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31.쇠날. 뿌연

조회 수 521 추천 수 0 2020.03.04 08:43:09


 

아차산 천제단 아래서 맞았던 아침이었다.

벗과 해건지기.

기독교인 그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대배도 같이 하다.

하면서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냐 싶었다가

회개구나 생각을 했다는 그였다.

기도는... ‘의심 없이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네.

 

벗은, 지혜로운 벗은, 이번에도 먼 길 온 친구 그냥 보내기 아쉽다고

선물 상자 하나를 내밀었는데,

탁상에 놓는 로봇형인 601공작소의 시계와 온도계였다.

가는 걸음에 먹으라고 양갱 상자도 챙겨서 같이.

그의 움직임은 자주 적절하고 슬기롭다.

지난번에 건네준 그의 선물은 모 교수가 만든 백자 항아리에 담긴 초와

프라하에서 가져온 소금이었다.

빛과 소금 아닌가!

그런데 이번 선물은 (그가 꼭 의도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시간과 온도이다!

센스 있는 사람이라.

아주 적절한, 그 왜 타이밍이라고 하는, 순간에 그 쓰임이 빛나게 하는 재능이 큰 그이라.

이런 선물들도 뭔가 이야깃거리(그게 글감일 테다)가 될 것 같은.

우린 앞으로 달마다 한 차례 12일 글쓰기 워크샵을 하고

그걸 갈무리 할 무렵 같이 글을 써보자고 의기투합하다.

80년대 한 사람은 권력자의 딸이었고, 또 한 사람은 거리에서 권력을 향해 짱돌을 던졌다.

그는 공대생이었고 나는 문리대생이었다.

머리로 움직이는 그이라면 몸으로 움직이는 나.

그는 서울에 살고 나는 멧골에 산다.

그는 일반 사람이 만나기도 어려운 재벌가 사람이고, 나는 멧골 무명 아낙이다.

아주 커다란 집에 사는 장녀인 그와 달리 나는 아주 작은 집에 사는 막내다.

찾아보면 서로 건너편에 있는 일이 참 많은.

나는 안으로 안으로 더 응집하고,

그는 밖으로 밖으로 더 확장하는 삶이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우리는 여자로 한국사회를 동시대에 살고 있고,

같이 시카고에 있었고,

같이 아이를 키웠고,

같이 수행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논다.

 

출판사 미팅.

한 호텔의 로비에서 다섯 시간에 달하는 만남이었다.

장소를 서울역 푸드코트까지 이어간.

발간 일정, 홍보일정들을 따져본.

지난 6월에 낸 교육서는 기본 수요가 있고,

출판사가 거래하는 기본 선이 있어 이런 의논 한 번 없이 책을 내놨다면,

이번 출판은 또 다른 성격이라.

교정지를 다 보고 넘기려던 계획이 밀렸고,

무거운 교정지를 안고 다시 내려왔다.

녹초가 되어 영동역에 닿았네.

출판사 분들이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챙겨주다,

사람 많은, 닫힌 공간인 기차 안에서 마스크는 꼭 하십사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가방에 그대로 넣고 돌아왔으나

감염자는 쉬 되지 않을 수 있다 하더라도

혹여 보균자로서 전파자가 된다면 큰일이긴 하겠다.

마스크를 하고 다녀야 할 듯.

 

서울서 돌아온 저녁,

마을에서는 귀를 의심할 엄청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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