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떤 부름'

조회 수 2760 추천 수 0 2018.07.18 04:55:08


어떤 부름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먼 곳>(문태준/창비/2012) 가운데서)



밥 먹자 건네는 어머니의 음성이

오래되었으나 견고한, 먼 우레와도 같은 성주의 부름 같다.

성주를 위해 대원정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부름,

결코 거역할 수 없고, 우리를 존재케 하는 오직 복종해야 하는,

그러나 한없는 사랑으로 나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말 이의 부름.

나는 작고 연약한 푸른 벌레 한 마리,

어머니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로 다 기어가서 닿고 싶은,

어머니 말씀의 온기의 그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온 힘 다해서 이르고픈 밥상으로 가는.

나도 오늘 그 밥상 앞에 앉고 싶다.

울 엄마의 김 오르는 밥 한 술 뜨면 

가뿐하게 병상을 차고 저 햇살 아래로 걸어나갈 수 있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물꼬를 다녀간 박상규님의 10일간의 기록 [5] 박상규 2003-12-23 132131
5778 잘 도착했습니다! [9] 인영 2011-08-20 3936
5777 잘 도착했습니다! [4] 최혜윤 2019-08-10 3935
5776 민혁이 잘 도착했습니다^^ [3] 미녁맘 2011-08-19 3933
5775 ㅎㅎ 조금 늦었지만...ㅎㅎㅎ [10] 서울시장 오세훈 2011-08-25 3931
5774 잘 도착했습니다! [4] 이세인_ 2019-08-09 3929
5773 [사진] 165 계자 넷째 날 [1] 류옥하다 2020-01-16 3894
5772 도착했습니다 [3] 김민혜 2016-08-14 3891
5771 자유학교 물꼬 어린이 카페도 있어요! [1] 평화 2011-01-31 3884
5770 짜맞추기.. [2] 수준맘 2022-01-17 3871
5769 힘들게 캔 고구마, 버릴게 하나도 없어요!-고구마 캤어요! image 류옥하다 2011-10-19 3871
5768 [펌] 당신들은 침묵했지만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다 물꼬 2021-08-25 3861
5767 애쓰셨습니다. 사랑합니다. [3] 류옥하다 2020-01-17 3860
5766 가끔 세상이 이런 이벤트도 주어야...-병아리 났어요!- image 류옥하다 2012-05-19 3848
5765 잘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4] 기쁨이 2020-01-20 3833
5764 히포크라테스의 지팡이 위에 중립은 없다_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세이 imagefile [1] 류옥하다 2018-05-27 3828
5763 잘 도착했습니다!^^ [5] 휘향 2019-08-09 3817
5762 잘 도착했습니다 [2] 민교 2022-01-15 3791
5761 2월 어른학교 [1] 지인 2022-03-26 3783
5760 안녕하세요 [1] 필교 2020-02-11 3782
5759 새해맞이 예(禮) 물꼬 2013-01-02 377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