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보름이었지만 오늘도 그 달 못잖게 둥근.

낮엔 볕도 좋았다, 골짝이라 짧긴 하나.

 

다산이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적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제일 먼저 한 일이

새벽마다 마당을 쓰는 일이었다지.

지옥은 일상이 무너지고 희미해질 때 온다.

스스로를 이겨내는 시간이 쌓여 전진할 수 있는 것.

물꼬에서 일상을 견지하는 것도 그런 것 아니던가.

단단한 일상이 결국 삶을 세워낸다는.

스미는 게으름을 밀고 싹 하고 일어나 수행하는 아침이라.

그리고 08시 책상 앞에 앉는다.

 

저녁수행으로 마을길을 걸을 때

마을회관 운동기구도 타는데,

좌우파도타기 하는 기구에서

, 오늘에야 알았네,

그간 내가 양쪽으로 잡은 손잡이에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를.

편안하게 내려서 잡아야 할 것을...

그러니 양 겨드랑이 쪽으로 그리 심하게 근육통이 왔을 밖에.

시간이 흐른다는 건 힘을 빼는 세월이기도 한.

젊은 날의 긴장을 나이 들며 그리 놓는 것이기도 한.

 

햇발동 보일러실은 겨울에도 따숩다.

거기 문을 열어놓고 사포질을 했다.

작은 나무 문짝 하나 만들려고 잘라놓은 나무들이었다.

욕실에서 쓸 거라 남아있던 오일스텐도 칠해주었다.

긴 목재를 새로 사서까지 할 작업은 아니어 조작이 많기는 해도

작업시간이 더 들어가서 그렇지 일은 되는.

 

집이 어려웠던 시간,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물꼬에 철마다 왔더랬다.

고교 때는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고마웠다.

아이는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하여 삶을 힘차게 끌고 가는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달 물꼬 논두렁이 되었다.

그게 얼마이건 그런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고맙고, 고마웠다.

그런 지지와 지원이 물꼬에서의 삶을 또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더하여 물꼬의 여러 인연과 연락이 오간 밤이다.

윤호며 고3 수험생들이 낼모레 수능을 칠 것이고,

겨울계자를 앞두고 품앗이샘들과 연락이 닿는다.

우리 휘령샘, 올 겨울도 이곳에서 보내기로 한다.

그의 20대를 보았다.

나는 건강하게 잘 사는 청년들을 안다. 고맙다.

그들이 또 이 겨울 속으로 들어선단다.

내 무거움을 덜고 보다 가벼워진 걸음으로 걷겠다.

 

올 김장에도 집안어르신이 돕겠단다.

김치는 절이는 게 다라 할 만.

당신이 오실 때는 절이는 일을 거개 혼자 다 맡다시피.

- 백 포기는 하제?

아니. 정말 올해는 조금만 하자 하는데...

오늘은 그곳 장에서 고춧가루를 사두기로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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