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달날 거치나 차지 않은 바람

조회 수 1605 추천 수 0 2005.04.02 02:08:00

< 3월 28일 달날 거치나 차지 않은 바람 >

바람이 많기도 한 이곳이지요.
겨울 한 밤 수십 대씩 지나는 덤프트럭 같은 바람 아니어도
철마다 바람 손님이 잦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세기도 셌지요,
그러나 봄바람입니다.
그 바람 안에 문득 '희망'(이런 낡음이라니!)을 생각했더랍니다.
봄은 그런가봅니다.
얼어붙은 땅에서 시작하는 그 점이
'처음'을 기억케 하고 다짐하게 하는.
아주 단순하고 그래서 낡아버린 표현도
이렇게 와락 마치 처음 만나는 진리처럼 들어오는 순간이 있지요.
봄입니다, 봄!

아이들이 하나씩 일어나 앞으로 옵니다.
귀도 닦고 손발톱도 깎네요.
지용이가 걸어왔는데, 깎아주기엔 너무 큰 놈인 거예요.
지난 번 머리감기며 마사지 할 때도
너무 길어서(키가) 니들끼리 해라, 정근이와 빠졌더라지요.
엄지 손톱 하나 깎고는 니가 해라 합니다.
이런, 한 번도 혼자 깎아본 적이 없다네요.
그 아이 이곳에서 5학년에 편입해있지만
열다섯 나이인데 말입니다.
이제 삽질도 제법 하게 된 우리 지용이
손톱깎기를 다루는 일 정도는 일도 아닐 날이 머잖아 올 테지요.

상촌면장 박덕환님이 학교 일에 이모저모 도움을 주십니다.
지난 번 문화관광부 사업공모에서 1차 선정된 뒤
실사로 심사위원이 내려왔을 때도
상촌 초등 중등 입학식에 참석해야하는 바쁜 아침,
시간 내어 대해리까지 들어오셨댔지요.
달골 아이들집을 세울 곳이 밭인지라
대지로 만드는 작업이며가 쉽자면 쉽지만
이미 한 차례 반려된 일도 있었는데,
힘을 실어주셔서 수이 접수가 되었습니다.
세비를 위해서도 영동군에서는 인구늘리기를 하는데
누구 한 사람을 위한 면장님의 권력 행사가 아니라,
농사짓고 살려고 들어와 이런 저런 법에 묶여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면으로서도 손실인테니 말입니다.
아주 작은 개인의 일도 당신이 할 만하면 다하신다는,
면내 칭찬이 자자한 면장님이라지요.
아, 그 서류엔 그린건축의 손수일 소장님도 손을 보태셨답니다.
서류가 아주 깔끔했다는 산업계장님의 칭찬도 있었지요.

규민이가 아파 엄마를 자주 찾으면서
남순샘의 빈자리를 은주샘이 메꾸며 보낸 한동안이었습니다.
김경훈님도 요리 솜씨를 자랑하며 그 자리를 채워주고,
이웃 양계화님의 손은 또 얼마나 큰 덕이던지요.
아이들과 저는 언제든 부엌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보충대기병력처럼 준비하고 있는데도
부엌 가재도구를 잡아볼 기회조차 없답니다요.

색놀이를 하러 오시는 연이샘은
멀리서, 게다 일찌감치 와서 준비를 하고 있네요.
오늘은 밝기와 묽기를 익히느라 먹과 물감을 쓰고 있습니다.
어느 중등대안학교에서도 미술수업을 하는 그는
마무리가 야문 우리 아이들을 그네들에 견주어주었더이다,
다른 이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장점을 다시 보는 게지요.

"저는 넓게 파고 류옥하다는 깊이 파서 같이 심었어요."
면사무소 다녀오니 나현이가 오후에 아이들이 한 일을 전합니다.
저마다 두 셋씩 붙어 류옥하다 외할머니댁에서 온 나무를 심었답니다.
훗날 우리가 보낸 시간을 그 나무아래서 돌아보겠지요,
켜켜이 쌓인 땀과 눈물을 기억하겠지요.
우리를 살리고 또 살리는 빛나는 추억이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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