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보(萬人譜), 만인의 삶에 대한기록,

그런 걸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오면서는 그들을 아주 오랜 시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곧 그들은 신성성을 잃고 어른이 되어 버릴 테니까,

산마을로 들어오면서는 산골에 깃든 이들의 삶을 써야 겠다 생각했다.

더 이상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만 있었으므로.

생각은 나아가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만났으나 글이 되지는 못했고, 당연히 발표도 없었다.

살아오면서 계획했던 숱은 일들은 그렇게 끝이 났더라니.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작자들을 좀 알고 있다.

박상규 기자가 그렇다.

돈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박상규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를 알고, 또한 모른다.

2003년 처음 만났고, 그것이 또한 마지막으로 그를 본 때였다. 올해는 2018년.

얼마 전 그는 양진호라는, 뭐라도 돈이 되는 인물을 고발하며 한동안 뉴스에 등장했다.

그 전엔 그 역시 돈 안 되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억울하게 감옥살이하는 이들을 풀어주기 위한 ‘재심’으로 유명했다.

나도 돈 되는 일이라고 별 해본 적이 없다. 대표적으로 물꼬 일이 그렇다.

설혹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박상규나 박준영과 동급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더 이른 그의 소식은 제주도 누군가의 감귤을 파는 거였다.

감귤을 키우는 사람의 삶을 기록한 글의 말미는

1,000 박스를 팔아야 한다는 호소였다.

“이 세상은 바보 같은 결단을 내리는 이들의 낭만과 깡으로 유지되고(...)

낭만과 깡도 밑천이 있어야 유지된다.

친구, 사돈에 팔촌, 한 10년 연락 없이 지낸 지인에게

‘장태욱 귤’을 선물하는 낭만과 깡이 당신의 가슴속에서 마구 솟구쳤으면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 귤을 소개하는 것으로 겨우 지지를 갈음했다.

내가 SNS라도 한다면 틀림없이 그의 소식은 더 일찍, 더 자주 닿았을 것이다.


박상규, 그는 물꼬 누리집 ‘드나나나’ 꼭지에 공지글의 글쓴이이다.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글이었다.

서른 즈음에 하던 그의 여행길은 물꼬로 이어졌고,

2013년 그해 물꼬는 새로운 학교를 상설로 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얼마쯤을 머무르고 떠난 그는 여행을 하며 계속 글을 썼고,

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정식기자가 되었던 거라.

10년(?)을 일한 뒤 때려치운 그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만여 명을 설득해 지갑을 열게 했고,

행보는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져

결국 양진호를 세상으로 끌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2013년 서른 즈음의 청년의 눈에 물꼬는 어땠을까?

지금 다시 물꼬에 온다면 그는 또 어떤 것을 볼까?

2013년의 그는 그때의 그였고, 2013년의 물꼬였다.

그리고 2018년의 그이고, 2018년의 물꼬이다.

우리가 서로 아는 것은 2013년이지 2018년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을 올리게 될 줄 몰랐다.

적지 않은 말들이 끝에 이르지 못하고, 글로 마무리가 되었더라도 사장되기도 하니까.

올리기로 했다.

우리 앞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2018년의 박상규를 아는 것도 같았다.

아니, 안다고 고쳐 말하겠다.

긴 시간 제 길을 걸어간 한 사람을 나는 안다.

그의 진정성과 솔직함 앞에 나는 부끄러웠다 고백한다.

‘사람은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

어제 한 일을 알면 내일이 웬만큼 가늠된다.

그가 살아온 수많은 어제가 나를 그의 귤 밭으로 이끌었다.’

귤을 소개하면서 그가 썼던 글의 후미였다.

그것은 박상규 그 자신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살아온 대로 살아가고 있다.

어제 그가 한 일을 보면 내일도 가늠이 어렵지 않다.

그가 살아온 수많은 어제가 내게 그의 이름을 부르게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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