>(그림 임현자 / 시 이생진)을 펼칩니다.

몇 장을 넘기며 잠시 전율 왔지요.

 

44년 전 토벌대가 불태워 이제는 사라진 마을 다랑쉬에서

1992년 4월 열한 구의 시신이 발굴되었고 거기 아홉 살 아이가 있었더랍니다.

오름에서 풍기는 서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그림에 고드름을 달듯 차가운 슬픔을 시로 달았다는 시인,

당신이 그 소년과 공중에서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오죽 답답하면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가슴을 칠까,

시인이 말했습니다.

책 끝의 ‘시인의 변’도 시(詩)입니다.

‘내가 이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은 1995년 겨울부터였다. 그 후 매년 다랑쉬오름을 찾았다. 그러다가 2002년 2월 27일부터 3월 7일까지 다랑쉬오름 근처에 머물며 이 시를 썼다. 그리고 매일 이곳에 와서 4.3으로 인한 모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뜻으로 팽나무와 비문 앞에 술을 따르고 머리를 숙였다. 그저 시인이라는 소박한 심정에서 인간의 아픔을 아파하며 머리를 숙였다. 나의 가슴엔 이쪽도 저쪽도 모두 내 잘못이라는 아픔으로 가득했다. 그때 나는 혼자였다.’

자책도 없이 열정도 없이 성찰도 없이 이 봄을 보내고 있습니다려...

 

경주를 떠나와 고성에 이르렀던 오후.

“그런데, 마산 창원 진해가 왜 통합된 거야?”

“행정비용 절감해서 친척들 줄라고.”

아이가 대답합니다.

“봐, 그 돈으로 4대강 사업해서 토목공사에서 돈 남겨.

그리고 친척들 친구들 주는 거지...

그 일가족들 재산이 22조원이래.

그런데 그 땅들이 또 4대강에 몰려 있어.

그거 팔고 국가에서 보상해주고...

집안 재산 자꾸 불리는 거지.”

그게 현대통령이랍니다.

그-래-요?

 

탈박물관 갈천샘을 만나고(달골 지킬 꼬마 장승 몇 챙겨주셨습니다),

수행 도반들을 만납니다.

3년 전 봄에도 그리 만났습니다.

벌써 시간 한참이 흘렀고,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거기 수행안내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랑 함께 우리도 그 공부 대열에 합류해보기로 합니다,

그땐 그저 스쳐갔는데, 때에 이르렀는가 하고.

아, 생의 이 신비한 우연들...

다음 주 경주행 출장 때 고성으로 다시 건너오기로 하였답니다.

 

지난 겨울 끄트머리 머물렀던 남해의 한 암자에서 하룻밤을 얻기로 합니다.

밤 아홉시, 암자에 닿자 비 굵어졌습니다.

 

‘일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

아니면 이 심란한 마음들을 우리 어찌 견디며 갈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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