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새벽부터 추석맞이 잡초정리가 있었다.

명절을 쇠는 마음도 개운하겠지만 멀리서 올 자식들을 맞는 마음이기도 할 테지.

한 집마다 하나씩 나오라 하였지만 그것마저 때마다 주는 산마을이다.


어학모임 하나가 이틀 여기서 있었다.

창고동에 오랜만에 난로도 피웠다.

얼마 전 장순샘이 와서 달골에 쌓인 나무들을 잘라주었고,

학교아저씨랑 같이들 창고동에 들였다.

가난한 시절 아니어도 여전히 독에 찬 쌀과 김장과 연탄, 그리고 장작이 든든한 마음을 부른다.


물꼬가 중심인 행사가 아닐 땐 사람 모이면 고기가 쉽다.

영동은 고기가 맛있다 하고, 상촌도 그러하다.

주인이 직접 가축을 기르고 파는 식육식당이 많다지.

하여 수육을 먹겠다던 이들이다.

엊그제 수육용 배추김치를 담갔던 까닭.

다 준비하고 맞으면 좋으련 몸이 더뎠다.

사람들 와서 그제야 상을 차려내도 된다, 그리 싶으니 더욱 늦었다.

평소 잘하지 않는 고기 밥상이기도 했고.

물어가며 같이 차려냈네. 그래도 되더라.

사람들은 먹어가는 밥보다 더 많은 선물꾸러미들을 내려놨다.

탐나던 와인잔들도 그렇게 들어온 하나였다.


처음 걸음한 한 여자 분이 그랬다.

“남편은 청담동(전엔 기락샘이 일하는 국책연구기관이 거기 있었고, 그 기관도 지금은 세종청사를 따라 내려왔다),

그런데 아내는 아이랑 산골 산다고. 그것도 엄마가 원해서...

아니, 보통은 그 반대이지 않나,

엄마가 아이 교육을 위해서 청담동 대치동을 가고... 아빠가 지방에서 돈을 벌고....

그래서 궁금했어요.”

그런가...

“또, 산골이래서, 메주도 쑤고 어쩌고 한다니 몸집 좋은 아줌마일 거라 생각했는데

가녀린 분이...”

그렇나...


쏟아지는 별을 주워 담았고,

이튿날 산길을 걸어들 내려왔다.

먼저 떠나는 이 밥부터 먹이는데, 곧 파라과이로 이민을 간다 했다.

이 산마을 밥 한 끼가 가는 먼 길 가벼운 한 걸음이시라.

모두 내려와 앉아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보니

떠나겠다던 11시가 점심때가 되었고,

먹고 가시라 또 붙들어 보내고 나니 낮 3시가 다 된.


사람들 1차로 2차로 나가자마자 바로 이명섭 전 교육장님 들리셨다.

현직에 계실 때나 퇴임 후에나 오래 물꼬를 지원해주신 분이다.

병상에 계시기 여러 해, 이제 좀 얼굴이 좋아지셨다.

멀리서 오셔서 차 한 잔 나누어주니 고마웠다.

저녁답엔 부산에서 법린 선배가 와서 노래를 불렀다, 친구 분과.

집회현장에서 더러 조용하고 아름다운 노래로 문을 열어주곤 하던 당신은

마침 도마령에서 한 행사에 초청을 받아 오셨던 걸음.

그런데... 범능 스님 소식을 거기서 듣네.

“벌써 3년 됐어요.”

지병이 있었더랬다. 당뇨.

80년대 걸출한 혁명가요 작곡가였고,

어느 날 절집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산을 내려와 여전히 곡을 쓰던 스님이셨다.

가끔 그의 노래를 불렀고,

심지어 그가 만든 노래에 곁다리 주인공이 되어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이 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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