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자주하는 생각이지만 ‘밥’도 쉽지 않고 ‘함께’도 어려운 시절이라 더욱.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이들의 어휘력을 키우는 데 최고의 길이라 여기지만

정작 식탁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더 많이 배우더라는 연구결과도 있었더랬지.

고즈넉한 시간 찾아온 이들과 밥상을 마주하고 있으면

우리 무슨 깊은 인연이 있어 이 산마을에서 이렇게 마주하고 밥을 먹는가,

숭고함이 깃든다.

사람들과 이 산마을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이른 아침의 경건함과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밥이 힘이라.

사는 일은 그 밥 먹고 밥 값 하는 일.

"옥샘, 물꼬 밥 먹고 싶어요."

멀리서 아이들(물론 어른들도)이 하는 말은

정작 무슨 대단한 요리를 이곳에서 맛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부렸던 시간에 대한 기억.

그 밥은 힘들어요, 그리워요, 잘하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사랑해요. 

산골에서 하는 가장 큰 일은 따순 밥 한 끼 내는 일.

누군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위해 밥 한 끼 내주었다,

그것 먹고 다음 걸음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

얘들아, 밥 먹자!

우리 밥 먹어요, 같이.

더는 사랑하는 이와 밥상을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에 마른 낙엽만 뒹구는 일.


섬진강가에서 소리하는 선배들을 만나고 왔고,

오는 길에 정읍을 들리자던 일은 뜻대로 되지 못했다.

안나푸르나를 함께 올랐던 인연 하나,

남은 숙제 있었으나 게을러 미루다 시간이 이리 흘러버렸다.

과제 제출일이 있으리라.

오는 길에 멀리 진영에서 벗의 전화가 들어왔다.

고맙다, 그대 있어.

벗이란 그렇게 ‘있어’ 고마운. 울고 싶은 순간이라면 더욱.

사람을 보내기가 잦아지는 나이,

사람 하나 보내고 그 자리 벗이 와서 안아주었네.


눈이 내렸고, 밤 뚝 떨어진 기온으로 길은 얼어붙었다.

학교아저씨는 보일러실 가동해보다.

물이 잘 돈단다.

내일 이른 새벽 산마을을 나서야 한다.

가기 어림없겠다.

읍내 아는 댁에 연락 넣는다.

밤, 짐을 챙겨 나선다.

그리고, 밤새 아이 하나 애타게 찾을 일이 있었고 새벽에야 연락이 닿았다.

고맙다, 그대 목소리.

잘 있구나, 그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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