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났다. 비가 온 다음날 나온 해는 청소를 부른다.
나는 자주 그런 계기가 필요하다.
청소 하나에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계기를 통해 움직일 때가 적잖다.
공부를 하려니까 청소를 하고,
손님이 오니까 청소하고,
어딜 다녀와야 하니 청소를 해놓고 나가야 하고.
쓸고 닦고, 털고 널고.
늦은 해건지기를 하다.
몸 풀고 대배 백배, 그리고 명상도 이어했다.
와서 여러 날 엄마의 일을 도와주던 아들이 오늘 마을을 나가고 있었다.
엄마라고 어른이라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몇 가지 부탁들(이라고 하지만 잔소리일)을 하는데,
며칠 같이 지내면서 안 된다 싶은 뒷정리에 대해 굳이 한 소리를 하고 만 것.
그도 나도 짜증이 좀 났다.
“엄마가 스마트폰 못한다고 내가 뭐라 해요?
그런데 내가 잘 안 되는 걸 자꾸 뭐라 하시냐구요!”
“아니, 두 번을 말도 못하냐? 안 되니까 말하는 거 아냐!”
“어머니는 장애애들에게 뭐라 안 하시잖아요!”
“네가 장애아냐?”
좀 툭닥거렸다.
그런데 보내놓고 드는 생각이라.
가방 같은 사람이 있고 보자기 같은 사람이 있다던 이어령 선생의 말.
가방은 그에 맞춰진 것들만 넣을 수 있지만
보자기는 어떤 물건이나 감쌀 수 있다던가.
나는 자주 내게 딱 맞는 이들에게만 맞는.
안 맞으면 못 견디고 안 맞는 그 타인도 내가 불편할 테고.
아이들의 여러 모양을 감싸는 건 어렵지 않은데...
아들이 어릴 적 내게 그랬다,
“어머니는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한데 저한테만 안 그래요.”
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너그러운 사람도 포함할 것.
내가 만든 규격에 잘 맞춘 건, 폼 났겠지만,
폼 나는 것에 너무 신경 쓰는 건 아니었나.
내가 좋다고 하지만 보이기 좋은 건 아니었나.
나를 너무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니었나.
나하고 맞는 사람만 살 수 있는...
나는 사람들과 잘 안 맞다,
는 자괴감이 드는 밤.
그러나 헤아려보면 아주 안 맞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맞는 사람 한둘만 있어도 충분하지!)
사실 ‘나’라는 건 딱 떨어지는 누구도 아니니
내가 있지만 내가 없기도 한 것이 또 사람 아니런가.
그러니 보자기이기도 그리 어려울 것 없는!
또한 식구란 또 아주 가까운 사이라
우린 오늘의 툭닥거림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제 반성들을 나누며 또 헤헤거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