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 3.흙날. 맑음

조회 수 672 추천 수 0 2015.10.31 23:49:41


하늘, 정말 기분 좋은 바다일세.

누구에게라도 힘을 내기 그만인 날씨이겠다.


양념으로 쓰던 효소들이 바닥이 났고,

두어 해 야생초 효소를 만드는 일에 손이 못 갔다.

그래도 여러 해 자그맣게 해두었던 것들 없지 않은데

관리가 좀 필요했으나 시간은 그냥 흘렀다.

그 효소들을 일일이 열고 점검하고 섞으나 비우거나.


낮 2시 가족상담이 있었다.

물꼬의 오랜 인연, 아이들과 보낸 여름과 겨울이 여러 차례 흘렀다.

동생이 왔고 언니가 왔고 사촌이 다녀갔다.

그 사이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드디어 젤 큰 놈은 올 봄 대학생이 되었다.

비로소 집을 떠나 기숙사로 간 아이는 무사히 학기를 마치고 여름을 집에서 보냈다.

그러나 안고 있던 문제가 2학기를 시작하자마자 불거졌고,

아이는 학교를 쉬어야 했다.

이제 무엇을 어찌해야할 것인가,

같이 고민하려고 온 걸음이었다.

아이랑 엄마랑 따로 따로 면담을 하고 함께 상의하고.

아이는 아이대로의 형편과 처지와 사정이 있고

부모는 부모대로 또한 그러할지라.

차를 마셨고, 걷고...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이 좋은 가을날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우리를 어루만져주었으리.

어머님은 ‘위로였다’ 했다.

그런데, 나야말로 위로의 시간이었으니.

아름다운 시간은 서로에게 그런 것이다.

아이는 아무래도 얼마쯤의 시간을 여기서 같이 보내는 것이 좋겠다.

날을 받았고, 오기로 한다.

위탁교육을 오겠다고 한다고 다 오라 못한다. 여기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또 이곳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판단이 설 때 역시 오지 말라 한다.

다행이다, 아이 삶에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도 고맙다 하지만 물꼬 역시 고마운 일.

이곳의 존재 의미는 그런 것일 터이다.

선한 이들과 보내는 일은 기쁨이다.

함께 보낼 시간에 마음이 좀 부풀기까지 한다.


저녁, 대체의학모임.

마을을 이루고 약제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대표 얼굴이 약통마다 인쇄돼 있다.

마치 무슨 종교집단 같다, 교주 세우기로 보이는.

그런데, “내 얼굴을 걸고!” 라는 뜻이란다.

아, 그랬구나.

대단하다. 얼굴을 걸 수 있다니.

그들의 약에 신뢰가 생기더라.


나, 오늘 부끄러웠다. 낯 뜨거웠다.

옥샘은... 마더 테레사와 간디를 섞어 놓았어,

이제는 스물이 된 아이가 엄마에게 그랬다 했다.

학령기의 여러 계절을, 그렇게 여러 해를 여기서 보냈던 아이다.

세상에! 그건 결코 찬사가 아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가, 어쩌다 그리 환상을 지니게 되었는가.

내가 더 진심어리지 못해서 일어난 일일 테다.

내 맨 얼굴대로 살지 않아서 그런 것일 테다.

오늘 나는 거룩한 삶 마더 테레사와 간디를 되짚노니.

당신들을 잊고 사는 삶이었다.

고쳐 앉아야겠다!

고맙다, 아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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