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계자가 끝났고,
빨래들을 했다.
사람들이 남기고 간 수건들, 옷방에서 나왔던 겨울 옷가지들,
모든 이불빨래야 봄날에 하겠지만 당장 빨아야겠는 몇 장의 이불.
각 방에서 나온 쓰레기통도 비우고,
부엌에서는 음식찌꺼기들을 치우고.
부엌 화덕 아래 철판도 빼서 씻는다.
계자 기록도 마저 해야 할 텐데...
밤에야 아이들 갈무리글부터 입력했다.
헐었던 입 안이 조금 나아졌고,
얼굴이며 부었던 손발의 붓기가 조금 빠졌다.
사이집 욕실 냄새가 심해서 어떻게 해결하나 들여다보고,
현재 아래쪽과 위쪽이 뚫려있는 학교 욕실 문을
어떻게 만들어 달 것인가 궁리해본다.
다시 멧골의 일상이다.
시클라멘을 들고 손님이 왔다.
조화 같아서 생화가 맞냐 물었다.
너무 정갈해서 생화 같지 않은 화분이었다,
물꼬 같은 느낌이 들었더라지. 이건 뭔 말이지...
계자 치르느라 애썼단다. 고맙다.
저녁에 제습이와 가습이 그리고 만화를 데리고 마당을 걸었다.
북적여도 좋고, 이렇게 호젓해도 좋다.
습이네들은 학교에 내려와 첫 계자를 치렀다.
막내 같은 가습이는
계자 동안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던 주인이 다가가자 삐쳐서 잠시 외면도 하더니만
이제 제 차지다 싶으니 펄쩍펄쩍 뛰었다.
강아지 키우는 거 딱 아기 키우는 거라 생각하면 된다더니.
물꼬 30주기 아침뜨樂(락) 측백 분양(이라고 쓰고 후원이라 읽는)은 계속된다.
‘서울 황수호 1그루, 서울 이숙희 1그루 (-60그루)’ 라고
댓글로 달려고 했는데 권한이 없어서 안 된다며
문자로 남기니 나중에라도 대신 올려주면 감사하겠다는 소식.
‘선생님 책은 너무 감명 깊게 읽고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책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또 살아갈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한해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저이가 누구인가, 20년도 더 전에 물꼬 계자를 왔던 인연.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 또한 내가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아이 하나라.
어르신 한 분도 소식 주셨다.
분주해서 잊고 있었노라고.
한국작가회의(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으로 계신 소설가 이경자 선생님.
우리 측백 나무들 이름에 훌륭한 어른의 존함을 더할 수 있어 기쁘다.
고마운 인연들이다.
메일도 닿았다. 계자에 애쓰셨어요, 하는 인사로 읽었다.
절대적인 최강 밥바라지였고,
밥바라지로 맺은 인연으로 가장 가깝다고 할 만한 벗이 된.
‘캄캄했고
이럴 수가 있나 싶게 추웠고
고추장집에서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비탈길은
잘 하면 골절, 잘 못하면 중상의 위협을 유지하는 새벽이었죠.’
벌써 십 수 년 된,
아이를 들쳐 업고 왔던 첫 밥바라지 시절을 그리 회고하고 있었다.
그래도 올 겨울은 그런 모진 날이 길지 않아
그나마 죽는 소리 덜하고 살았다.
그가 다녀갔던 그 겨울들은 참말 얼마나 몸서리칠 날들이었던지.
그때는, 정말 너무 어둔 날들을, 어째얄지 모르겠고 허우적거리며 지나느라,
어찌어찌 찾아온 이를 살필 수도 없었고, 살필 줄도 몰랐고.
그의 힘으로 산 날이 많기도 많다.
미안하고 고맙고.
갚을 빚이 많은 인연이고, 사랑하는 인연이라.
다행한 건 이제 좀 여유가 생기는,
이제라도 생기는.
실제 사람이 이곳으로 들어서서 부딪히면 또 어떨지 몰라도.
밤 10시, 화들짝 놀라서 절을 했다.
백일기도 같은? 그런 셈이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한 친구에게 힘 보태기.
언제나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